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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스 "Fed, 더 짜낼 즙 없어…美경제 '통화 블랙홀'에 빠졌다"

중앙일보 2020.03.17 16:57
로런스 서머스 전 미 재무장관은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먹히지 않는 상황을 우려했다. [블룸버그=연합뉴스]

로런스 서머스 전 미 재무장관은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먹히지 않는 상황을 우려했다. [블룸버그=연합뉴스]

“사실상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서는 더는 짜낼 수 있는 ‘즙’(juice)이 남지 않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충격으로 미국 경제가 본격적으로 ‘블랙홀 통화 경제’에 빠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중앙은행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경기를 부양할 수 없는 막다른 길에 놓인 상황을 말한다. 실제로 Fed가 5년 만에 ‘제로(0) 금리’ 시대로 복귀했다는 소식에 전 세계 주식 시장은 되레 폭락하고 있다.  

Fed 다시 '제로(0) 금리'에도 뉴욕증시 폭락세
"저금리에서 중앙은행 쓸수있는 정책 더는 없어"
시중에 돈풀어도 기업 투자 줄이는 '유동성 함정'
최악의 경우 금리인하 역효과…부실기업 좀비화

 
16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 재무장관 출신인 로런스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팬데믹(pandemic·세계적 대유행) 메커니즘은 예상하지 못했지만, 어떤 부정적인 충격이 우리를 ‘유동성 함정’에 빠뜨릴 것이라는 사실은 몇 년 전부터 분명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미 10년물 국채 금리가 0.8%를 밑도는 상황에서 “쓸 수 있는 통화 정책은 남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런 이유에서 Fed의 적극적인 통화 완화 정책에도 월스트리트의 투자자들은 동요하고 있다고 서머스 교수는 분석했다.  
 
서머스 교수는 미 경제학계의 ‘수퍼스타’로 꼽힌다. 27세에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이듬해인 1983년 하버드대 최연소 종신교수로 임용됐다. 이후 빌 클린턴 행정부의 재무장관으로 미국 경제를 호황으로 이끌었고, 오바마 행정부에서는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을 지냈다.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펜실베이니아대 교수이고, 폴 새뮤얼슨과 케네스 애로 등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이 그의 삼촌이다.  
 
서머스 교수가 지적한 ‘블랙홀 통화 경제’는 초저금리 상황이 지속되며 통화 완화 정책이 더는 먹히지 않는 상황을 의미한다. 시중에 돈을 풀어도 불확실한 경기 전망에 가계는 소비를 줄이고, 기업은 투자를 꺼린 채 돈을 쌓아두는 ‘유동성 함정’에 빠진 것이다.  
앞서 서머스 교수는 지난해 9월 트위터에 “미국을 포함한 세계는 저성장·저금리·저물가에 빠진 일본처럼 장기 침체에 직면했다”고 썼다. 경기 둔화에서 벗어나기 위한 공격적인 통화 정책을 펼쳤지만, 국채 금리는 더욱 하락하는 악순환에 빠진 일본의 전철을 세계 경제가 뒤따라 가는 ‘J(일본화) 공포’를 경고한 것이다. 그는 “노인 인구 비중이 커지고, 자동화 기기 발달로 일자리는 감소하고, 부의 양극화가 심화하는 앞으로의 상황이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최악의 경우, Fed의 통화 완화 정책이 리세션을 악화시키는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고 서머스 교수는 지적했다. 금리가 내려가면, 가계와 기업의 빚이 늘고, 자산 가격 상승을 부추겨 거품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기업의 부채 부담이 줄어들면 구조조정이 미뤄지고, 부실기업의 좀비화가 가속화돼 경제활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 서머스 교수는 “미국은 지난 10년간 장기화된 저금리 정책으로 이미 가계·기업 빚이 역대 최대로 늘고, 자산 가격에 거품이 꼈다는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코로나19의 충격이 세계 증시에 미치는 충격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는 “경제 위기의 상황에서 통화정책의 약효가 떨어진 현실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며 “미 증시가 더 폭락할 경우 그동안 증시가 지나친 유동성 공급으로 과열된 것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증명될 것”이라고 말했다.  
 
배정원 기자 bae.ju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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