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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 팔던 소녀에서 억대 수입 버는 온라인 강사로 성공

중앙일보 2020.03.17 17:16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창궐로 중국 전역 교육시설의 고심이 깊다. 개강(혹은 개교)를 미루고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교사와 교수들은 온라인 강의를 배우기 위해 진땀을 흘리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 기회를 틈타 주춤하던 온라인 교육 업체나 강사들이 재조명 되기도 했다. 그 중, 길거리에서 부모를 따라 과일을 팔다가 온라인 교사로 성공해 억대 수입을 버는 90년대생이 화제이다.
 
중국 산둥(山东)성 칭다오(青岛) 출신의 90년대생 원원(稳稳)은 6살 때부터 부모님을 따라 거리에서 과일을 팔았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고, 대학에 들어갔다. 22세에 토목공학과를 졸업하자마자 건설 현장에 투입되었다. 5년동안 현장 업무에만 몰두하여 전문성을 인정 받는다.
 
얼마 후 온라인 교육 플랫폼에서 소방 엔지니어 과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비주류 온라인 강의에서 끝까지 버텼고, 큰 인기를 얻게 된다. 원원은 베이징에 거취를 마련하여 교육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5천여명의 학생들을 가르치며 월 소득 백만위안(약 1억7천만원)을 벌어들이고 있다.
원원(稳稳)이 라이브로 온라인 수업을 하고 있다. [사진 진르터우탸오]

원원(稳稳)이 라이브로 온라인 수업을 하고 있다. [사진 진르터우탸오]

거리에서 과일 팔던 소녀

어린시절의 원원(稳稳) [사진 진르터우탸오]

어린시절의 원원(稳稳) [사진 진르터우탸오]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6살 때부터 부모님의 과일 장사를 도왔다. 원원은 길거리에서 사탕수수를 잘라 또래의 아이들에게 줄 때, 그들의 놀란 시선을 보기 싫어 땅만 쳐다봤다고 한다. 시과스핀(西瓜视频)공식 계정 졘파르지(减法日记)와의 인터뷰에서 원원은 당시를 회상하며 ‘쥐구멍이라도 찾아 숨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어린시절의 원원(稳稳) [사진 진르터우탸오]

어린시절의 원원(稳稳) [사진 진르터우탸오]

새해 첫날부터 눈 속에서 꽁꽁 언 손발로 과일을 팔아야 했던 원원은 동년배들이 예쁜 옷을 입고 지나갈 때 무척 부러웠다. 어린 나이에 겪은 혹독한 길거리 과일판매 경험은 독립적으로 자라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원원은 ‘남성의 전유물’이라 불리는 토목공학과로 진학했고, 쟁쟁한 실력의 남자들을 제치고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다.

철밥통 때려치고(?) 온라인 교사 된 이유

시공 현장에서 감리업무를 하고 있는 원원(稳稳) [사진 진르터우탸오]

시공 현장에서 감리업무를 하고 있는 원원(稳稳) [사진 진르터우탸오]

졸업 후 산둥성 칭다오에 있는 국유기업에 입사한다. 시공 시 관리감독하는 감리업무를 맡아 동료 남자들과 똑같은 강도로 현장 업무를 했다. 거친 업무에 매일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와 몰래 눈물을 훔쳤다. 본인의 이상향과 너무 다르다고 판단한 원원은 스스로 운명을 바꾸기로 결심한다.
 
중국 건설기술자격제도인 건조사(建造师) 시험에 도전한다. 생활비를 위해 현장 일을 계속하며 밤을 새 공부했다. 시험에 성공적으로 통과했지만 원원은 다른 시험에 또 도전한다. 일급소방엔지니어 자격증을 위해 업무 외 시간은 모두 공부에 투자한다. 하루 4시간도 채 잠들지 못하며 열심이 공부한다. 천성이 공부벌레였던 원원은 공부에 몰두해 밥 먹는 것조차 잊었다고 한다.
 
