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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초유 트럼프의 30일 유럽 차단…코로나의 정치학

중앙일보 2020.03.12 17:48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애리조나 피닉스에서 유세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애리조나 피닉스에서 유세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한밤 담화'로 유럽에 사실상 국경을 닫는 조치를 발표했다. 신종 코로나 '장벽'이 중국을 넘어 서구권으로 확산하는 모양새다. 트럼프 정부의 이 같은 조치는 세계보건기구(WHO)의 11일 팬더믹(세계적 대유행) 선언과 맞물렸다. 또 한 차례 각국의 ‘입국 제한 러시’를 몰고 올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과거에도 사스ㆍ신종 플루ㆍ에볼라 등 감염병이 전 세계로 확산한 적은 있지만, 신종 코로나처럼 중국을 제외한 서구권까지 입국 제한 조치가 이뤄진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정통한 외교 소식통은 12일 미국의 이번 조치와 관련해 “미국은 지리적 인접성·인적 규모 면에서 유럽 코로나 확산의 직접 영향권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며 “국경 통제를 신속히 하는 데는 미 정부의 철학 차이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선 이번 조치는 미 행정부의 대외 정책 변화와도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찌감치 1월 31일 중국발 외국인에 대한 입국 금지를 단행한 데 이어 한 달 만에 유럽까지 '일시 차단'했다. 이는 2014~15년 오바마 정부 때 미국 내 에볼라가 확산했을 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의료진과 의약품 이동을 제한할 수 있다”며 끝내 국경을 닫지 않은 것과 대조된다.
 
2014년 10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에볼라 확산 방지를 위해 핵심 참모와 긴급대책회의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2014년 10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에볼라 확산 방지를 위해 핵심 참모와 긴급대책회의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처럼 입국 제한 문제는 방역 문제인 동시에 고도의 정치적 행위다. 이번 조치와 관련해서도 한 소식통은 "그동안 미온적 대처로 민주당의 공격을 받아온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을 앞두고 내린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은 신종 코로나 사태 초기에 중국을 차단하면서도 인접한 한국·일본에 대한 입국 제한은 매우 신중하게 접근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이라는 표현도 썼다.
 
일본은 뒤늦게 한국과 중국에 입국 제한 조치를 단행했다. 그러자 한국도 일본에 대해 일종의 '외교 보복' 차원에서 사증 효력 중단 등의 조치를 취했다. 한·일 모두 나름의 정치적 셈법이 작용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입국 제한 조치를 안 받는 것도 치열한 물밑 외교전의 대상이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에 대한 입국 금지를 발표하면서 한국이 빠진 데 더해 기존에 부과했던 제한을 완화할 수 있다는 언급까지 한 것은 매우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일 중국 군사의학연구원과 칭화대학의학원을 잇따라 방문해 신종 코로나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의료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일 중국 군사의학연구원과 칭화대학의학원을 잇따라 방문해 신종 코로나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의료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추후 입국 제한국에서 벗어나는 것 역시 정치적 셈법이 작용한다. 최근 외교부는 입국 제한국이 12일 현재 123개국을 넘어서면서 이 부분에 집중하는 쪽으로 전략을 바꿨다. ‘코로나바이러스 음성 확인서’를 지정 병원을 통해 정부가 보증해 주는 아이디어도 한 예다. 
 
외교부는 세계보건기구(WHO) 여론 잡기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8일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WHO 사무총장과 전화 통화에서 WHO에 300만 달러 지원을 약속한 것이 대표적이다. 크루즈 내 확산으로 곤욕을 치렀던 일본은 일찌감치 WHO에 일본 전체 확진자 수에서 크루즈선 감염자는 제외해달라는 요청을 관철하기도 했다.
 

코로나 장벽 확산?…유럽 정치에 달렸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AP=연합뉴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AP=연합뉴스]

 
주목되는 건 향후 유럽의 움직임인데 이 역시 정치가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번 미국의 입국 제한 조치에서 빠진 영국을 제외한 유럽 대륙 국가들은 대부분 국경 개방 협약인 솅겐 협약(1985년)에 가입해 있다. 이탈리아 확진자 수가 1만 명을 넘어가면서 이들 국가에서도 “솅겐 협약의 효력을 한시 중단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지만, 아직까지 정부 레벨에서는 신중하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지난 11일 “독일 인구의 70% 감염을 대비해야 한다“면서도 “국경 폐쇄는 적절한 대응이 아니며 코로나19가 심각하게 번진 지역에서 돌아온 시민은 스스로 자가 격리를 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정치가 작용하는 대목이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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