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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만부 베스트셀러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 별세

중앙일보 2020.03.18 16:53
18일 별세한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 중앙포토

18일 별세한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 중앙포토

 “나는 절반은 역사책 쓰는 사람이고 절반은 현실 속의 역사 운동가”라 했던 역사학자 이이화(李離和) 선생이 18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84세.
고인은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지 않았지만 50년 넘게 한국사를 공부하고 연구했다. 특히 해방 이전까지를 다룬『이이화 한국사 이야기』(한길사) 는 1994년 기획과 집필을 시작해 10년 만에 완간했으며 20여 년 동안 300쇄, 독자 50만 명을 기록하고 2015년 개정판을 냈다. 개인이 쓴 한국 통사로는 최대 분량으로 꼽히는 22권이다. 이 책은 정치사 위주의 역사 서술 대신 경제ㆍ사회ㆍ문화를 아우르고 생활사와 문화사를 중심에 놓았으며 역사 속에서 민중에 주목했다. 
 
고인은 1936년 주역의 대가였던 야산 이달의 넷째 아들로 대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부친과 전북 익산으로 이주했고 학교에 다니는 대신 부친에게 사서(四書)를 배웠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가출해 고학하다 광주고를 졸업했고 서울로 와서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다녔다. 서라벌예대는 이후 중앙대에 편입됐다.
 
대학을 중퇴한 후엔 외판원, 술집 종업원, ‘불교시보’ 기자, 학원 강사 등 다양한 일을 했고 일간지에서 임시직을 거쳐 한국고전번역원의 전신인 민족문화추진회에서 고전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이후엔 서울대 규장각에서 고전 해제를 썼다. 한국사 저술가로 명성을 얻게 된 것도 이 무렵이다. 신문과 잡지에 기고한 ‘허균과 개혁사상’ ‘척사위정론의 비판적 검토’ 같은 글이 화제가 됐다.
 
1986년 역사문제연구소가 창립될 땐 운영위원으로 참여했고 2대 연구소장을 지냈다. 당시 이사장은 박원순 현 서울시장이었고 소장은 정석종 영남대 교수, 부소장은 문학평론가 임헌영씨였다.
 
특정 시대에 집중하지 않고 고대부터 현대까지 오가며 연구·서술했던 고인의 역사관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고인은 중앙선데이와 2015년 인터뷰에서 “고대사와 관련해 나를 역적 취급하는 이들도 있지만 내 입장은 과학적 역사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군이 대제국을 건설했다는 것과 같은 억설을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구 선생이나 이순신 장군에 대한 우상화를 경계해야 한다 주장했고 역사 속의 여성 인권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무엇보다 “역사에서는 민족 우수성보다 중요한 것이 진실”이라는 신념이 확고했다. 일본과 중국의 역사 왜곡에는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우리 민족의 우월성을 앞세우는 민족주의 사관도 경계하는 식이었다.
 
또 “나를 ‘좌빨’이라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철저한 민주주의 신봉자”라고 했다. 자신을 재야 사학자라 부르는 데 대해 “나는 강단 사학과 정면 대결한 적 없다. 어느 쪽이든 엉터리 주장에 반대할 뿐”이라고 말했다.
 
강의실을 나온 역사를 가지고 대중을 상대로 다양한 책을 냈다. 『인물로 읽는 한국사』『만화 한국사』『허균의 생각』『전봉준 혁명의 기록』 등이 대표적이다. 고인의 광주고 후배인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은 “이이화 선생은 고졸 출신으로 역사학을 소신껏 연구해 일가를 이룬 인물이다. 역사의 아웃사이더들에게 관심을 기울였다”고 평했다.
 
고인은 단재상, 임창순 학술상을 받았고 2014년엔 원광대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고구려역사문화보전회 이사장,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위원장을 지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영희 씨와 아들 응일 씨, 딸 응소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발인은 21일 오전 10시. 02-2072-2010.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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