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콜센터도 재택"···정부도 못깬 '9 to 6 근무' 코로나가 깼다

중앙일보 2020.03.16 14:32
"불합리하거나 후진적인 근무체계, 저소득층의 생계 위협, 미흡한 안전대책 같은 노동현장 곳곳에 산재한 문제를 역설적이게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낱낱이 밝혀내고 있다." 박영만 고용노동부 산재예방보상정책국장의 말이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고용·노동정책에 대한 개편작업이 한창이다. 겉으로는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정책은 한 번 자리를 잡으면 바꾸기 힘들다. 정부도 이런 점을 고려해 이번 기회에 지속가능한 정책으로 정착시키기 위한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고용정책에 코로나 나비효과가 부는 셈이다.
신한은행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은행권 처음으로 고객상담센터(콜센터) 직원들의 재택근무를 시행한다고 15일 밝혔다. 신한은행

신한은행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은행권 처음으로 고객상담센터(콜센터) 직원들의 재택근무를 시행한다고 15일 밝혔다. 신한은행

유연근무제 확산 위한 보완책 속속 시행

유연근무제가 대표적이다. 재택근무, 시차출근제, 선택근로제, 탄력근로제와 같은 유연한 근무체계는 그동안 노동계와 일부 정치권의 반대에 부딪혀 확산하지 못했다. 국내에서 코로나 사태가 발생하기 전인 지난해 말 취업포털 사람인이 454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0%에 달하는 기업이 유연근무제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러나 정작 일부라도 시행하는 곳은 10곳 중 2곳(19%)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9시에 출근해 6시에 퇴근하는 이른바 '9 to 6' 근무체계였다.
 
코로나 사태가 불거진 뒤 달라졌다. 상당수 기업이 재택근무와 같은 유연근무를 속속 도입하고 있다. 심지어 재택근무가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지던 콜센터까지 재택근무에 나서고 있다. 이동통신 3사가 일제히 재택근무에 들어갔고, 신한은행을 비롯한 금융권도 동참하고 있다. 집에서 콜센터 업무를 하려면 대면녹취관리체계 등 갖춰야 할 인프라 비용이 만만찮다. 정부는 이런 현실을 감안해 재택근무를 도입하는 중소·중견 콜센터에 최대 2000만원의 인프라 구축비용을 지원하기로 했다.

"획일적 '9 to 6'에서 업종별로 적합한 근무체계로 다양화할 것" 

고용부 관계자는 "불가피하게 대면 또는 손작업이 필요한 업종이 아니면 모두 유연근무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산업현장이 새삼 깨닫고 있다"고 말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 교수는 "각 기업이 유연근무제를 경험하면서 회사 사정에 맞는 근무체계를 선별할 수 있게 됐다"며 "따라서 획일적 유연근무 확산이 아니라 업종별로 적합한 근무체계를 선택하게 되고, 이는 다양한 근무체계 도입현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임서정 고용노동부 차관이 지난 1월 13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직무 중심 인사관리 따라잡기' 책자(임금체계 개편 관련 매뉴얼) 발간과 관련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임서정 고용노동부 차관이 지난 1월 13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직무 중심 인사관리 따라잡기' 책자(임금체계 개편 관련 매뉴얼) 발간과 관련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연근무제 확산은 임금체계 개편에 청신호

유연근무가 확산하면 임금체계의 변화도 촉진할 전망이다. 예컨대 재택근무는 근무시간을 기준으로 보상하는 체계가 아니다. 성과나 직무, 역할을 어떻게 수행하느냐에 초점을 맞춘다. 따라서 임금체계도 그에 맞춰야 한다. 해가 바뀌면 임금이 자동으로 오르는 호봉제 대신 직무급이나 역할급 중심으로 변화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는 의미다. 정부는 올해 초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임금체계 개편을 천명했다.
지난해 6월 4일 서울고용노동청에서 열린 국민취업지원제도 추진 관련 당정협의에서 저소득층 구직자의 생계와 취업을 돕기 위한 '한국형 실업부조'를 논의했다. 뉴스1

지난해 6월 4일 서울고용노동청에서 열린 국민취업지원제도 추진 관련 당정협의에서 저소득층 구직자의 생계와 취업을 돕기 위한 '한국형 실업부조'를 논의했다. 뉴스1

한국형 실업부조도 닻 올려…사회안전망 촘촘히 하는 효과

한국형 실업부조제(국민취업지원제도)도 사실상 첫발을 뗐다. 이재갑 고용부 장관은 16일 "모든 구직자에게 취업성공패키지 참여 문호를 개방한다"고 발표했다. 취업성공패키지는 정부가 매달 일정액을 주고 취업 때까지 컨설팅을 하는 제도로 지금까지는 중위소득 이하에게만 적용했다. 이 장관은 "국민내일배움카드의 훈련비 상한액도 5년간 300만원에서 500만원으로 상향 조정한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이런 조치는 저소득 취약계층에 매달 50만원씩 6개월간 훈련비와 생활비 등을 지원하는 한국형 실업부조제와 궤를 같이한다. 한국형 실업부조제는 예산은 확보했지만 국회에서 입법이 미뤄져 시행이 늦춰지고 있다. 노사정은 지난해 3월 한국형 실업부조 도입에 합의했었다. 임서정 고용부 차관은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취업이 어려운 계층에 대한 정부의 구직 지원제도를 더 촘촘하게 짤 필요가 있다"며 "이를 통해 고용시장의 공급과 수급을 원활하게 하는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외에 경영상 어려움을 겪는 기업에 지원하는 휴업수당도 근로자 1인당 하루 6만6000원에서 7만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유명무실하던 가족돌봄휴가도 활성화해 일·가정 양립 문화에 한 발 더 다가섰다.

선진국형 직업 트라우마 상담도 전국에서 동시 실시

특히 직업적 트라우마에 대한 심리상담이 강화된다. 선진국에는 보편화한 정책이다. 한국에선 2009년 옥쇄파업을 야기했던 쌍용자동차 구조조정 당시 해고자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등 사건이 벌어질 때만 잠깐 실시하는 정도였다. 그동안 정부는 심리상담의 제도화를 꾀했으나 소요예산이나 필요성에 대한 정치권과 경영계의 이의제기 때문에 좌초했다. 고용부는 16일부터 전국에 전문상담센터 8곳을 설치해 운영에 들어갔다. 이곳에선 심리검사, 심리상담, 심리교육, 사후관리와 같은 전문상담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유경준 한국기술교육대 교수는 "취업이나 재취업 상담 과정에서 심리적 안정을 찾아주는 일은 가장 기본적인 취업 지원 정책"이라며 "늦게나마 취업상담 기능의 핵심 지원제도가 도입된 것은 큰 변화"라고 말했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