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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희의 시시각각] 코로나 시대를 건너는 법

중앙일보 2020.03.18 00:36 종합 30면 지면보기
양성희 논설위원

양성희 논설위원

이건 미리 온 ‘언택트(untact·비대면)’ 시대다. 영화에서나 보던 미래사회가 불쑥 앞당겨진 느낌이다. 상당수 오프라인 관계가 끊겼다. 마스크에 재택근무, 혼밥은 필수. 화상회의, 온라인 쇼핑과 동영상 시청이 주된 일과다. 미처 준비되지 못한 언택트 시대에 부적응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학생들은 ‘아날로그’ 교수님들의 서툰 사이버 강의가 불만이다. ‘방콕’ 식구들을 위해 삼시 세끼 차려 내느라 지친 주부는 중국에서 코로나19로 이혼이 늘었다는 뉴스에 피식 웃는다.
 

인간과 자연 관계 되돌아보고
인간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야
공생이 사회적 면역력의 출발

아무리 치명률이 낮다고 해도 최고의 방역은 개인위생, 그다음은 운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통제 불능, 예측 불가능성 때문에 공포감이 더 크다. 당장은 바이러스가 문제지만 향후 몰려올 경제적·사회적 여파는 짐작조차 안 된다. 언젠가 이 사태가 끝난 후, 우리의 삶은 온전한 질서를 되찾을까.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사망해 노동력이 줄면서 봉건제가 흔들린 흑사병 때처럼 일과 생활 방식, 경제·산업체제의 전 지구적 재편이 불가피하리란 전망이 많다.
 
재난과 위기는 늘 우리 사회의 민낯을 드러낸다. 바이러스야 빈부를 가리지 않지만 세상은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사람과 그조차 할 수 없는 사람으로 나뉜다. 모두의 안전한 언택트를 위해 ‘쿠팡맨’은 발에 땀 나도록 뛰어다녀야 한다. 자가격리도 일정 여건이 갖춰져야 가능한 일이다. 위기일수록 사회적 약자가 더 고통받는 불평등의 확인이다. 넘쳐나는 가짜뉴스 등 인포데믹(정보전염병)과 혐오는 동전의 양면이다. 똑같은 걸 누구는 ‘우한 폐렴’, 누구는 ‘대구 코로나’ ‘신천지 코로나’로 불렀다. 정부는 외신도 호평하는 방역 성공이라 자화자찬하지만 입맛이 쓰다. 과거 정부보다 투명한 정보 제공은 앞섰지만, 사실 방역의 수훈갑은 미국 등과는 비교 안 되는 공공의료·건강보험 인프라, 주민등록번호처럼 국민의 동선을 촘촘히 파악하는 중앙통제 시스템 자체 아닌가. 그저 정부의 실책만 기다리는 듯한 야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진영 논리 우선, 정치 셈법에 몰두하는 구태를 벗지 못했다.
 
참고로 매독은 한때 영국인들에게는 ‘프랑스 발진’, 파리 사람들에게는 ‘독일 질병’, 피렌체 사람들에게는 ‘나폴리 질병’, 일본인들에게는 ‘중국 질병’으로 불렸다. 1890년대 미국에서 천연두는 ‘검둥이 가려움증’ ‘이탈리아 가려움증’ 또는 ‘멕시코 혹’이었다. “질병이란 우리가 타자로 정의한 자들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오랜 믿음”(『면역에 관하여』)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언택트를 살면서 콘택트, 커넥트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전 지구적 감염 확산은 우리가 초연결 사회를 살고 있음을 새삼 확인시킨다. 거기에 내가 병들지 않으려면 우선 남이 병들지 않아야 한다는 감염병의 역설이 있다. 최근 한 업체의 홍보문 중 화제가 된 “가난한 자가 단지 가난하기 때문에 불결할 수밖에 없다면 공중위생은 아무리 부유한 자도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는 말의 울림도 크다. 무엇보다 코로나19는 에볼라, 사스, 메르스에 이어지는 인수공통 감염병이다. 자연 파괴로 서식지를 잃은 야생동물이 인간과 접촉하면서 바이러스 위험이 상존하는 ‘바이러스 뉴노멀 시대’가 열렸다. 지구온난화는 지금 이 순간에도 빙하 속 잠든 바이러스를 깨우고 있다. 철저히 인간 중심으로 세계를 재편해 온 ‘인류세의 위기’란 경고가 나오는 이유다. 인간과 자연의 공생이라는 사회적·집단적 면역을 더는 미룰 수 없는 이유다.
 
덧붙여 기왕 예기치 못한 미니멀 라이프를 살면서 삶의 우선순위를 되돌아보는 것, 일상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것도 ‘코로나 블루’(우울감)를 이기는 한 방법이 아닐까 한다. 『면역에 관하여』의 저자 율라 비스는 종양학자인 자신의 아버지가 스토아철학 책을 탐독했는데, 그건 “우리가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을 통제할 순 없지만 그 일에 대한 감정은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썼다.
 
양성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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