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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코로나가 우리 아들 죽인 건 맞네요”

중앙일보 2020.03.20 00:30 종합 1면 지면보기
“결국 코로나19가 우리 아들을 죽인 건 맞네요.”
 

음성 판정에 고3 부모 울먹여
“41도 고열인데 되돌려 보내다니
확진자 아니면 치료도 못받나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의한 사망 가능성이 제기됐던 정모(17)군에 대해 최종 음성 판정 소식이 전해지자 정군의 아버지(54)는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코로나19가 의심되다 보니 입원을 꺼리는 병원 때문에 제때 치료를 못 받았다. 코로나19가 아닌 사람은 우리 아들처럼 치료도 못 받고 죽어야 하는 거냐”고 한탄했다. 어머니 이모(52)씨는 “불쌍한 내 아들, 혼자 치료받으면서 코로나19인 줄 알고 얼마나 무서웠어. 제대로 얼굴도 못 봤는데…”라고 흐느꼈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정군처럼 감염병 의료체계의 사각지대로 밀려나 피해를 보는 환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상당수 의료기관들이 ‘코로나 공포증’ 때문에 환자를 가려 받느라 ‘골든타임’을 놓치는 경우가 늘어서다.
 
정군은 비가 내렸던 지난 10일 마스크를 사기 위해 한 시간 동안 줄을 섰다가 고열이 나기 시작했다. 12일 오후 찾은 경산중앙병원에서는 “선별진료소가 문을 닫았다”며 해열제와 항생제만 처방해 돌려보냈다. 다음날 선별진료소에서 X선 촬영을 한 결과 폐에 염증이 발견됐고, 고열이 지속했지만 입원할 수 없었다. 코로나19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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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군은 그날 오후 증세가 위독해져 대구 영남대병원으로 이송됐고 5일간 치료를 받다 숨졌다. 경산중앙병원 측은 “코로나19 확진 환자일 가능성이 있어 입원치료가 불가능했다. 우리로선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병원 측 “양성일까봐 입원 못시켜” … 코로나 때문에 의료 시스템 마비
 
이 병원 고위 관계자는 “정군 사망 소식을 듣고 부모 마음을 생각해 보니 안타까운 마음뿐이었다”고 덧붙였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관계자는 “41도의 고열에 폐렴 증상이 있을 정도로 위중했다면 어떤 식으로든 대처했어야 했다. 큰 병원으로 전원시켰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경산중앙병원은 정부가 지정한 국민안심병원인데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안심병원은 밀접접촉자를 최소화할 수 있게 감염이 의심되는 호흡기 환자와 타 질환 환자의 동선을 분리해 운영된다.
 
정군의 아버지는 “아들이 처음부터 코로나19가 아니라고 했는데도 경산중앙병원에서는 검사가 음성으로 나와야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다는 입장인 듯했다. 그 때문에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 환자에게만 관심이 집중돼 있는 지금의 감염병 의료체계는 잘못됐다”고 항변했다.
 
의료기관이 움츠린 게 이번만은 아니다. 집이 대구라는 이유로 80대 폐렴 환자가 타 지역 병원을 전전하다 지난 9일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이달 초 서울의 한 대형병원으로 실려온 응급환자도 그곳으로 오기 전까지 중·소형 병원 여러 곳에서 퇴짜를 맞았다고 한다. 기침 등 코로나19 의심 증상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입원 환자 중 확진자가 나오는 바람에 잠정 폐쇄된 서울 은평성모병원 등과 같은 상황이 될까 봐 우려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까지 코로나19 환자로 인해 잠정 폐쇄조치에 들어갔던 병원은 수도권 내 대형병원만 7곳에 이른다.
 
온라인상에는 “병원에서 문전박대당했다”는 경험담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 커뮤니티에는 “열이 펄펄 나는 아이를 안고 응급실에 갔더니 코로나19일 수 있으니 다른 병원으로 가라고 하더라. 의사 얼굴은 볼 수도 없었다”는 글이 올라왔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때문에 진료 사각지대가 생겼다고 우려한다. 정기석(전 질병관리본부장) 한림대 호흡기내과 교수는 “코로나19가 의료 현장에서 상당한 수요를 차지하다 보니 의료 사각지대가 생겼다. 대구의 정군도 이 때문에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했던 것”이라고 진단했다.
 
경산=백경서·김정석 기자, 김민욱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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