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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뉴스]구두닦아 번 7억 땅 기부···우리 마음 광내준 병록씨

중앙일보 2020.03.12 00:30 종합 1면 지면보기
 
“죽어서 가져갈 땅도 아닌데…꼭 이 결심이 필요한 때인 것 같습니다."

3평 임대구둣방서 일군 1만평 기부
21년 동안 헌구두 5000켤레 고쳐
어려운 이웃에 선물한 ‘나눔천사’

 
지난 10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마장리에서 만난 김병록(61)씨는 불현듯 땅 이야기를 꺼내며 야산으로 향했다. 마장리 일대 임야 3만3000㎡(1만평, 공시지가 ㎡당 7330원)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아무 조건 없이 내놓겠다고 했다. 
 
김씨에게 이 땅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11살 때부터 50년 가까이 구두를 닦고 수선해온 김씨는 6년 전 이 땅을 매입했다. "노후에 오갈 곳 없는 이웃들과 함께 어울려 농사지으며 살려고 사 두었던 곳입니다." 
김씨는 고양시 행신동 노점에서 구두수선을 해 왔다. 그러다 2008년부터는 서울 상암동에 10㎡(3평) 크기의 구두 점포를 임대해 아내 권점득(59·여)씨와 구두수선점을 운영 중이다. 현재 큰딸(34)을 출가시키고, 아내·작은딸(30)·다운증후군을 앓는 1급 지적 장애인 아들(27)과 행신동의 66㎡(20평)짜리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노후도 준비하고 장기적으로 사회에 도움도 되는 일을 하려고 사 놓은 땅이라고 한다. 김씨는 “이번에 코로나가 확산하면서 1990년대 말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때보다 더 심한 점포 운영난을 겪게 되면서 지금의 경제위기를 실감한 게 땅을 기부하기로 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라가 이렇게 어려울 때 내가 가진 것을 내놔 조금이나마 어려움에 부닥친 국민을 돕고 싶다”고 했다.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어려운 사람을 돕기 위해 평생 모은 돈으로 장만한 땅 1만평을 기부하기로 한 구두수선공 김병록씨가 닦아서 광을 낸 구두를 들어보이고 있다. 변선구 기자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어려운 사람을 돕기 위해 평생 모은 돈으로 장만한 땅 1만평을 기부하기로 한 구두수선공 김병록씨가 닦아서 광을 낸 구두를 들어보이고 있다. 변선구 기자

 

“좋은 일에 쓰겠다는 남편 뜻 존중"  

김씨는 “죽어서 가져갈 땅도 아닌데, 저도 넉넉한 형편은 아니지만 국가적인 경제위기를 극복하는데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어 선택한 결정”이라면서도 “사실 이런 결정을 하기까지는 며칠간 밤잠도 설쳐가며 고민의 시간을 가졌다”고 털어놓았다. 김씨의 아내 권씨는 “남편의 뜻을 얘기 듣고는 한쪽 팔이 잘려나가는 듯한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은 것도 사실이지만 좋은 일에 땅을 쓰겠다는 남편의 뜻을 존중해 결정에 따랐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오후 구두수선공 김병록씨가 코로나로 위기에 처한 어려운 이웃들을 돕기 위해 아무 조건 없이 파주시에 기부하기로 한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마장리 소재 자신의 땅을 가리키고 있다. 전익진 기자

지난 10일 오후 구두수선공 김병록씨가 코로나로 위기에 처한 어려운 이웃들을 돕기 위해 아무 조건 없이 파주시에 기부하기로 한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마장리 소재 자신의 땅을 가리키고 있다. 전익진 기자

 
11일 김씨로부터 기부 의사를 확인한 파주시 관계자는 “국내로 유입된 코로나19 여파로 우리나라 경제가 직격탄을 맞았고 파주의 지역 경제도 몹시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렇게 어려운 때에 파주를 위해 자산을 기증하는 뜻깊은 결정을 해준데 대해 감사드리며 파주시도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파주시에 따르면 김씨 부부가 기증한 땅의 현재 공시지가는 ㎡당 7330원으로, 3.3㎡(1평)당 2만4200원이다. 1만평 전체의 공시지가는 2억4200만원이다. 현재 이 땅의 시가는 5억∼7억원이다. 

 

매월 4∼5차례 요양원·노인정 이발 봉사

김씨는 앞서 1996년부터 2017년까지 21년간 헌 구두 5000여 켤레를 수선한 뒤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하기도 했다. 때로는 헌 우산·양산을 수리해 힘든 이웃에게도 전달하기도 했다. 97년부터는 이발 기술을 배운 뒤 매월 4∼5차례 정도 요양원·노인정 등을 찾아 이발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2010년부터는 고속도로 톨게이트 등에서 ‘뒤차 돈 내주기’ 캠페인을 하고 있다. 그동안 400여 차례 뒤차의 톨게이트비를 대신 내줬다. 김씨는 “별것 아닌 일이지만 단돈 몇천 원으로 다른 누군가에게 그날 하루 행복함과 고마움을 느끼게 하고 싶어 하는 일”이라고 귀띔했다.
 

"아빠 직업 창피해 했던 아이들, 회사 면접서 자랑스러워해" 

변변히 휴일을 즐길 틈도 없이 생업인 구두 닦는 일과 수선 일 외에는 봉사활동에 전념하다시피 해온 김씨는 “이웃이 저의 작은 도움으로 인해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큰 기쁨이 없다고 여긴다”고 말했다. 
그는 “20대 후반에 심한 폐결핵으로 사경을 헤매다 한폭 폐의 기능을 잃고도 기적적으로 살아난 이후 나머지 삶은 덤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어려운 이웃을 돕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어릴 적에는 아빠의 직업을 창피해하던 자녀들이 이제는 회사 면접에서까지 당당히 아빠 직업을 밝히며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면 보람이 크다”며 웃었다.

 
파주=전익진 기자 ijj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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