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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자 대부분 기저질환…마스크없어 불안 폐광지 진폐환자들

중앙일보 2020.03.16 14:00
지난 15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내 한 약국 앞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길게 줄 서 있다. [뉴스1]

지난 15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내 한 약국 앞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길게 줄 서 있다. [뉴스1]

 
“진폐 환자들이 병원 갈 때 쓸 마스크만이라도 구할 수 없을까요….” 강원도 태백에 사는 최봉희(71·여)씨는 지난 12일 마스크를 사기 위해 오전 8시부터 집 근처 약국 앞에 줄을 섰다. 9시쯤 약국 문이 열리고 30분가량을 더 기다린 끝에 마스크 2장을 어렵게 살 수 있었다.

진폐 재해자 강원·경북·충남·전남 등 5240명
마스크 못 구해 일회용 여러번 세탁해서 착용

 
최씨가 이른 시간부터 마스크를 사기 위해 줄을 서는 건 만성폐쇄성폐질환을 앓고 있는 남편과 병원에 가기 위해서다. 최씨의 남편은 30년간 태백지역에서 일한 광부로 재가진폐환자다. 최씨는 마스크 5부제가 실시되기 전까진 마스크를 구하지 못해 일회용 마스크를 빨아 쓰면 버텨왔다. 
 
이달 초엔 마스크가 떨어져 병원에 갈 수 없게 되자 한국진폐재해재가환자협회에 도움을 요청했다. 협회로부터 면 마스크 3개를 받은 최씨는 우여곡절 끝에 병원에 다녀올 수 있었다. 최씨 남편의 경우 일주일에 3번은 태백과 원주에 있는 병원에 다녀와야 한다.  
 
최씨는 “남편 건강이 좋지 않아 병원에 자주 가야 하는데 마스크가 없어 곤란한 경우가 많았다”며 “5부제 덕분에 이번 주는 마스크를 구했지만 다음 주에 약국 앞에서 한참을 기다릴 생각을 하니 벌써 걱정이 앞선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태백 인근 지역에서 확진자가 잇따라 발생해 걱정이 많은데 몸이 불편한 환자들이 마스크를 좀 더 쉽게 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줄 서서 기다릴 생각에 벌써 걱정

지난 10일 강원 정선군과 태백시에 조성된 강원랜드 방역도움센터에서 센터 직원이 코로나19 유입 차단을 위해 방역활동을 펼치고 있다. 강원랜드는 지난 4일부터 방역기(압축분무기) 20대, 손소독제 6000여개를 확보해 정선(고한읍)과 태백에 방역도움센터 각 1개소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뉴스1]

지난 10일 강원 정선군과 태백시에 조성된 강원랜드 방역도움센터에서 센터 직원이 코로나19 유입 차단을 위해 방역활동을 펼치고 있다. 강원랜드는 지난 4일부터 방역기(압축분무기) 20대, 손소독제 6000여개를 확보해 정선(고한읍)과 태백에 방역도움센터 각 1개소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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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코로나19 사망자 대부분이 기저질환을 앓았던 것으로 확인된 가운데 태백과 맞닿아 있는 경북 봉화에서 확진자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폐광지역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봉화 인근엔 호흡기질환자인 진폐 재해자가 많은 태백·삼척·정선·영월 등 폐광지가 몰려 있어서다. 
 
강원랜드 복지재단에 따르면 태백에 거주하는 진폐 재해자는 1328명, 정선 629명, 삼척 618명, 영월 213명, 기타 995명 등이다. 또 경북 문경 581명, 충남 보령 530명, 전남 화순 346명까지 합치면 총 5240명에 이른다. 진폐증은 석탄산업 종사자에게 발생하는 호흡기질환이다. 석탄 가루 등 분진으로 폐가 굳어져 제 기능을 할 수 없게 되는 질병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마스크를 구하지 못해 민얼굴로 마스크를 구하기 위해 거리로 나서고 있다. 진폐 재해자인 심근보(61·태백시)씨는 지난 12일 마스크를 사기 위해 민얼굴로 약국 앞에 줄을 섰지만 결국 마스크를 구매하지 못했다. 찾아간 4곳의 약국 중 2곳에서 줄을 섰다가 기다리던 중 마스크가 동났고, 나머지 2곳은 방문 당시 마스크가 없었다. 
 
심씨는 “(코로나19)로 숨진 이들 대부분이 기저질환자라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 불안해 마스크를 사러 가는 것 외에는 외출하지 않고 있다”며 “우리 같은 사람은 마스크가 꼭 필요한데 아직도 마스크 사기가 너무 어렵다”고 호소했다. 심씨는 1992년부터 20년 넘게 광부로 일했다. 현재 만성폐쇄성폐질환을 앓고 있다.

각종 지원에도 여전히 마스크 턱없이 부족 

지난 15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내 한 약국 앞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길게 줄 서 있다. [뉴스1]

지난 15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내 한 약국 앞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길게 줄 서 있다. [뉴스1]

 
이에 따라 한국진폐재해재가환자협회 등은 진폐 재해자들에게 마스크를 지원하기 위해 여러 기관·단체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강원랜드 복지재단은 최근 감염에 취약한 진폐 재해자를 돕기 위해 8개 단체에 마스크 5700장을 전달하는 등 폐광지역 취약계층에 마스크 2만7000여장과 손 세정제 500여개를 전달했다. 한국광해관리공단도 이달 초 진폐 환자 보호를 위해 태백 근로복지공단 태백병원에 마스크 1200장을 지원했다. 하지만 진폐 재해자들이 워낙에 많다 보니 폐광지마다 여전히 마스크가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황상덕 한국진폐재해재가환자협회장은 “마스크가 없어 고령의 진폐 재해자들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아침마다 약국 앞에 줄을 서고 있다”며 “그런데도 마스크를 사지 못해 협회에 도움을 요청하는 분들이 많다. 감염에 취약한 진폐 재해자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편 현재까지 강원 폐광지역과 관련 코로나19 확진자는 2명이다. 앞서 위암으로 경북 봉화군 봉화해성병원에 입원하고 있다가 지난 4일 숨진 태백 거주 A씨(91·여)가 사후 코로나19 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았다. A씨는 국내 44번째 코로나19 사망자로 강원도민 가운데 첫 사망 사례다. 이와 함께 지난달 22일 삼척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 20대 대학생으로 고열과 두통 증상을 보여 검사를 한 결과 확진 판정을 받았다.
 
태백=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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