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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접고 방호복 입은 손자…치매 80대 할머니 코로나 이겨냈다

중앙일보 2020.03.16 09:48
지난달 28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 판정을 받은 할머니를 보살피기 위해 경북 포항의료원에서 2주간 병간호를 한 박용하씨(왼쪽)가 할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 [사진 박용하씨]

지난달 28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 판정을 받은 할머니를 보살피기 위해 경북 포항의료원에서 2주간 병간호를 한 박용하씨(왼쪽)가 할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 [사진 박용하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고령의 중증 치매 환자가 2주 만에 완치돼 집으로 돌아갔다. 85세라는 나이에도 젊은이들 못지않은 회복 속도로 치유될 수 있었던 건 곁에서 극진히 병간호한 손자의 힘이 컸다.
 

85세 중증 치매였던 할머니 코로나 확진받자
직장 접고 포항의료원 달려간 손자 박용하씨
“병간호 당연…잘 해드리지 못한 제가 죄송”

경북 청도군 등에 따르면 청도군에 사는 김갑생(85·여)씨는 지난달 28일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아 경북 포항시 포항의료원에 입원했다. 나이가 많고 중증 치매를 앓고 있어 의료진들도 긍정적 전망을 하기 어려웠다.
 
청도군 청도읍 원정리에서 할머니와 둘이 살면서 인근 지역인 경북 경산시로 출퇴근을 하고 있는 손자 박용하(31)씨는 할머니가 코로나19에 감염됐다는 소식에 곧장 직장 일을 잠시 접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처음에는 보건당국이 박씨의 병원 출입을 막았다. 코로나19에 걸리지 않은 박씨가 병간호를 하기 위해 환자들 사이에 있다가 자칫 전염될 수 있어서였다. 어쩔 수 없이 박씨는 병원 바깥에서 애타는 마음으로 할머니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입원 이튿날인 29일부터 김씨가 불안 증세를 보이면서 치료에 어려움이 생기자 보건당국은 박씨를 부르기로 결정했다.
 
박씨는 이때부터 방호복을 입고 할머니의 곁에서 2주간 극진히 그를 보살폈다. 그 덕분인지 할머니는 입원 사흘째부터 식사를 다시 하기 시작했다. 박씨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할머니가 다시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 코로나19를 이겨내시겠구나 생각했다. 평소 치매 외에 기저질환이 없었던 점도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그가 세 살 때쯤 아버지를 교통사고로 여의고 어머니도 재가하게 되면서 연락이 뜸해져 사실상 홀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할 처지가 됐다. 그때 할머니와 삼촌, 숙모가 박씨를 보살피기로 하면서 넉넉하지는 않지만,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박씨가 삼촌과 숙모를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유증상을 보인 시민들이 2일 오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경북 포항의료원 선별진료소에서 검사를 받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뉴스1]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유증상을 보인 시민들이 2일 오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경북 포항의료원 선별진료소에서 검사를 받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뉴스1]

 
박씨는 삼촌으로부터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기술도 배웠다. 바로 제빵 기술이다. 박씨의 삼촌은 대구 달서구 감삼동에서 ‘빠띠쉐의 꿈’이라는 빵집을 운영하고 있다. 그곳에서 박씨는 고등학생 때부터 제빵 기술을 배웠다.
 
지금은 “좀 더 큰 곳에서 제빵 기술을 익혀보라”는 삼촌의 뜻에 따라 경북 경산시에서 꽤 규모가 큰 빵집에서 직원으로 일한다. 앞으로 박씨는 기술을 쌓아 자신만의 빵집을 차리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다.
 
박씨는 “젊은 시절 할머니는 못 하는 일이 없고 굉장히 활동적이고 독특한 사람이었다”며 “나이가 들고 치매에 걸려 지난 일들도 잘 기억하지 못하시고 자주 다니던 길도 제대로 찾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너무 마음이 아팠다. 혹시라도 여느 치매 노인들처럼 집을 나가 돌아오지 못할까 봐 같이 살면서 할머니를 보살피고 있다”고 했다.
 
그는 “키워주신 할머니의 고생이 비하면 제 간호는 아무것도 아니다”며 “제가 돈을 잘 벌어 호강을 시켜드린 것도 아니고 공부를 잘해서 훌륭한 사람이 된 것도 아니어서 늘 죄송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15일 경북도청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박씨의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손자가 얼마나 갸륵한지 모르겠다”고 칭송하기도 했다.
 
이에 박씨는 “할머니가 없었다면 부모님이 없었고, 부모님이 없었다면 내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할머니를 극진히 보살펴드리는 일이 당연하다.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할머니를 병간호한 일을 두고 도지사님이 칭찬했다고 하는데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 쑥스럽다”고 전했다.
 
청도=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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