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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소설 『페스트』와 카뮈의 ‘상상력’

중앙일보 2020.03.17 00:13 종합 28면 지면보기
이혁진 소설가

이혁진 소설가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이후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가 많이 팔리고 있다고 한다. 페스트로 봉쇄된 프랑스 오랑이라는 도시의 이야기다. 나도 한 달 전쯤, 신천지 사태가 발발했을 무렵 『페스트』를 다시 읽었다. 흥미롭게 읽다 얼마 안 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리가 놓치기 쉬운 본질 일깨워
상상력 통해 다가갈 수 있는 진실
코로나와 한편이 되지 않기 위해…

1부 마지막, 주인공 의사 리외가 도지사와 통화하는 장면이었다. 리외는 현장에서 목도한 것을 토대로 도지사에게 말한다. 현재까지 취한 조치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도지사는 자신에게도 통계수치가 있으며 우려할 수준이기는 하다고, 정치인답게 말한다. 리외는 발끈한다. 우려할 수준 정도가 아니라 명백한 상황이라고. 하지만 도지사는 태연하게 대답한다. “중앙 정부에 명령을 요청하겠습니다.” 리외는 전화를 끊고 옆에 있던 동료의사에게 일갈한다. “명령이라니! 상상력이 필요할 텐데 말입니다.” (최윤주 역, 열린책들)
 
오역이 아닐까 싶었다. 난데없이 상상력이라니. 다른 판본을 찾아봤다. 문학동네와 민음사 판에서는 융통성이라는 단어로 번역돼 있었다. 역시 상상력이라는 단어는 소설 속 상황에서도 지금 우리가 당면한 엄중한 현실에서도 어울리는 단어가 아닌 듯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카뮈는 상상력이라는 단어를 반복해 쓴다. “(사망자 수) 발표는 사람들의 상상력에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봉쇄된 시에서 혼자 탈출하려는) 그랑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데는 약간의 상상력이 필요했다.” “(공무원들에 대해) 그들에겐 상상력이 부족합니다. 재앙과 맞설 수준들이 아닙니다. 짜낸 해결책은 코감기 수준에 불과해요.” “(봉쇄로 생이별하게 된 사람들과 보낸) 그날의 기억은 또렷했던 반면, 기억이 살아나는 그 순간 이제는 너무나도 먼 곳이 되어버린 그곳에서 상대가 무엇을 하고 있을지를 상상하기란 어려웠다. 요컨대 당시 그들에게(봉쇄당한 시민들에게) 기억력은 있었지만, 상상력은 충분치 않았던 것이다.”
 
특정한 단어를 반복해 쓸 때 작가는 분명한 의도를 갖게 마련이다. 다시 한번 번역을 살펴보고 싶어 이번에는 영문판과 불문판을 확인했다. 대화의 단어는 “imagination”, “l’imagination”으로 적혀 있었다. 모두 상상력이라는 뜻이다. 결국 카뮈가 상상력이라는 단어를 어쩔 수 없이 썼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오로지 그 단어로만 분명히 말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카뮈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는 지난 한 달간의 추이를 되새겨보면 알 수 있을 것 같다. 잦아드는 듯 싶던 전염은 신천지를 통해 폭발적으로 확산했다. 시장에서는 마스크와 소독약품이 동났고 정부는 뒤늦게 수급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어린이집과 학교는 개학을 연기했고 공중장소는 텅 비었다. 우리는 고립과 공포 속에서 정부의 뒤늦은 대책이나 신천지라는 종교집단의 폐해에 대해, 대구 지역 출신 감염자들의 몰상식함에 대해 비난하고 성토했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무엇이 결여해 있는지 보여주는 현상이기도 하다. 신천지를 통한 확산은 전염병이 명령을 초월할 수밖에 없음을, 통계수치 너머에 대한 상상력이 필요함을 단적으로 일깨운다. 예상했어야 할 위생용품 수급 문제는 정부 대응에 바로 상상력이 없었음을 가리키는 증거고 결과다. 신천지나 대구 지역에 대한 공포와 분노, 비난과 성토에 대해서도 똑같이 생각해 볼 수 있다. 증상을 느껴도 당장 직장에서 따돌림받거나 병원에서 진료를 거부당할 수 있는 지금 누가 자신의 위협보다 공공의 이익을 우선해 자신을 먼저 밝힐 수 있을까? 침묵과 은폐를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쉽지 않은 일이며 그 사람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두려움을, 오히려 질병과 사회관계에서 이중의 두려움을 느꼈을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신천지나 대구라는 지역사회를 통해 전파됐다면 우리가 속한 다른 어떤 집단이나 지역사회를 통해서도 역시 그럴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이 상상력과 개연성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어떤 진실은 상상력을 통해서만 지각할 수 있다. 우리가 모두 가해자일 수 있다는 것, 하지만 그것은 기실 우리가 모두 피해자이기 때문이라는 진실이 그렇다. 『페스트』의 말미에 카뮈는 타루라는 인물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에는 재앙과 희생자들이 있으며, 가능한 한 재앙과 한편이기를 거부해야 한다고 나는 말하는 거뿐입니다. 어쩌면 조금 단순하다고 보실지도 모릅니다만, 그리고 나 역시 단순한지 아닌지 잘 모르지만, 옳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이혁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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