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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거짓의 대가

중앙일보 2020.03.17 00:13 종합 28면 지면보기
박성훈 베이징특파원

박성훈 베이징특파원

“미국의 신종코로나 사망률이 3%대로 높다. 이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감염자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14일 사스(SARS) 퇴치 영웅 중난산(钟南山) 중국 공정원 원사의 충고가 중국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조기 발견과 격리가 가장 중요하다”는 조언도 빠지지 않았다. 미국보다 중국의 전염병 대처 방식이 우월하다는 암시였다. 14억 인구의 이동을 한 달 이상 통제했지만 신종코로나 확산을 저지한 건 다행스런 일이다. 그러나 중국이 조기 발견의 중요성을 내세울 수 있을까.
 
글로벌 아이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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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 사태 초기 중국 정부가 현지 전문가들의 보고를 묵살한 정황은 갈수록 구체화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30일 우한 중심병원 응급실 환자의 폐포 세척액에서 ‘사스(SARS) 코로나바이러스와 일치’라는 검사 결과가 나왔다. 아이펀(艾芬) 응급실 주임은 1월 1일 자정 무렵, 병원 책임자들이 참석한 회의에서 “‘사스가 돌아왔다’ ‘사람 간 전파될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중국 잡지 ‘인물(人物)’에 말했다. 이 병원 의사 천샤오닝(陈小宁)은 “전염병이 시작되던 날(12월 30일) 비상 회의에서 ‘코로나바이러스’ ‘격리’ 등의 단어 사용을 해서는 안 된다는 지시가 있었다”고 증언했다. 이후 우한시 위생당국은 환자들의 공황상태를 유발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의료진의 마스크 착용도 금지했다.
 
현지 의사들의 보고가 윗선 어디까지 전달됐는지는 파악하기 어렵다. 다만 우한시 위생당국의 12월 30일자 공식 발표에 따르면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 전문가팀이 이때 이미 우한에 도착해 현지 조사에 착수한 상태였다. 하지만 중증 환자의 이런 검사 결과가 올라가도 답변은 “기다리라”는 것뿐이었다고 했다. 급기야 1월 16일 병원 의료진 26명 감염 사실까지 보고됐지만, 우한시는 “의료진 감염은 없다”고 발표했다. 그사이 광둥성과 태국에서도 신종 코로나 환자가 나왔다.
 
미국 HBO의 재난드라마 ‘체르노빌’을 최근에 봤다. 섬뜩했다. 중국의 상황이 장면마다 오버랩됐다. 방사능 물질인 줄 모르는 사람들이 평소처럼 거리를 활보했다. 원자로가 폭발했는데 원전 책임자는 단순 화재라고 보고했다. 주민 대피는 늦었고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확산됐다. 중국 질병통제센터(CDC)가 신종 코로나의 위험성을 공식 인정한 건 22일 뒤인 지난 1월 20일이었다. 그 사이 우한시민들은 평소와 다름없는 생활을 해왔다. 춘절을 앞두고 고향으로 외국으로 나갔다. 이탈리아의 첫 감염자는 1월 23일 우한에서 온 부부라고 로이터는 보도했다. 거짓의 대가가 얼마나 큰지 ‘체르노빌’은 묻고 있다.
 
박성훈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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