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실어나를 배도 물건도 없다”…코로나 글로벌 확산에 속타는 수출 기업

중앙일보 2020.03.17 10:19
현대상선의 초대형 컨테이너 운반선. 20피트 크기 컨테이너 2만3960개를 한 번에 운송할 수 있다. 연합뉴스

현대상선의 초대형 컨테이너 운반선. 20피트 크기 컨테이너 2만3960개를 한 번에 운송할 수 있다.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중국에 이어 미국과 유럽으로 확산하며 수출 첨병인 해운업계의 속도 타들어 가고 있다. 중국발 물동량 회복이 쉽지 않은 데다 운임도 계속 하락하며 쪼그라드는 세계 무역의 피해를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는 것이다.

 
17일 현대상선에 따르면 이 회사의 2월 중국발 물동량은 전년 대비 50% 감소했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중국에서 출발해 미국과 유럽으로 실어나르는 물동량이 회사 전체의 50% 이상을 차지하는데, 코로나19로 중국 공장들이 멈춰서면서 물동량이 크게 줄었다”고 설명했다.

 

운임 하락에 영세업체 도산 위기 

물동량이 줄다보니 물건을 실어나르는데 받는 가격을 알려주는 운임지수도 계속 하락하고 있다. 중국발 컨테이너 운임지수(CCFI)는 지난해 말 970선까지 갔던 것이 지난 13일 898.44까지 급감했다. 화물선 운임을 대표하는 발틱 케이프사이즈 운임지수(BCI)는 1999년 집계 시작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그나마 업계 1위 현대상선은 형편이 나은 편이다. 중국 공장과 함께 닫혔던 항만이 다시 열렸고, 생필품을 중심으로 단기적으로나마 미국과 유럽의 수요가 있는 편이다. 글로벌 연합체인 ‘디 얼라이언스’를 통해 선박운용 조절도 가능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중소선사들은 가뜩이나 좋지 않은 재정 사정에 운임까지 크게 하락하며 도산 위기에 내몰린 실정이다. 업계 5위인 흥아해운은 지난 10일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한국해양진흥공사가 1500억원 규모의 금융지원책을 내놨으나 대출 자격에 미달하는 영세 선사들이 많아 업계는 시큰둥한 입장이다.
 

물건 실을 배도 미국 서부에 묶여 있어 

물동량이 준 것뿐 아니라 물건을 실어나를 배도 없다. 코로나19로 중국 하역이 여의치 않자 많은 선박들이 미국 서부에 묶여 있다. 그런데 중국 상황이 나아져 중국에서 미국· 유럽으로 물건을 이동시켜야 하는데 막상 중국엔 배가 없는 것이다. 통상 화물선이 미국에서 중국까지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데 3주가 걸린다.
 
정연승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공급망에 문제가 생긴 것”이라며 “선박 수요 증가가 확실한 유조선을 제외하고는 컨테이너, 벌크 부문의 수요 부진은 한동안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의 현대자동차 앨라배마공장에서 근로자들이 쏘나타와 아반떼(현지명 엘란트라)에 도어(문짝)를 붙이고 있다. 중앙포토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의 현대자동차 앨라배마공장에서 근로자들이 쏘나타와 아반떼(현지명 엘란트라)에 도어(문짝)를 붙이고 있다. 중앙포토

자동차·조선 등 사태 장기화 주시

해운업 뿐 아니라 한국의 수출을 주도하는 중후장대 산업이 모두 초긴장 상태다. 현대차의 경우 체코 공장, 미국 앨라배마주 공장, 기아차 슬로바키아 공장, 미국 조지아주 공장 등이 현지에서 부품을 조달해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공장 가동엔 현재 기준으론 문제가 없는 상황이다. 
 
물론 확진자가 다수 발생해 공장 문을 닫아야 하면 타격이 불가피하다. 최대의 걱정은 판매가 줄어드는 것이다. 현대차의 경우 미국 시장에서 지난 2월 5만313대를 팔아 역대 2월 실적으로는 최고 실적을 달성했다. 한창 좋아질 분위기에서 코로나19가 발목을 잡을까 걱정이다. 딜러 망을 가동 못 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것이다. 현대차 체코공장 노조가 14일 동안 방역 강화와 생산 중단을 요구한 점도 부담이다.
 

리먼 사태 이후 11년 만에 미국 실직자 지원 프로그램 

이에 따라 현대차는 판매 부진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현대차 미국판매법인(HMA)은 차량을 구매하거나 리스한 고객이 실직할 경우 최대 6개월간 할부·리스 금액을 대신 지불해주는 ‘어슈어런스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현대차가 어슈어런스 프로그램을 내놓은 건 2009년 리먼브라더스 사태 이후 11년 만이다. 
 
조선업의 경우 유가 하락으로 해양플랜트 발주가 사라져 일부 타격이 예상된다. 다만 조선업계는 원유 가격이 배럴당 50~60달러 선이었을 때에도 해양플랜트 수주가 활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보다 상황이 더 악화하진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조선업계 관계자는 "저유가 기조가 길어질수록 유조선 추가 발주를 기대할 수 있지만, 그 사이 국제 정세가 또 어떻게 바뀔지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성우 기자 blast@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