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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택은 그림의 떡" 화장실 갈 시간도 줄일만큼 코로나로 더 바빠진 직장인들

중앙일보 2020.03.16 05:00
66만6163개. 국내에 있는 기업체 수(2017년 기준)입니다. 국민의 대다수가 회사에서 일하는 직장인인 셈입니다. 매일 출근하고 퇴근하기 전까지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직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우리는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요. 중앙일보의 새 디지털 시리즈인 [기업 딥톡(Deep Talk)]에선 대한민국 기업의 변화, 그리고 그 속에서 일하는 직장인의 꿈ㆍ희망ㆍ생활을 생생하게 전합니다.  
 

[기업딥톡 10회]

코오롱베니트 정보보안팀의 김승렬(사진) 팀장은 요즘 심야 시간대까지 밤잠을 설치는 일이 많다. 잘 때도 머리 맡이나 손에 스마트폰을 쥐고 있다. 그가 스마트폰을 놓지 못하는 건 폰에 설정해 놓은 알람 때문. 코오롱그룹 내 IT 서비스망에 이상이 오면 즉시 그에게 알람이 온다. 
 
최근 그의 주요 업무는 그룹 ‘가상 사설망(VPN)’을 확대하고 이를 유지하는 일. VPN은 인터넷 트래픽을 암호화하고 온라인상의 신호를 보호하는 툴이다. VPN이 없으면 사실상 재택근무는 불가능해진다. 이 VPN이 원활히 돌아가지 않을 때 김 팀장이 즉시 알 수 있도록 해놓은 것이다. 일과 시간 중에도 마찬가지다. 
 

1000명 동시 접속→3000명 동시 접속

코오롱그룹은 최근 그룹 전반에 걸친 재택근무를 실시 중이다. 이에 대응해 기존 1000명의 유저가 동시에 접속해 사용할 수 있던 VPN 용량도 최근 3000 유저 수준으로 확장했다. 사실상 그룹 내 사무직 직원 대부분이 재택근무에 들어간 데 따른 조치다. 그 바람에 김 팀장과 그의 팀원 입장에선 업무량이 기존보다 3배 이상 늘었다. 외부에서 접속한 직원들에게 어느 수준의 업무까지 접근할 수 있을지 일일이 권한을 설정해주는 것은 기본이다. 
 
여기에 VPN 사용 중에 벌어지는 각종 돌발 상황에도 대처해야 한다. 매일 비상대기 상태를 유지중인 김 팀장은 15일 “팀원들끼리 ‘정보보안팀이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대응팀으로 바뀌었다’는 농담을 주고받곤 한다”며 “VPN에 문제가 생기면 그룹 전체의 업무가 멈출 수 있는 만큼 매일 전쟁터에 간다는 심정으로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오롱베니트 정보보안팀의 김승렬(사진 왼쪽) 팀장이 재택근무자를 위한 IT 서비스 제공에 이상이 없는지 운용 현황을 살펴보고 있다. 코오롱그룹은 재택근무 툴인 가상 사설망(VPN)을 대폭 증설했다. 사진 코오롱그룹

코오롱베니트 정보보안팀의 김승렬(사진 왼쪽) 팀장이 재택근무자를 위한 IT 서비스 제공에 이상이 없는지 운용 현황을 살펴보고 있다. 코오롱그룹은 재택근무 툴인 가상 사설망(VPN)을 대폭 증설했다. 사진 코오롱그룹

코로나19 확산에 대부분 직장인은 재택 근무에 돌입했지만, 이는 남의 얘기란 현장 직원들도 많다. 재택근무가 원활히 기능하도록 지원하는 한편, 산업의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이들이다. ‘대한민국 산업’이 멈추지 않고 기능을 하도록 하는 최소한의 안전판이다.
 

방역회사 “하루 하루가 전쟁”

방역ㆍ방제기업인 세스코 직원들은 요즘 24시간이 모자란 처지다. 이 회사 100여개 직영 지사와 소속 3000여 명의 현장 직원들은 온종일 방역복을 입고 작업을 하다 보니 걸려오는 전화를 제때 받지 못하는 것도 일쑤다.
 
지인 경조사를 챙기는 일은 이미 사치가 됐다. 다른 기업들은 일감이 없어서 고민이지만, 이 회사에선 방역에 필요한 각종 소독액이 부족하지 않을까 고민하는 게 일상이 됐다. 과거 무료로 방사성 물질인 라돈의 가정 내 수치를 측정해주는 서비스도 했었지만, 일손 부족으로 이제는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세스코 관계자는 “산업 현장은 물론 각종 정부 기관에서도 방역 의뢰가 쏟아져 정말 매일매일 전쟁을 치르는 기분”이라며 “가용한 모든 인력이 현장에 투입돼 있어, 현업에 ㄱ있는 직원들과는 일과 시간 중 통화도 어려울 정도여서 지사 별로 얼마나 업무가 늘었는지 파악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수도승 같은 '면벽(面壁) 식사와 근무'는 기본

SK이노베이션의 울산 컴플렉스 구내 식당. 혹시 모를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구내식당에도 일일이 칸막이를 쳤다. 사진 SK이노베이션

SK이노베이션의 울산 컴플렉스 구내 식당. 혹시 모를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구내식당에도 일일이 칸막이를 쳤다. 사진 SK이노베이션

매출이나 출하량이 줄었어도 공장을 세울 수 없는 곳이 있다. 24시간 공장을 돌려야 하는 정유ㆍ화학업체들이 그렇다. SK이노베이션의 울산 컴플렉스(이하 울산CLX)에서 근무하는 1600여 명의 오퍼레이터(운전원)들은 4조 3교대로 하루 24시간 공장을 지킨다. 울산CLX의 경우 경기 위축으로 코로나19 사태 이전보다 출하량이 15%가량 줄었다. 하지만 830만㎡(약 251만평) 규모의 울산CLX는 국가 기간시설로 분류된 ‘국가보안목표 가급 시설’이다. 한 번 멈췄다가 재가동하는 데 최소 1~2주 이상의 기간과 가동 중단에 따른 생산 차질로 수백억 원의 손실이 발생한다. 
 
