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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연의 시시각각] 김대중·노무현 더럽히지 마라

중앙일보 2020.03.20 00:25 종합 30면 지면보기
최상연 논설위원

최상연 논설위원

길거리를 걷다 보면 모두가 예외 없이 마스크를 쓰고 있는데 놀라고, 도대체 어디서들 구했는지 궁금해진다. 마스크 사겠다고 긴 줄에 끼어 서는 노역을 잘 알고 있어서다. 파는 약국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없습니다. 언제 올지 모릅니다. 욕이나 항의는 정부에 직접!’이라고 꾹꾹 눌러쓴 빨간색 팻말을 자주 만난다. 왜 모두가 혀를 차게 됐을까. 정부의 갈팡질팡이 이 길로 끌고 갔기 때문이다. 정부 말을 믿고 사재기를 욕하던 사람만 바보가 됐다. 반대로 갔어야 했다.
 

위기지만 당·정·청 리더십 실종
두 전직 아들·사위 영입하며
왜 실용정신은 따르지 않는지

한쪽에선 ‘의심 증상 없는 사람은 쓰지 않아도 된다’며 ‘선의의 양보’를 권유하는 정부가 있고, ‘반드시 착용하라’고 안내 방송하는 정부가 또 따로 있다. 하지만 이 난리통에도 깨알 같은 정치쇼엔 소질이 있는 청와대다. 엊그제는 “UAE에 진단키트 5만 개를 수출했다”고 자랑했는데 알고 보니 진단키트가 아니라 그냥 용기였다. 겨우 마스크 하나 해결 못하는 걸 덮으려다 보니 ‘사실은 충분한데…’란 염장 질러대는 오버와 분칠, 엇박자가 나왔다. 이 정도면 거의 대국민 속임수다.
 
헛발질이 정부와 청와대만도 아니다. 집권당 정치는 난장판 수준이다. 결국 비례민주당으로 갔는데 도무지 민망하거나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없다. 오히려 떳떳하고 당당하다. 비례위성정당은 ‘쓰레기 정당’에 ‘의석 도둑질’이라고 검찰에 고발까지 했다. 자기들 비례정당은 군소 야당이 참여하는 연합정당이어서 다르다고 우기더니 구차한 궤변과 억지만 남았다. 선거를 불과 한 달 앞두고 이런 역겨운 삼류 코미디를 여당이 하고 있는데 자기들은 ‘본래 선거법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란다.
 
더 황당한 건 그렇게 만든 비례위성정당에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을 당선 안정권에 배치했다는 거다. 김대중 정부 당시 대통령의 세 아들 모두 각종 비리로 처벌돼 ‘홍삼 트리오’로 불렸는데 빠짐없이 국회의원을 하게 되는 모양이다. 세습정치를 하는 나라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는 진기록이다. 도대체 어떤 ‘비례대표성’이 있다는 건가. 앞서 노무현 전 대통령 사위는 지역구에 공천했다. 친문 현역 의원은 100% 살아남았고, 청와대 출신 인사들은 20명 넘게 본선에 올랐다. ‘진박 공천’ 시즌2다.
 
당·정·청이 왜 모조리 이 지경인 것인가. 오로지 코드만 남아서다. 믿을 건 내 편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울산 사건 핵심 피의자가 줄줄이 공천을 받고 조국 전 장관을 비판하면 아웃이다. 집권 3년 내내 친노동, 반기업의 한 길로 달렸고 세금만 뿌려댔다. 그 결과가 서민 경제 초토화고 난장판 된 부동산 시장이다. 거지 같다던 경기는 정말로 거지 같아지는데 말로는 서민 정부란다. 그걸 누가 믿겠나. 서민이 정말로 살기 좋아졌나.
 
청와대 회의실엔 아직도 ‘나라답게 정의롭게’라고 쓰여 있다. 하지만 이건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라는 촛불정신 배반이다. 촛불정신은 도덕성과 개혁성이지 꼼수와 기회주의가 아니다. 김대중 아들, 노무현 사위를 영입한다고 촛불 정당이 되는 게 아니다. 김대중 정신과 노무현 정신으로 돌아가는 게 민주당이 지키고 보전해야 할 전통이다.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으로 정치를 해야 한다는 게 김대중의 정치 철학이다. 코드 외길에 ‘전 세계 모범’이란 자화자찬으론 갈 수 없다.
 
미증유의 엄중한 쓰나미가 몰려오는 모양새다. 선거와 우리만 생각하는 코드 당·정·청에 눈치만 살피는 ‘예스맨’의 위기대응팀으론 넘어서기 어렵다. 대통령이 주재하는 원탁회의와 대책회의가 해결해 주지도 못한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도 경제는 심각했고 전문가들은 제발 코드에서 벗어나 달라고 주문했다. 이젠 정말 그럴 때다. 더구나 적폐 청산 정부를 내세웠다면 문제 유발자가 아니라 해결자가 돼야 한다. 하지만 이 정권이 그럴 수 있을까. 어렵다고 본다. 그래서 지금 위기가 정말로 더 불안한 거다.
 
최상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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