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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콜레라 창궐하던 시대에도 사랑은 이뤄졌다

중앙일보 2020.03.16 13:00

[더,오래] 홍미옥의 폰으로 그린 세상(48)

 
“그렇게 배는 짐과 승객을 싣지 않은 채 큰 돛대에 콜레라 환자가 있다는 뜻의 노란 깃발을 게양하고 출항했다. 몇몇 마을에서는 콜레라를 쫓기 위해 대포를 쏘아댔고, 그들은 슬픈 뱃고동 소리로 감사를 표했다.” - 소설 콜레라 시대의 사랑 中 -
 
마르케스의 소설 '콜레라 시대의 사랑'에 나오는 장면이다. 당시엔 콜레라환자가 타고 있다는 표시로 노란깃발을 달고 항해를 하곤 했다. 갤럭시탭s3.아트레이지. [그림 홍미옥]

마르케스의 소설 '콜레라 시대의 사랑'에 나오는 장면이다. 당시엔 콜레라환자가 타고 있다는 표시로 노란깃발을 달고 항해를 하곤 했다. 갤럭시탭s3.아트레이지. [그림 홍미옥]

 
51년 7개월 하고도 11일을 기다려 첫사랑 앞에 다시 서는 남자의 지독한 사랑 이야기를 그린 소설 『콜레라 시대의 사랑』. 남미 문학의 거장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작품이다. 세상에 기댈 것이라곤 없는 가여운 이미지로 꽃피는 아몬드나무 아래서 책을 읽던 소년, 숱한 부침과 세월의 풍파를 겪지만, 마침내 사랑을 이루고야 만다는 내용이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전염병이 만연하던 시기의 이야기를 다룬다. 사람들은 자연의 섭리 앞에 나약했고 한없이 두려워했다. 지독한 사랑 이야기의 전편에 도사리던 콜레라, 당시는 전 세계를 위험에 빠뜨린 질병인 콜레라가 창궐하던 시기였다. 모두가 두려워했지만 피할 수 없었던 전염병, 그토록 험난한 콜레라의 시대에도 사랑은 이뤄졌고 삶은 계속됐다. 새삼 이 소설이 심심찮게 입소문을 타는 중이라고 한다. 요즘 분위기와 맞물려서겠지 싶다. 하지만 지금은 2020년이다.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 [사진 홍미옥]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 [사진 홍미옥]

 
오전 10시 무렵의 동네 카페, 평소와는 조금 다른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회사의 중견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몇몇 눈에 띄었다. 휴대폰으로 업무지시도 하고 노트북으로 뭔가를 열심히 작성하고 있었다.
 
여느 때 같으면 유치원이나 학교에 아이를 보내고 혹은 서둘러 집안일을 마친 주부들이 손님의 대부분일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조잘거리며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는 아이들과 엄마들은 볼 수가 없다. 학생들도 당분간 휴교상태니, 주부들의 오전 휴식 시간도 함께 사라진 걸까? 우리 집만 해도 재택근무에 들어간 남편과 개강이 연기된 아들로 본의 아니게 온 가족이 온종일 함께 하는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사회는 거리를 두는데 가족은 더 가까워진 셈이다.


사소한 일상에도 플랜B가 필요해!

 
최근 각종 매체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해 달라진 세상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 여념이 없다. 유럽은 최근 전통 인사인 비주(la bise, bisou 프랑스식 볼 인사)를 당분간 자제하라는 권고를 해서 갑론을박인 모양이다. 또 전 세계에 수많은 팬을 거느린 미국농구 NBA는 선수 사이의 하이파이브를 금지했다. 농구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며 선수들이 반발했지만 별도리가 없단다. 영국 프리미엄 리그도 무관중 경기를 선포했다. 한술 더 떠서 무관중 올림픽 이야기까지 나오는 걸 보니 여간 큰일이 아니다.
 
생각해보니 한참 전부터 우린 웰빙, 웰다잉, 워라벨, 스라벨 등 어찌하면 멋진 삶을 살 수 있을까만 고민하고 살았던 건 아닐까? 평범한 주부의 장바구니에도 몸에 좋다는 유기농 식품이 빠지지 않았다. 더 좋은 것만을 추구하던 이면엔 언제 닥칠지 모르는 바이러스를 외면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 집만 해도 갑자기 재택근무에 들어간 남편은 이런 상황이 어색하다. 전혀 상상하지 않았고 준비하지 못했던 현실이어서 더 그런가 보다. 느닷없이 삼시 세끼를 준비해야 하는 주부도 마찬가지다. 장보기를 더 해놓을 걸, 밑반찬을 만들어 놔야 했는데 등.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아니더라도 사소한 일상에서조차 플랜B가 필요하다는 걸 왜 몰랐을까? 
 

사회적 거리는 잠깐 멀어져도 마음의 거리는 가깝게

 
전 국민이, 온 나라가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있지만, 그 와중에도 따뜻한 정은 우릴 미소 짓게 한했다. 그룹 BTS의 팬들은 취소된 콘서트를 기부라는 희망으로 변신시켰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기부행렬도 말하자면 끝이 없다. 진도 텃밭에서 재배한 봄동 배추는 대구의 밥상 위로 건너가 새봄이 오고 있음을 맛보게 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비록 사회적 거리는 조금씩 멀리 두어도 마음의 거리만은 가까워졌으면 좋겠다.
 
전염병이 창궐하던 그 시기에도 노란 깃발을 달고 나아가는 콜레라 시대의 사랑도 있었다. 조만간 우리도 아픈 기억의 노란 깃발을 걷어내고 넓은 바다로 나아갈 일만 남았다.
 
스마트폰 그림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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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미옥 홍미옥 스마트폰 그림작가 필진

[홍미옥의 모바일 그림 세상] 둘도 없는 친구인 스마트폰과 함께 세상 이야기를 그리는 중년 주부.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 중년도 아직 늦지 않았음을 그림을 통해 알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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