건축가로서 필요한 주요 자격증 2개를 모두 쟁취하고 사표를 낸다. 철밥통을 걷어찬 이유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기 때문이다. 자신의 공부비법을 학생들에게 공유하기 위함이다.
원원(稳稳) [사진 진르터우탸오]

원원(稳稳) [사진 진르터우탸오]

원원이 온라인 교사로서 첫발을 내딛었던 때는 신둥팡(新东方), 하오웨이라이(好未来) 등 온라인 교육 산업이 주목받던 시기였다. 온라인 교육 콘텐츠에서 기회를 엿본 것이다.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다. 라이브 방송에 무지했던 원원은 여러 번 장애물에 부딪칠 수 밖에 없었다. 겨우 입소문을 탔지만 학생수는 정체되었다. 어린 20대 여성이 건축 공정을 가르친다는 데에 신뢰하지 못한 것이다.
 
“어려워도 정신을 가다듬고 (평정심을) 유지해야 했어요.
그렇지 않으면 제 이름(‘稳稳’의 ‘稳’은 ‘안정’이라는 의미)에 먹칠하는 셈이죠.”
 
온라인 방송을 시작한지 1년이 가장 어려운 시기이다. 뛰어난 미모나 신박한 콘텐츠가 아니면 뜨기 어렵기 때문이다. 많은 초보 유튜버들이 오래가지 못하는 이유기도 하다. 하지만 원원은 버티기로 결심한다.
원원(稳稳)이 본인이 창업한 회사로 출근하고 있다. [사진 진르터우탸오]

원원(稳稳)이 본인이 창업한 회사로 출근하고 있다. [사진 진르터우탸오]

'존버'는 승리한다

첫 해에 손 꼽을 정도로 적었던 유료학생들은 1년 후, 300명으로 늘었다. 대외적인 홍보나 광고도 없었다. 순수 입소문만으로 2년 후 2천여명의 학생을 확보한다. 1년만에 7배의 학생이 증가한 것이다. 연봉 100위안(약 1억7천만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수입을 벌었다.

3D 모델링 교구 개발로 주목

3D 모델링으로 제작한 소방 설비 교구 [사진 진르터우탸오]

3D 모델링으로 제작한 소방 설비 교구 [사진 진르터우탸오]

온라인 교육 주보로 활동하며 인기를 얻었지만, 다른 여자 왕홍에 비해 미모가 특출 나지는 않다. 원원은 오직 ‘강의 퀄리티’ 하나로 승부한다. 교수법 연구개발에 가장 많은 시간과 돈을 쏟는다. 억대 수입에도 여전히 임대주택을 전전하는 원인이다. 다른 강의와 가장 큰 차별점은 바로 ‘3D 모델링으로 제작한 소방 설비 교구’이다.
원원(稳稳)이 사용하던 수업 교구 [사진 진르터우탸오]

원원(稳稳)이 사용하던 수업 교구 [사진 진르터우탸오]

베이징에 올라와 창업을 한 것도 차별화를 두기 위한 전략이었다. 3D 모델링을 연구하여 교육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 했다. 그동안 만든 교육 자료를 모아 교재를 출판하기도 한다. 2019년 말 기준, 원원의 수강생은 5천명을 넘어섰다. 전년도의 2천명에 비해 2배 이상 오른 수치이다. 연봉 100만위안이 월수익으로 바뀐지도 꽤 되었다.
원원(稳稳)이 온라인 수업 전, 단장을 하고 있다. [사진 진르터우탸오]

원원(稳稳)이 온라인 수업 전, 단장을 하고 있다. [사진 진르터우탸오]

원원은 꿈은 있지만 생활이 어려운 청소년들을 후원하기도 한다. 암에 걸린 또래 소녀가 원원을 롤모델로 삼고 있다고 진심어린 글을 올리자, 그녀만을 위한 무료 수업을 열어주기도 했다.
 
인터넷 왕홍 강사로 거듭나기까지 원원은 ‘본인의 노력과 믿음’이 가장 큰 힘이었다고 말한다. 청소년들에게 ‘꿈을 위해 자신을 믿고 현실과 맞서 싸운다면 이루지 못할 꿈은 없다’고 당부한다.
 
글 차이나랩 이주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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