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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월의 ‘제로금리’, 한ㆍ미ㆍ일 연합작전도 막지 못한 ‘C의 공포’

중앙일보 2020.03.16 17:19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미국 경제의 시계를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으로 되돌렸다. 연 0% ‘제로 금리’와 7000억 달러(약 850조원) 규모 양적 완화 조치(돈 풀기)를 통해서다. 한국과 일본도 바로 기준금리 인하와 금융 완화를 각각 결정하며 연합 전선을 구축했다. 하지만 ‘C(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공포’를 막기엔 여전히 역부족이다.
 
Fed는 15일(현지시간) 연방시장공개위원회(FOMC) 임시 회의를 열어 기준금리 역할을 하는 연방기금 금리를 연 1.0~1.25%에서 0.0~0.25%로 1.0%포인트 전격 인하했다. 17일 예정인 정례 회의를 불과 이틀 앞두고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발 경제위기 가능성을 겨냥해 꺼내 든 깜짝 카드다. 지난 3일 단행한 0.5%포인트 기준금리 인하를 뛰어넘는 ‘빅컷(Big cut)’이다.  
파월 ‘빅컷’에도 시장 반응은 싸늘.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파월 ‘빅컷’에도 시장 반응은 싸늘.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파월의 파격은 금리 인하에 그치지 않았다. “가능한 모든 수단(full range of tools)을 사용하겠다”는 그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이날 국채와 주택저당증권(MBS)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7000억 달러를 직접 시장에 풀기로(양적 완화) 결정했다. 시중은행을 대상으로 한 긴급 대출금리도 연 0%로 낮췄고, 지급준비금(은행이 고객으로부터 받은 예금 중 일정 비율을 중앙은행에 의무적으로 맡기도록 한 제도) 비율도 0%로 맞췄다. 이자든, 지급준비금이든 받지 않을테니 금고에 돈을 쌓아두지 말고 최대한 시중에 풀라는 지령이다.
 
Fed는 캐나다, 영국, 일본, 유럽, 스위스 등 경제 동맹국에게도 코로나발 경제위기에 맞선 ‘공동 전선’ 구축을 독려했다. 통화스와프(달러와 해당국 통화 맞교환) 협정을 맺고 있는 이들 5개 중앙은행을 대상으로 한 달러화 대출금리를 인하하는 방식으로다.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이 발 빠르게 보조를 맞췄다. 16일 정오 일본은행은 18일 예정이던 금융정책결정회의를 16일로 이틀 앞당겨 열었다. 상장지수펀드(ETF) 매입 규모를 6조 엔에서 12조 엔으로 2배 늘리기로 했다. 한국 돈으로 70조원에 육박하는 6조 엔을 일본 주식시장에 추가로 직접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연합뉴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연합뉴스

 
한국은행도 여기에 동참했다. 이날 오후 4시 임시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 연 1.25%인 기준금리를 0.75%로 0.5%포인트 내렸다. 코로나19 위기 상황을 맞아 사상 첫 0%대 금리 시대를 여는 파격을 선택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런 움직임은 금융위기가 발발했던 2008년 Fed가 썼던 조치를 연상시킨다”고 짚었다.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부실로 금융 시스템이 무너지고 대형 투자은행(IB)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했던 2018년 9월. Fed는 연 5.25%였던 기준금리를 불과 3개월 사이 0%로 끌어내리는 속도전을 펼친다. 워싱턴포스트는 “코로나19 위기에 직면한 Fed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드라마틱한 결정을 했다”고 전했다.
 
2008년 금융위기와 비견되는 중앙은행들의 총력전에도 시장의 반응은 싸늘했다. Fed가 5년 만의 ‘제로 금리’ 시대 개막을 알렸지만 투자자들은 미국 주식을 던졌다. 이날 Fed의 발표 직후 미국 시카고상업거래소(CME) 야간 선물시장에서다. 오는 6월 20일 가격을 예상해 주식이 거래되는 선물시장에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 나스닥종합지수 모두 4% 넘는 낙폭을 기록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앞으로 3개월 후라 해도 미국 주가는 여전히 하락세라는 데 투자자들이 ‘베팅’을 했다는 의미다. 이날 한때 S&P 500지수가 가격 제한폭인 5% 넘게 떨어지면서 선물 주식 거래가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정규 시장이었다면 서킷 브레이커가 발동될 수 있었던 상황이다.  
 
