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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발 오그라드는 저주 보여주는 새로운 ‘방법’

중앙일보 2020.03.12 00:03 종합 19면 지면보기
방법’에서는 상대방을 저주하고, 이를 막기 위한 굿을 하는 등 다양한 영적 대결이 펼쳐진다. 10대 여고생 방법사 백소진(정지소). [사진 tvN]

방법’에서는 상대방을 저주하고, 이를 막기 위한 굿을 하는 등 다양한 영적 대결이 펼쳐진다. 10대 여고생 방법사 백소진(정지소). [사진 tvN]

‘네 눈에는 피눈물이 흐르고, 사지가 뒤틀려 죽을 것이다.’ 저주인 줄 알았던 모습이 실제 눈앞에 펼쳐진다면 어떨까. tvN 월화드라마 ‘방법’은 그 충격적 형상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누구든 사진, 한자 이름, 소지품만 있으면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10대 소녀(정지소)와 사회부 기자(엄지원)가 ‘저주의 숲’ 서비스를 운영하는 IT 기업 회장(성동일), 그 뒤의 무당(조민수)과 맞서 싸우는 이야기는 이내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일본 귀신이 깃든 방법사와 한국 무당이 대결을 펼치는 새로운 오컬트의 장을 열면서 시청률은 1회 2.5%(닐슨코리아 유료가구 기준)에서 10회 6.1%로 2배 넘게 뛰었다.
 

‘부산행’ 연상호 감독 첫 드라마 극본
tvN 오컬트 ‘방법’ 시청률 6.1%
“동서양 섞인 한국공포물 이젠 먹혀”

웹툰·애니 오가는 새 플랫폼 관심
부산행 그후 4년 ‘반도’ 올 여름 개봉

연상호

연상호

이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쓴 사람은 다름 아닌 연상호(42)다. 1997년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시작해 영화 ‘부산행’(2016)으로 1000만 관객을 동원한 그의 첫 드라마 집필이다. 어떻게 수단과 방식을 뜻하는 방법(方法)이 아닌 저주로 사람을 해하는 주술로서의 방법(謗法)을 떠올리게 됐을까. 전화로 만난 그는 “어릴 적 할머니한테 들었는지 전래동화였는지 기억나진 않는데 물건을 훔쳐간 아이가 사람들이 방법 한다고 하자 무서워서 자백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손발이 오그라진다는 건 어떤 걸까 생각했다”고 했다.
 
이후 사극에서 중전이 저주 인형을 사용하는 장면이나 인터넷상에서 특정 인물을 공격할 때 등장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고. “옛 주술이 현대 인터넷 사회에서도 통한다는 게 신기하더라고요. 드라마 제안을 받고 슈퍼히어로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는데 더 특별한 게 없을까 고민하다가 방법을 떠올리게 됐죠. 히어로와 오컬트, 미스터리를 섞으면 색다른 게 나올 것 같았거든요. 초자연적인 힘과 혐오 사회라는 동시대적인 문제를 함께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옛날 주술이 인터넷서도 통하는 게 신기”

 
IT기업 회장 진종현(성동일). [사진 tvN]

IT기업 회장 진종현(성동일). [사진 tvN]

덜컥 수락했지만, 영화와 드라마의 집필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고 했다. “영화가 시나리오 100페이지 내에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를 담는 것을 고민하는 과정이라면, 12부작 드라마는 12개의 이야기가 각자 완결성을 가지면서도 서로 연결되도록 구성해야 한다”는 것. “TV 애니메이션에서 ‘다음 주에 계속’이라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만화책 단행본을 사서 볼 때도 2~3달은 기다려야 하고. 그렇게 기다릴 때 기분을 반영하려고 했어요.”
 
캐릭터가 다소 단선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조민수·성동일 등은 신들린 연기를 보여주지만, 대결 구도가 반복되면서 개연성이 떨어지는 장면도 등장한다. 연 감독은 “초반에 캐릭터가 힘을 받기 위해 구성을 그렇게 해 놓은 것”이라며 “깔아놓은 밑밥이 후반부에 모두 밝혀질 것”이라고 답했다.
 
연출을 맡은 김용완 PD와는 이번이 첫 만남이다. 영화 ‘챔피언’(2018), 웹드라마 ‘우리 헤어졌어요’(2015) 등 다양한 장르를 오간 베테랑이다. “제 영화도 100% 제가 생각한 대로 나오지 않을뿐더러 다른 사람들과 협업한 결과물도 나쁘지 않더라고요. 예를 들어 손목의 흉터가 핏줄처럼 뻗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생각하지 못한 그림이었거든요. 김 감독님과 작업할 때 참고한 이미지를 보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눈 게 도움이 됐어요.” 연 감독의 말이다.
 
‘반도’는 ‘부산행’과 전혀 다른 이야기 될 것

 
신기로 진 회장을 보필하는 무당 진경(조민수). [사진 tvN]

신기로 진 회장을 보필하는 무당 진경(조민수). [사진 tvN]

“시청률 3%만 넘어도 시즌 2를 만들 것”이라고 공약했던 연 감독은 “드라마 시즌 1에서 이어지는 영화와 다시 영화에서 이어지는 시즌 2를 계획 중”이라고 했다. 올여름 개봉을 앞둔 연 감독의 영화 ‘반도’는 ‘부산행’의 4년 뒤를 그린 작품이다. 강동원·이정현·권해효 등이 출연하며, 북미·유럽 시장에 선판매되는 등 해외에서도 관심을 보인다.
 
세계관을 토대로 이야기를 이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연 감독은 “그 세계에서 더 나올 이야기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본다고 했다. “‘방법’은 캐릭터가 중요한 이야기이지만, ‘부산행’의 주인공은 좀비잖아요. 각각의 캐릭터가 어떻게 됐을까보다 좀비 이후의 사회가 어떻게 됐을까가 더 궁금하지 않을까요. ‘반도’는 ‘부산행’과 관점은 비슷하지만, 분위기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될 거예요.”
 
“서브컬처 애호가 작업하기 좋은 환경 돼”

 
연상호 감독이 쓰고, 최규석 작가가 그린 웹툰 ‘지옥’. [사진 네이버웹툰]

연상호 감독이 쓰고, 최규석 작가가 그린 웹툰 ‘지옥’. [사진 네이버웹툰]

최근 네이버에서 1부 연재를 마친 웹툰 ‘지옥’도 드라마화한다. 연 감독이 글을 쓰고, ‘송곳’의 최규석 작가가 그림을 그렸다. 각각 서양화와 만화학을 전공한 두 사람은 상명대 재학 시절부터 친구 사이다. 연 감독은 “좋은 기회가 있으면 언제든 드라마 연출에도 도전하고 싶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새로운 플랫폼에 맞는 새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더 관심이 많다”고 했다.
 
“전 세계적으로 장르물을 폭넓게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 같아요. 몇 년 전만 해도 한국에서 좀비 영화는 안된다고 했는데, 서브컬처를 즐기는 수용자가 순식간에 늘어난 거죠. 동서양이 혼합된 한국형 공포물 수요도 있고, 저 같은 사람이 작업하기 좋은 환경이 된 것 같아요. 한국에서 장르 영화는 이제 시작인 셈이니까요. 첨단기술과 반문화적 성격이 결합한 사이버펑크도 꼭 한번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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