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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코로나19의 정치학

중앙일보 2020.03.20 00:27 종합 31면 지면보기
김의영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김의영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코로나19의 정치를 논하시오.’ 이번 학기 필자가 가르치는 정치학 원론 수업의 에세이 과제 문제다. 대형 강의를 비대면 원격수업으로 진행하면서 중간시험 대신 과제를 부과하기로 했다. 수강생들은 수업 전반부에 배우는 정치학 기본 개념을 적용해 현 코로나19 사태를 둘러싼 정치를 분석하는 글을 제출해야 한다. 학생들을 위한 참고자료로 현재까지 50여 개의 국내외 관련 신문 기사·사설·칼럼을 찾아 온라인 수업 게시판에 올려놓았는데, 이 중 ‘코로나 정치’, ‘자기 정치’, ‘감염병의 정치공세’, ‘정부의 자화자찬’, ‘정치인의 쇼맨십’, ‘과학을 밀어낸 괴물 같은 정치’ 같은 자극적이고 부정적인 표현이 우선 눈길을 끈다.
 

코로나 사태 정치적 논쟁 가열
정략적·정파적 정치를 넘어
공익·공동체의 정치 추구해야
내달 총선 올바른 판단이 중요

사실 정치에는 이러한 부정적 측면이 내재한다. 정치에 대한 현실주의적 시각에서 보면, 정치는 각자의 협소한 사적 이익을 둘러싼 충돌이자 자신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기 위한 경쟁을 의미한다. 라스웰(Lasswell)과 같은 정치학자는 정치란 ‘누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획득하는가의 문제’라는 유명한 정의를 내린 바 있다. ‘정치적(political)’이란 용어에 대한 사전적 정의를 찾아봐도 ‘교활하고(crafty) 흉계가 있는(scheming)’이라는 뜻이 나온다. 우리가 종종 ‘그자는 너무 정치적이야’라고 비판할 때의 바로 그 의미다.
 
현 ‘코로나19의 정치’는 분명 이러한 어두운 면을 보인다. 총선을 앞두고 정치세력 간 권력을 잡기 위해 정파적 이익을 앞세우며 싸우고 헐뜯는 모습으로 나타나면서,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이는 언론에 의해 더욱 증폭되기도 하는데, 언론 보도도 이념적 성향에 따라 현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에 대해 상반된 태도를 보인다. 즉 언론도 일부분 ‘코로나 정치’와 ‘자기 정치’를 벌이는 형국이다. 오죽하면 한 특정 보수 신문의 정략적이고 정파적인 보도에 대해 기자협회가 공식적으로 비판하는 칼럼을 발표하기까지 했겠는가.
 
하지만 이게 ‘코로나19 정치’의 전부가 아니며, 전부여서도 안된다. 현실주의와 대비되는 이상주의의 시각에서는 정치를 전체 공동체의 이익을 추구하며 공동체에 봉사하는 행위로 해석한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가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고 했을 때, 정치는 인간을 다른 동물들과 가장 확실하게 구별할 수 있는 특징으로, 가장 높은 수준의 인간 행위라는 의미였다. ‘정치적’이란 용어의 사전적 의미 또한 현실주의와 달리 ‘총명하고(sagacious) 판단력 있는(judicious)’이라는 뜻이 있다. ‘그자는 너무 정치적이야’라고 비난하기도 하지만 ‘그분은 참 정치력이 있어’라고 칭찬하기도 한다. 현실주의의 권력이 ‘상대방보다 더욱 큰 권력을 희구하는 상대적 권력(power over)’이라면 이상주의의 권력은 공동체를 위해 함께 행동하도록 하는 능력, 즉 ‘공동목적을 추구하기 위한 절대적 권력(power to)’을 의미한다. 나아가 현실주의 정치가 정부와 전문 정치인 및 엘리트 그들만의 리그에 국한된다면, 이상주의의 정치는 민간과 일반 시민이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불어, 함께 권력을 행사하며 다스리는 거버넌스(民官協治)의 정치를 중시한다.
 
과연 현 ‘코로나19의 정치’에서 이러한 이상주의적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까. 물론 아직 조심스럽지만, 최근 미국 워싱턴 포스트(Washington Post)등 전 세계 여러 외신은 코로나19에 대한 중국의 권위주의적 대응과 비교해 한국의 민주주의적 대응을 유효한 모델로 주목하고 있다. 한국의 대규모 검사 시스템, IT 기술, 의료보험 체계, 과거 사스와 메르스 사태의 교훈 등 여러 요인이 있지만, 핵심은 중국 등과 비교한 정부의 상대적 개방성과 투명성, 공적 신뢰, 그리고 시민의식과 역량에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공적 영역은 상대적으로 최선을 다하며 모든 사실을 투명하게 알림으로써 공적 신뢰를 쌓는 한편 시민들은 높은 시민의식과 자발적 협력으로 부응해 코로나19 위기에 잘 대처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즉 공동체를 위한 거버넌스의 정치가 작동했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지자체 수준으로 내려가면 이러한 민관협력 정치의 중요성은 더욱 두드러진다. 수많은 사례가 있겠지만, 대구에 내려가 직접 현장을 본 정세균 총리는 이를 두고 ‘대구의 품격’이라 불렀다. 품격 있는 정치가 가능하다는 얘기 아니겠는가.
 
진실은 대개 현실주의와 이상주의 중간 어딘가에 위치한다. 결국, 바람직한 정치란 공적인 대화와 토론을 통해 가능한 한 사익과 상대적 권력 추구의 정치를 완화하면서 공익과 공동체 역량 강화의 정치를 살리는 것이다.  
 
필자는 첫 화상 강의에서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주문했다. 여러분의 생각과 가치관에 따라 ‘코로나19의 정치’의 부정적인 모습에 대해 맘껏 비판해보라. 하지만 반드시 팩트에 대해 꼼꼼하게 살펴보라. 동시에 긍정적인 면도 찾아보고 나아가 어떻게 공동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정치 본연의 역할을 복원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해보기 바란다. 그리고 다음 달에 똑바로 한 표를 행사하자!
 
김의영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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