아시아 증시도 얼어붙었다. 16일 한국(-3.19%)과 중국 상하이(-3.4%), 홍콩(-4.1%) 등 동반 하락했다. 이날 장중 일본은행이 대규모 금융 완화 정책을 발표했지만 일본(-2.46%) 증시 하락을 막지 못했다. 이날 오후 5시(한국시간 기준) 개장한 유럽 증시도 4%대 하락률을 기록하며 ‘우울한’ 출발을 알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Fed의 금리 결정 직후 회견에서 “매우 행복하다(very happy)”고 밝혔지만 시장의 분위기는 행복과 거리가 멀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얽혀있다.  
 
먼저 코로나19가 경제에 미칠 파괴력이 어느 정도일지 가늠하기 어렵다. 전 세계 코로나19 환자 수(확진자 기준)는 17만 명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일찍 코로나19 ‘환란’을 치른 중국과 한국의 환자 증가 속도는 주춤해졌지만 스페인ㆍ프랑스ㆍ독일ㆍ미국ㆍ스위스 등 유럽과 북미 지역에선 이제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마땅한 백신ㆍ치료제가 아직 없다 보니 대규모 확산세가 상당 기간 지속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과거 감염병에 비해 격리, 입국 제한 강도가 세다는 점도 문제다. 여행은 물론 교역ㆍ생산 중단 등 전 세계에 미칠 경제적 충격파는 현재로썬 측정 불가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가 16일 기자회견을 하면서 곤란한 표정을 짖고 있다. 연합뉴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가 16일 기자회견을 하면서 곤란한 표정을 짖고 있다. 연합뉴스

 
또 정책 수단의 효과 면에서도 2008년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Fed는 그해 연 5.25%였던 기준금리를 0%로 낮췄다. 5.25%포인트 대 1.5%포인트. 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그만큼 적다. 유럽·아시아 중앙은행 처지도 다를 게 없다. 
 
다음 카드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 파월 의장을 비롯한 중앙은행 수장들이 ‘너무 일찍 패를 다 쓴 것 아니냐’는 우려가 이날 시장의 부정적 반응에 한몫했다. 이날 파월 의장은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을 두고 “마이너스 금리 정책(negative policy rates)을 적절한 정책이라 보진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마이너스 금리라는 Fed가 아직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해 아직 부정적이란 뜻을 밝혔다. 중앙은행이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인 금리 정책을 이미 다 썼다는 선언으로 시장은 풀이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의 ‘깜짝’ 유럽 여행객 입국 제한 조치와 유가 전쟁으로 대표되는 전 세계 리더십 불안, 올해 예정된 미국 대통령 선거, 코로나19 확산 지역의 부족한 의료ㆍ보건 체계 등 정치ㆍ사회적 불안도 시장의 공포를 키우는 요인이다. 코로나19가 불러올 경기 침체, 이른바 ‘C의 공포’를 막아내기엔 각국 중앙은행ㆍ중앙정부의 역량과 정책 수단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시각이다.
 
김형렬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은 “10년 전 금융위기와는 침체의 질이 다르다”며 “외환은 외환 관리를 못해서, 금융위기는 금융사 관리를 못해서, 재정위기는 국가부채를 관리 못해서였지만 이번엔 코로나19로 전 세계적인 실물 경제 침체가 먼저 닥치는 이례적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자리가 사라지고 들어오던 돈이 안 들어오는 공포의 상황에서 단순히 확장적 통화정책으로는 당장 효과를 보기 어렵다”며 “통화·재정·세제 등 가용한 수단 모두를 사용해 실물에 번진 공포를 가라앉히는 데 우선 주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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