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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단 줄테니 마스크 우리 줘라” 제조사에 목매던 을의 돌변

중앙일보 2020.03.12 05:00
공적 마스크 판매처와 수량을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애플리케이션과 웹 서비스가 시작된 11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약국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연합뉴스]

공적 마스크 판매처와 수량을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애플리케이션과 웹 서비스가 시작된 11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약국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틈탄 보건용품 업체의 마스크 사재기 정황을 수사하는 검찰이 마스크 제조업체에 이어 필터 원단 업체로 수사를 확대했다.  

 
 
서울중앙지검 보건용품 유통교란사범 전담수사팀(팀장 전준철 반부패수사2부장)은 11일 서울·인천과 대전 등에 있는 마스크 원단 공급·중개업체 등 10여 곳을 압수수색했다.

 
 
지난달 28일 꾸려진 전담팀은 지난 6일에는 수도권 지역을 중심으로 마스크 제조·유통업체를 압수수색했다. 이 업체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마스크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 필터 원단의 유통 과정까지 들여다본 셈이다.  
 
 
경기도 특별사법경찰단은 도내 53개 미세먼지 마스크 제조업체와 온라인 쇼핑몰 25개 업체를 대상으로 수사를 실시한 결과 43개소에서 약사법 위반행위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11일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청 브리핑룸에서 특사경 수사관들이 압수품을 공개하고 있다. [뉴스1]

경기도 특별사법경찰단은 도내 53개 미세먼지 마스크 제조업체와 온라인 쇼핑몰 25개 업체를 대상으로 수사를 실시한 결과 43개소에서 약사법 위반행위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11일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청 브리핑룸에서 특사경 수사관들이 압수품을 공개하고 있다. [뉴스1]

검찰은 이들이 마스크 원자재를 공급하는 대가로 제조업체로부터 마스크 완성품을 받으려 한 정황을 잡고 해당 업체에 검사와 수사관 50여명을 보내 원자재 거래내역 등을 확보했다.  
 
 
마스크 제조업체는 주로 중국에서 수입한 원단으로 완성품을 만들었다. 코로나19로 수입 길이 막히면서 국내 원단 제조업체에 부탁을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납품을 하던 ‘을’ 위치에 있던 원단 제조업체는 ‘갑을’ 관계가 뒤바뀌자 마스크 완성품 제공과 같은 요구를 한 정황을 검찰이 파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세청은 원단을 생산하는 12개 국내 업체를 특정하고 지난달 28일부터 조사요원 24명을 현장에 배치해 자금 흐름을 추적하고 있었다. 필터 원단은 입자차단 성능에 따라 KF80·KF94·KF99 등으로 표기된다. KF80 마스크는 미세먼지(머리카락 굵기의 6분의 1)를 80% 이상 차단한다는 의미다. 정부는 지난 1월 코로나 바이러스를 차단하기 위해서 KF94·KF99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최근에는 환자를 돌보는 의료진이 우선 사용해야 한다고 안내하고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국내에 있는 원단 업체 12개를 모두 풀가동하면 국내 마스크 수요를 맞출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이들이 생산한 원단이 제조업체로 넘어가는 유통 과정에서 브로커까지 붙어 수급 불균형 문제가 나타난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에는 일반 소비자들도 직접 원단을 구매해 면 마스크에 덧대서 사용하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가격도 상승하고 있다. 
 
중국 온라인 거래 사이트인 알리바바에서 마스크 필터 원료를 생산하는 기계를 파는 모습. 2만4000달러(약 280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사진 알리바바]

중국 온라인 거래 사이트인 알리바바에서 마스크 필터 원료를 생산하는 기계를 파는 모습. 2만4000달러(약 280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사진 알리바바]

 
중국 온라인 거래 사이트인 알리바바에 따르면 마스크 필터 원단을 제조하는 기계는 3000만원 미만에 거래되고 있다. 플라스틱의 일종인 폴리프로필렌이라는 물질을 뜨겁게 실처럼 공기 중으로 날려 거미줄같이 가늘고 촘촘한 필터를 만드는 멜트 블라운(Melt Blown) 기법을 사용한다.  
 
 
필터 원단 수급 불균형 문제가 나오자 대기업까지 팔을 걷고 나섰다. 코오롱 인더스트리는 혈액을 투석할 때 쓰이는 의료용 필터를 생산하기로 했던 기계를 마스크용 원단을 생산하는 데 사용하기로 했다. 기계를 하루 24시간 계속 돌려 약 200만장 마스크 생산에 쓰일 수 있는 원단을 무료로 공급하기로 했다.  
 
 
심현주 숭실대 유기신소재·파이버공학과 교수는 “국내 필터 원단 제조업체는 가격 단가가 높은 자동차나 실내 공기청정기에 쓰이는 필터를 주로 제조해 왔었다”며 “원단을 중국에서 수입하는 길이 막히니 국내 업체가 기존 기계를 마스크 필터 원단을 생산하는 용도로 자의반타의반 맞췄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원단을 갖고 기계 1대로 1시간에 1000장 남짓 만들 수 있는 마스크 제조업체도 공장을 풀가동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정부가 업체에 생산량을 높이도록 강요하기보다는 무분별한 마스크 사용을 자제시키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김민상 기자 kim.min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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