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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오랜 친구가, 친자식 예뻐서···성폭력 80% '아는사람'

중앙일보 2020.03.15 07:00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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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대학생 A씨(남성)는 지난달 중순 저녁 친구(여성)를 만나 술을 마셨다. 이들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알고 지낸 죽마고우 사이다. A씨의 군 제대 직후 오랜만에 만난 것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술자리는 2차로 이어졌고 시간은 자정을 넘겼다. 두 명이 비운 소주는 6병에 달했다.
만취한 A씨와 친구는 잠을 청하러 인근 모텔로 들어갔다. 사건은 그 안에서 벌어졌다. A씨가 강제로 성관계하고 거부하는 친구의 뺨을 때려 멍들게 했다. 서울 중랑경찰서는 최근 강간상해 혐의로 A씨를 검거해 구속했다. A씨는 “술김에 저지른 일”이라며 고개를 떨궜다.

 
#중년 남성 B씨는 2017년부터 올해 1월까지 수차례에 걸쳐 음주 상태로 어린 아들·딸을 때렸다. 아이들의 옷 속에 손을 넣어 특정 신체 부위를 만지기도 했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안 아내가 신고하면서 B씨는 최근 성폭력처벌법상 강제추행 혐의로 서울 도봉경찰서에 구속됐다. 
B씨의 아내와 아이들은 현재 보호시설에 거주 중이다. B씨는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그는 “자식들이 너무 예뻐 애정표현을 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친구나 가족 등 ‘아는 사람’에 의한 강력 성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피해자 입장에선 모르는 사람에게 당하는 것보다 충격이 더 큰 만큼 정확한 실태 파악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본 사건과 직접 관련은 없음. [중앙포토]

본 사건과 직접 관련은 없음. [중앙포토]

 

“성폭행 80%, 아는 사람 사이”

전체 성범죄 가운데 아는 사이에서 벌어진 범죄의 비율도 높다. 여성가족부의 ‘2016년 전국 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성폭행 피해자 중 78%가량은 “아는 사람에게 피해를 봤다”고 응답했다. 성추행의 경우 70%다. 성폭력·가정폭력 피해자 전문 지원단체인 한국여성의전화는 “지난해 상담한 성폭력 피해자들은 3명 중 1명꼴로 아는 사람에게 당했다”고 전했다.
 
최나눔 여성인권상담소 정책팀장은 “한국 사회에 ‘친밀한 관계에선 성적 행동이 당연하게 동의돼 있다’는 잘못된 인식이 만연하다”며 “명시적인 폭행이나 협박이 전제돼 있어야 강간·성추행이 성립된다는 인식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런 인식 때문에 2차 피해가 일어나는 경우도 다반사라는 설명이다.
그는 “더 큰 문제는 국가가 아는 사이에서 벌어진 강력 성범죄에 대해 실태 파악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전체 강력 성범죄 사건 수는 증가세를 보인다. 경찰청 통계연보에 따르면 강간·강제추행 발생 건수는 2012년 1만9600여건, 2015년 2만1200여건, 2018년 2만3400여건을 기록했다. 두 범죄를 따로 떼 보면 강제추행의 상승세가 더 가파르다.
연간 강간·강제추행 사건 추이.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연간 강간·강제추행 사건 추이.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전문가들은 강력 성범죄 사건 증가의 원인으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진 것과 더불어 피해 여성들이 점차 적극적으로 피해 사실을 알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과거였다면 아무 일이 안 일어난 것처럼 넘어갔을 일이 최근에는 상당수가 정식 사건으로 발전한다는 의미다.

 
이는 경찰의 수사 단서 통계로도 확인할 수 있다. 2018년 경찰의 강간·강제추행 수사 단서 중 ‘피해자 신고’ 비율은 약 42%로 2015년(35%)보다 7%포인트 높다. 지난 수년 동안 세계적으로 ‘미투(#MeToo·성폭력 고발 운동)’가 활발하게 전개된 점도 사건 발생 증가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경찰은 2017년을 기점으로 강력 성범죄 발생 증가세가 주춤한 것에 대해 “수사와 처벌의 강화 등이 효과를 내고 있다”고 본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가해자가 피해자의 ‘No’를 ‘No’로 인식해야 성범죄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A씨 사건을 두고 “여자를 데리고 모텔로 들어갈 수는 있어도 ‘No’라고 했을 때 멈췄으면 사건으로 비화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건·김민중 기자 park.k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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