그래서 오퍼레이터를 포함한 사실상 전 직원들이 정상 근무를 한다. 대신 불문율이 있다. 바로 가급적 철저히 ‘홀로’ 일하는 것이다. 수도승 같은 면벽(面壁·벽을 봄) 식사와 근무는 기본이다. 이에 따라 출근을 해도 직원들은 가능한 서로를 멀리하는 걸 원칙으로 했다. 혹시 감염자가 발생해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구내식당에는 일일이 칸막이를 쳤다. 직원들은 자연스레 벽을 보며 홀로 식사를 해야 한다. 흡연실에서 담배를 피울 때도 잡담을 나누는 일도 없어졌다. 일과 이후에도 직원 상호 간 모임 등은 원칙적으로 금지다. 울산CLX 곳곳에 이미 방호복이 비치돼 있어 비상시엔 언제든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울산CLX 내에서 사람이 아닌 벽을 보고 식사를 하고, 일하는 건 이제 일상이 된 것 같다”며 “일과 이후에도 가급적 외부 접촉을 최대한 자제해 달라는 지침을 세워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 울산 컴플렉스 실외 흡연실의 모습. 코로나19의 확산 우려에 대비해 흡연실에서도 직원 상호간 대화는 가급적 자제토록 했다. 사진 SK이노베이션

SK이노베이션 울산 컴플렉스 실외 흡연실의 모습. 코로나19의 확산 우려에 대비해 흡연실에서도 직원 상호간 대화는 가급적 자제토록 했다. 사진 SK이노베이션

마트 회포장 대기 줄…화장실 갈 시간도 없다 

이마트 서울 성수점 수산코너의 김상훈 실장. 최근 회를 배달해 가는 소비자가 늘면서, 판매량도 종전보다 큰 폭으로 늘었다. 사진 이마트

이마트 서울 성수점 수산코너의 김상훈 실장. 최근 회를 배달해 가는 소비자가 늘면서, 판매량도 종전보다 큰 폭으로 늘었다. 사진 이마트

재택근무 확산과 언택트(Untactㆍ비접촉) 소비 등 달라진 생활 변화로 더 바빠진 이들도 있다. 이마트 서울 성수점 수산코너에서 참치회를 떠주는 업무를 하는 김상훈(33) 실장도 출근하면 자리에 앉을 틈도 없이 내내 서서 일해야 하는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이마트 성수점의 평소 참치회 하루 판매량은 평일 20팩, 주말 50팩 수준이었지만, 이달 5일~11일엔 평일 150여팩, 주말 500여팩으로 10배 이상 늘었다. 코로나19에 집에서 식사를 해결하거나 혼술을 하는 소비자가 늘어나서다.
 
오전 8시에 출근해 오후 4시 퇴근할 때까지 쉬지 않고 회를 썬다. "화장실에 갈 시간도 없을" 정도다. 그래도 몰려오는 소비자들을 감당하기 힘들다. 참치회를 사려는 이들이 수산코너 앞에 길게 줄을 서는 모습에 동료들 사이에선 ‘수산 코너에서도 마스크를 파는 거냐’는 농담도 나온다고 했다. 김 실장은 “참치회 등은 그 속성상 빠르게 상품화를 해야 하지만, 가장 맛있는 크기로 결을 따라 자르는 작업을 대충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쿠팡맨의 배송 모습. 최근 쿠팡 배송량은 하루 평균 300만건에 달한다. 코로나19 사태 이전보다 30%가량 늘어난 수치다. 사진 쿠팡

쿠팡맨의 배송 모습. 최근 쿠팡 배송량은 하루 평균 300만건에 달한다. 코로나19 사태 이전보다 30%가량 늘어난 수치다. 사진 쿠팡

새로 채용한 쿠팡맨에 하루 20번 설명 

쿠팡 서울 송파 3 캠프에서 일하는 송민수(29) 리더도 새로 일을 시작한 쿠팡맨과 배송 아르바이트 쿠팡 플렉스 직원들을 교육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최근 쿠팡의 주문량은 하루 평균 300만 건으로 평소보다 30%가량 증가했다. 쿠팡 플렉스 지원자 역시 큰 폭으로 늘었다. 생업이 힘들어지자, 그나마 일거리가 있는 쿠팡 플렉스에 지원한 이가 늘어난 까닭도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 하루 평균 4000여 명의 쿠팡 플렉스가 배송에 참여했다면 최근에는 5000여 명을 훌쩍 넘어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이 중 상당수는 아직 배송 업무에 익숙하지 않은 초보자다. 그만큼 송 리더의 업무도 늘었다. 매일 새로 들어오는 쿠팡 플렉스 지원자들에게 배송 프로세스와 배송 구역을 설명해줘야 한다. ‘A 건물의 경우 어느 쪽에 출입구가 있다’는 디테일도 잊지 않는다. 송 리더 입장에선 같은 설명을 하루 20~30번 이상해야 한다. 그가 맡은 구역에 거주하는 소비자들이 ”빠른 배송에 감사한다“는 등의 반응을 보여줄 때 보람을 느낀다. 
 

이수기 기자 lee.soo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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