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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기지 유유히 들어간 노인…언제 고치나, 軍경계실패 흑역사

중앙일보 2020.03.18 05:00
전방 경계초소 통문에서 군인들이 문을 개방하고 있다. [사진 뉴스1]

전방 경계초소 통문에서 군인들이 문을 개방하고 있다. [사진 뉴스1]

 
최근 군의 경계 실패가 잇따르고 있다. 16일 오후 수방사 방공진지 울타리 밑 땅을 파고 침입한 50대 남성은 1시간 만에 발견됐다. 지난 7일에는 시위대 2명이 제주 해군기지 내부로 들어간 뒤 거의 2시간이 지나서야 대응이 이뤄졌다. 앞서 1월에도 70대 노인이 진해 해군기지 정문으로 유유히 들어가는 걸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부대를 배회하던 이 노인은 1시간 30분이 지나서야 발각됐다.

‘호출 귀순’, ‘노크 귀순’ 휴전선 뚫려
북한 잠수정은 택시기사가 신고해
외부인에 브리핑에 소총과 실탄도 건네
무기고 도난, 초병 무기 탈취도 빈번

 
17일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경계작전에 소홀함이 있었다”고 인정하면서 “더이상 물러설 여지가 없다는 절박한 심정”을 강조했다. 군대의 경계 작전 실패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동안 휴전선이 뚫리거나 초병이 총기를 빼앗기는 사례가 여러 번 있었다. 일종의 '고질병'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북한 잠수정도 감시병이 아닌 택시기사 신고로 발견한 적이 있다. 1996년 9월 새벽 강원도 강릉의 해안도로를 달리던 택시기사는 해안가에 좌초된 북한 소형 잠수정을 발견해 신고했다. 이때까지 군은 북한 잠수정에 대해 까맣게 몰랐다. 북한 잠수정 승조원들은 북한 인민무력부 정찰국 소속 공작원으로 밝혀졌다. 한국의 비행장ㆍ발전소 등 주요 시설의 자료를 수집하고, 군의 경계태세를 시험해 보려는 목적으로 침투했다.
 
강원도 속초 해상에서 북한 특수부대 공작원이 탑승한 잠수정이 어선의 그물에 걸려 표류하다 발견됐다. 운반선인 동해호에 실리고 있다. [중앙포토]

강원도 속초 해상에서 북한 특수부대 공작원이 탑승한 잠수정이 어선의 그물에 걸려 표류하다 발견됐다. 운반선인 동해호에 실리고 있다. [중앙포토]

 
불과 2년 후 유사한 사건이 반복됐다. 이번엔 어민의 도움을 받았다. 1998년 6월 22일 강원도 속초 앞바다에서 꽁치잡이 어선이 설치한 그물에 걸린 북한 소형 잠수정을 발견했다. 내부에선 북한 공작원 9명의 시신이 발견됐다. 침투에 실패하자 스스로 자결해 증거를 인멸한 것으로 보인다.
 
바다 경계선만 뚫린 건 아니다. 2008년 4월 28일 오후 경기도 파주 지역 군사분계선을 넘어온 북한군 장교는 우리 군 경계초소(GP) 앞까지 도착했다. 하지만 이를 발견한 경계병은 없었다. 백기를 흔들며 총을 7발이나 쐈지만 마찬가지였다. 2시간 정도 낮잠을 자며 기다린 뒤 겨우 한국군 장병을 소리쳐 불러냈다.  
 
2012년 당시 김관진 국방장관이 북한군 '노크 귀순' 파문과 관련해 대국민사과문 발표를 마친 뒤 머리 숙여 인사하고 있다. [중앙포토]

2012년 당시 김관진 국방장관이 북한군 '노크 귀순' 파문과 관련해 대국민사과문 발표를 마친 뒤 머리 숙여 인사하고 있다. [중앙포토]

 
‘호출 귀순’으로부터 4년이 지난 뒤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2012년 10월 2일 휴전선을 지키는 군 장병 생활관(숙소)에 누군가 다가와 문을 두드렸다. 강원도 고성에서 복무하던 북한 병사는 군사분계선(MDL)과 남측 전방초소(GOP) 철책을 뚫고 들어왔다. 군은 ‘노크 귀순’ 사건을 쉬쉬했지만, 6일 후 국회 국정감사에 들통났다.
 
