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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이젠 줄도산 코로나

중앙일보 2020.03.16 00:36 종합 31면 지면보기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트롯이 이럴 줄 정말 몰랐다. 수백 번 들어 매력이 증발한 옛 노래들이 봄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내 마음을 속절없이 후벼 팠다. 코로나 때문이었을 게다. 자고 나면 치솟는 환자 수와 정치권의 허튼 소리에 상처 난 마음을 위로한 건 틀림없이 트롯이었다. 트롯의 대부 남진이 하동 출신 신동 정동원에게 뭘 좋아하는지 물었다. ‘올드 트롯이요!’ 트롯도 넘어 올드까지 간 14살짜리의 취향도 웃겼고, ‘아따, 영어를 솔찮이 해불구마 잉~’도 웃겼다. 원주 출신 조명섭의 가창에 남인수, 현인이 살아 돌아온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유쾌한 향수를 깨면 코로나였고, 마스크였고, 초딩 수준의 정책이었다.
 

경제 암운, 미국은 비상사태 선포
“분배정의” 불구 마스크도 쩔쩔매
정부가 구청, 시청보다 못한 나라
줄도산에 정부 대책은 무엇인가

미국이 지난 토요일 국가비상 사태를 선포했다. 유럽발 입국 금지가 발령되고 뉴욕증시 폭락이 이어진 직후 내린 결단이었다. 확진자 1,700명에 사망자 41명이 나온 시점, 한국에 비하면 초입 단계에서 초강수 극약을 처방했다. 대선을 앞둔 트럼프의 정치적 셈법을 감안하더라도 세계 최강 정책 군단을 보유한 백악관의 용단이라면 대공황에 버금가는 불길한 암운(暗雲)을 알아차린 거다. 세계의 공장 아시아, 원유생산국 중동, 금융기지 유럽이 지금 속도로 얼어붙는다면 1929년 대공황보다 더 참혹한 결과가 덮칠까.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즈(Keynes)는 대공황 타개책으로 ‘유효수요’ 이론을 고안했다. 정부가 돈을 쏟아 붓고 공공일자리를 만드는 것. 그런데 국가가 문을 닫아 걸고, 소비, 생산, 금융, 물류가 올스톱하는 돌발상황은 자본주의 초유의 사태다. 초특급 전문가들이 머리를 싸매고 있을 거다.
 
한국은? 이 난국에 존재감이 전혀 없는 청와대 정책팀, 자화자찬 해대는 장·차관, 거기에 생명줄에 혈안이 된 정치권, 이 ‘무능연합군’이 펼칠 난장 드라마를 생각하면 벌써부터 홧병이 도진다. 정책역량이 이렇게 바닥인 정권, 현장감각 제로인 정권은 처음이다. 대구·경북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메르스를 겪고도 공공의료는 겨우 6% 수준, 민간병원과 민간의료인의 자원봉사가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오죽했으면 계명대 동산병원이 적자를 감수하고 코로나퇴치 전문병원을 자처했을까. 게다가 전문가불신, 기업불신 풍조는 여전해서 화선(火線)을 예상도 못하고, 마스크 하나 제대로 공급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제조업 강국에서 마스크 대란이라니. 분배정의라더니, 고작 마스크 분배도 못한다. 현장을 모르는 의사(疑似) 공익주의자들!
 
그래서 이런 말이 나온다. ‘나는 마스크를 일주일 째 쓰는 데 아무 이상없다’(이해찬 대표), ‘마스크가 부족한 게 아니라 의료진들이 더 갖고 싶어 하는 것’(박능후 장관). 이런 말 들으면 복장 터진다. 이런 때에는 핏대를 올리기보다 영화 ‘극한직업’에 나오는 중국 말투로 답하는 것이 좋다. “지하철로 출퇴근 해 봤니?”, “방호복입고 온종일 땀흘려봤니?”(오성음조로 말끝을 살짝 올리면 좋다). 심리적 위안은 잠시, 먹구름은 대기 중이다.
 
사주경계에서 정부는 구청을 못 따라 간다. 노원구청은 마스크 대란을 예상했다. 직원들이 한달간 전국을 다니면서 마스크 백만 장을 구했다. 동사무소가 전초기지, 동장과 반장이 라이더다. 품귀를 대비해 구청 강당에 아예 마스크 공장을 차렸다. 재봉틀 자원부대, 이 얼마나 듬직한 풍경인가? 왜 민간 약사가 생고생을 해야 하는지 이해불가. 약국 앞에 고령자, 노약자, 환자까지 줄 세운 찬란한 무능력에 비하면 노원구청은 제갈량이다.
 
정부가 일개 시청(市廳)보다 못한 나라. 전 국민에게 100만원씩 지급하자는 정치인들은 제발 입 좀 다물기를 바란다. 한심한 망국(亡國) 발언이다. 취약계층, 영세업자가 우선이다. 취약자 5만 명, 52만원씩 재난기본소득을 제공한다는 전주시의 결단에 박수를 보낸다. 청와대에 모범을 보였다. 코로나 사태 두 달 동안 일용직, 비정규직은 소득 바닥, 영세업자(자영업, 소공장)들은 소위 ‘자살각(角)’에 몰렸다. 영세업자에겐 금융이자, 세금 경감조치가 시급하고, 영업자금의 대량 방출이 시행돼야 한다. 돈 떼일 생각하고 증빙서류에 목매지 말아야 한다. 그들이 파산하면 대출해 줄 곳도 없다. 긴급재정 고작 6조원, 대출에 평균 두 달이 걸린단다. 차라리 사채를 쓰고 말지. 외환위기 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 것이다. 사채시장은 호황을 누렸고, 파산자가 속출했다. 파산은 신불자와 극빈계층 양산, 급기야 구제자금 방출로 이어졌다.
 
중국과 북한에 보내는 묵직한 끈기는 따를 자가 없다. 일본에 맞대응하는 빛의 속도로 경제정책과 방역종합 대책을 고안해 준다면 얼마나 믿음직할까만, 저 두 가지를 빼고 우물쩍이 장기다. 정부부처에 포진한 공무원 군단은 무얼 하고 있는가. 국책연구소 수천 명 박사들을 두고 탁상공론 기안(起案)만 만들고 있는가. 이젠 줄도산 코로나, 적어도 10개 영역 비상대책팀이 돌아가야 마땅하다. 다시 오성 음조로 ‘당신들 쉬세요?’ 묻고 싶은데, 그래봐야 헛일이니 차라리 트롯이 묘약이다.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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