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년원생 700명의 아부지 “도움 받으면 도움 주더라”

중앙일보 2020.03.16 00:05 종합 16면 지면보기
지난 12일 서울 서초구 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윤용범 청소년행복재단 사무총장이 돌봐온 김성수씨(가명)와 나눈 페이스북 메시지를 소개하고 있다. 강광우 기자

지난 12일 서울 서초구 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윤용범 청소년행복재단 사무총장이 돌봐온 김성수씨(가명)와 나눈 페이스북 메시지를 소개하고 있다. 강광우 기자

“아부지! 계좌번호 알려줘요. 빌린 돈 조금씩 갚으려고요!!”
 

윤용범 청소년행복재단 사무총장
법무부 공무원 퇴임 뒤 재단 설립
취·창업 돕고 자립하면 기부상환
“믿고 기다려주면 애들은 자란다”

“그럼 우리 재단에 기부해라. 성수 이름으로.”
 
윤용범(61) 청소년행복재단 사무총장과 그가 보살펴 온 소년원 출신의 김성수(23·가명)씨가 최근 페이스북 메신저로 나눈 대화다. 김씨는 18세 때 소년원에서 ‘키다리 아저씨’ 윤 사무총장(당시 법무부 소속)을 만났다. 1985년 법무부 소년보호직 9급으로 입사한 이후 윤 사무총장이 김씨처럼 품어온 아이들은 700여 명이다. 그런 윤 사무총장이 지난해 6월 정년 퇴임과 함께 청소년 취약계층의 자립을 지원하는 청소년행복재단(이사장 이중명 아난티그룹 회장) 을 주도적으로 설립했다. 지난 12일 서울 서초구 재단 사무실에서 윤 사무총장을 만났다.
 
35년 전 소년보호직을 선택한 이유는.
“대학 입학 즈음 집안이 어려워져 학업을 포기하고 노점을 했다. 이때 많은 비행 청소년들을 만나면서 이들을 위한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다. 종교적 사명감도 있었다.”
 
첫 임무로 충주소년원 농기계반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윤 사무총장은 독학으로 소년보호정보시스템의 초기 모델을 만들었다. 법무부 보호국(현재는 범죄예방정책국) 소년과에서 기획업무를 맡게 된 계기였다. 소년원 아이들의 영상 작업을 지원하고, 소년원 대상 ‘푸르미방송국’도 개국했다. 그는 “아이들이 죄를 짓지 않고 살게 할 방법만 생각하며 살았다”고 했다.
 
재단을 만든 계기가 있었나.
“2011년 대학에 들어간 아이가, 퇴원 후 1년 만에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똑똑한 아이였다. 자립할 환경이 안 됐던 거다. 퇴원 후 1년 간 소년원 선생님들이 관리하는 ‘희망도우미 프로젝트’ 운동을 전개했다. 내가 나섰다. 시간만 나면 만나 "어디 아프니” "요즘 어떠니” 물어보고, 갈비 사주고 그랬다. 700명 정도. 내 칠순 잔치 때 이 아이들과 식사 같이하는 게 꿈이다. 재단은 그 활동의 연장선 상에 있다.”
 
기억에 남는 일은
“사시였던 아이 수술비를 지원했다. 소심한 아이였는데, 수술 후 내 눈을 맞추고 이야기하더라. 눈물이 팍 났다. ‘기초생활 수급 어떻게 신청하나요’ ‘떡볶이 먹고 싶어요’ 부모 없는 아이들이 나를 ‘아부지’라고 부르며 이런 메시지를 보낸다. 내가 도와주면 그 아이들이 커서 다른 아이들을 돕더라.”
 
돈도 많이 들었을 것 같다.
“퇴직하니 빚이 3000만원 있더라. 아이들은 ‘아부지’가 자기 돈을 내는 것을 봐야 더 신뢰하기 때문에 항상 사비를 썼다. 퇴직하니까 서로 ‘아부지’한테 밥 사달라고 하지 말라고 얘기했다더라. (웃음)”
 
재단은 어떻게 도와주나.
“‘조이플래너’라는 멘토들을 모아 아이들을 돕는다. 장학금이 필요하다면 재단을 매칭해주고, 기술 장인을 만나고 싶다고 하면 연결해주는 식이다. 주거, 취업, 창업 등을 위한 금전적 지원도 한다. 아이들이 기름이 떨어졌을 때 찾아오는, 주유소 같은 플랫폼이 됐으면 한다.”
 
무상 지원인가.
“지원한 자금의 절반은 돌려받는데, 기부 상환하라고 한다. 자립에 성공한 아이가 절반의 돈을 갚으면 재단에서 돈을 보태 그 아이의 이름으로 또 다른 아이에게 출자한다.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의 멘토가 되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윤 사무총장은 “소년원 아이들은 일반 아이들과 똑같다”며 “하지만 부모가 없거나 있더라도 제 역할을 못 하면 학교 부적응으로 이어지고, 처음 가출 땐 범죄 피해자가 되지만 가출을 반복하며 가해자로 변한다”고 했다.
 
“남 일이 아닌 우리의 문제다. 아이들은 도와줘도 고마움을 잘 표하지 않는데, 감사하는 법을 못 배워서 그런 거다. 그럴 때마다 혼자 되뇐다. 믿기만 하자. 믿어주고, 기다려주고, 만나주면, 하루하루, 자란다.”
 
강광우 기자 kang.kwangwoo@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