북에서만 내려오는 건 아니다. 2009년 10월엔 폭행혐의로 지명수배된 30대 남자가 강원도 고성지역 군사분계선 3중 철책을 뚫고 월북했다. 군에선 월북 사실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관련 사실을 전달한 북한 관영방송 보도를 보고서야 뒤늦게 철책 점검에 나섰다.
 
사령부도 예외는 아니다. 2015년 2월 포항 해병대 1사단에선 민간인 차량이 부대를 휘젓고 다녔다. 초소 장병이 신분증을 요구했지만 이에 응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진입했다. 부대는 수색에 나섰지만 10여분 뒤 운전자 스스로 차량을 몰고 다시 위병소에 나타날 때까지 찾지 못했다. 이때도 신분증을 요구했을 뿐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운전자는 이 틈에 그대로 부대 밖으로 달아났다.
 
2012년 11월 당시 대선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이 강원도 고성 22사단 GOP부대를 방문해 '노크 귀순'으로 물의를 빚은 전방 철책을 살펴보고 있다. [중앙포토]

2012년 11월 당시 대선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이 강원도 고성 22사단 GOP부대를 방문해 '노크 귀순'으로 물의를 빚은 전방 철책을 살펴보고 있다. [중앙포토]

 
무기 탈취 사건도 빈번했다. 2001년 7월 전북 신병교육대 무기고에서 소총 두 정이 도난됐다. 2010년 4월엔 경기도 연천 군부대 사격장에서 훔친 실탄과 공포탄을 유통하던 판매책이 3년 만에 검거됐다.
 
군 장병 스스로 무기를 내준 사건도 있다. 1997년 1월 육군 51사단 해안초소에 육군 소령을 자칭한 40대 남자가 접근했다. “군단 백 소령이다” 이 한 마디에 초병은 총을 거두고 거수경례를 했다. 소초장은 인삼차를 대접하며 30여 분간 책임구역 지형과 현황을 브리핑했다. “총과 실탄을 빌려 달라”는 요구에 소총 1정과 실탄 30발도 건넸다. 이때 사라진 ‘백 소령’은 아직도 누구인지 신원이 확인되지 않는다.
 
지난해 북한 선원 4명이 탄 어선이 연안에서 조업 중인 어민의 신고로 발견됐다. 당시 삼척항 부두에 정박한 북한 주민과 어선. [사진 뉴스1]

지난해 북한 선원 4명이 탄 어선이 연안에서 조업 중인 어민의 신고로 발견됐다. 당시 삼척항 부두에 정박한 북한 주민과 어선. [사진 뉴스1]

 
군 당국은 사건이 발생하면 피해 사실을 숨기기에 급급했다. 2005년 7월에는 강원도 동해 해안초소에서 민간인 3명이 해안초소를 순찰하던 장병 2명을 흉기로 찌르고 무기를 탈취했다. 군에선 소총 2정만 빼앗겼다고 발표했지만, 실탄이 든 탄창 2개와 수류탄도 함께 탈취됐던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군 당국의 은폐는 반복됐다. 앞서 2002년 2월에도 민간인 2명이 수방사 부대에 침입해 초병 2명을 흉기로 찌르고 소총 2정을 빼앗았다. 이들은 일주일 뒤 경기도 해병 부대에 몰래 들어가 실탄 400발도 훔쳤다. 실탄이 도난당한 사실은 이들이 은행강도에 실패하고 체포될 때까지 비밀에 부쳐졌다.
 
총기 탈취가 잇따르자 군에선 국방부 청사 경계근무를 서는 초병의 소총을 가스총과 전기충격기로 바꿨다. 총을 빼앗기는 게 두려워 총을 지급하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조치로 대응했다.
 
지난 2012년 대선 후보 시절에 노트 귀순 현장을 방문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안보에 구멍이 뻥뻥 뚫렸다”며 질책했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서도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
 
지난해 6월엔 북한 소형 목선이 삼척항에 도착할 때까지 군 당국은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7월 해군 2함대에선 근무지를 이탈한 초소 경계병이 간첩으로 오인돼 부대에 소동이 일기도 했다.
 
박용한 기자 park.yong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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