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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러붙지 않는 프라이팬의 배신…"생명체 99% 오염시켰다"

중앙일보 2020.03.11 12:00
영화 '다크 워터스'의 제작자이자 주연 배우 마크 러팔로. 할리우드 스타이자 환경운동가인 그는 미국 화학회사 듀폰의 유독물질 은폐에 대한 진실을 파헤치고자 이번 영화를 만들었다. [사진 이수C&E]

영화 '다크 워터스'의 제작자이자 주연 배우 마크 러팔로. 할리우드 스타이자 환경운동가인 그는 미국 화학회사 듀폰의 유독물질 은폐에 대한 진실을 파헤치고자 이번 영화를 만들었다. [사진 이수C&E]

“PFOA는 우리 몸에 축적돼 중증 질병과 암을 유발한다는 게 과학적으로 증명됐어요. 지구상 99% 생물의 몸 안에 있고 우리도 감염됐어요. 기업은 최소 40년 동안 이 약품을 유출해왔고 이를 숨겨왔습니다.”

 
마블 히어로 ‘헐크’의 배우 마크 러팔로(53)의 경고다. SF 속 외계물질 얘기가 아니다. PFOA, 풀어서 과불화옥탄산(perfluoro octanoic acid). ‘C8’로도 알려진 이 100% 인공 화합물은 주방에 하나쯤 있는 들러붙지 않는 프라이팬의 코팅제 ‘테프론’ 속 화학물질이다. 테프론 프라이팬을 ‘지나치게 고온 가열하면’ 유독물질이 나온다는 얘긴 들어본 적 있을 터다.

'다크 워터스' 제작ㆍ주연 마크 러팔로
美기업 듀폰 8000억 소송 다뤄

20년간 듀폰 파헤친 미국 변호사
"이미 전지구 인류 혈관 오염됐다"

 

들러붙지 않는 프라이팬의 배신

미국 대기업 화학회사 듀폰의 익숙한 로고다. 사진은 2015년 버전. 만년필과 라이터로 유명한 프랑스의 듀퐁은 발음이 비슷하지만 다른 회사다. [AP=연합뉴스]

미국 대기업 화학회사 듀폰의 익숙한 로고다. 사진은 2015년 버전. 만년필과 라이터로 유명한 프랑스의 듀퐁은 발음이 비슷하지만 다른 회사다. [AP=연합뉴스]

하지만 미국 화학회사 듀폰은 이를 사용한 자사 제품이 환경적으로 별 문제없다며 지속적으로 사용하고 폐기물을 무단 방류까지 했다. 그 결과, 일대 마을 주민과 공장 직원들은 신장암, 고환암, 자간전증, 고 콜레스테롤, 궤양성 대장염, 갑상선 질환 등 중증 질환과 기형아 출산으로 고통 받았다.  
 
듀폰이 40년 넘게 은폐해온 소름 끼치는 실화다. 2017년 미국 법정이 듀폰에 6억7100만 달러(약 8000억원) 배상을 선고하며 세상에 밝혀졌다. 
  
배우이자 환경운동가 마크 러팔로가 제작‧주연해 11일 개봉하는 영화 ‘다크 워터스’는 바로 이 거대 기업을 상대로 20여년간 홀로 싸운 실존 변호사 롭 빌럿(55)의 이야기를 좇는다. 2016년 뉴욕타임스 매거진의 탐사보도를 보고 충격받은 러팔로는 ‘캐롤’ ‘벨벳 골드마인’의 토드 헤인즈 감독에게 시나리오를 보내 직접 섭외하기도 했다.
 

대기업 듀폰의 8000억 배상사건 

롭 빌럿은 원래 화학기업 변호를 전담하는 대형 로펌 변호사였다. 1998년 미국 웨스트버지아의 농부 윌버 테넌트가 찾아왔을 때만 해도 그는 이 사건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테넌트는 골짜기 위쪽에 듀폰의 쓰레기매립지가 들어서면서 자신의 젖소들이 죽었다고 했다.  
2016년 뉴욕타임스 매거진이 미국 듀폰사 사건 담당 변호사 롭 빌럿을 다룬 기사. '듀폰 최악의 악몽이 된 변호사'란 제목이다. [웹캡처]

2016년 뉴욕타임스 매거진이 미국 듀폰사 사건 담당 변호사 롭 빌럿을 다룬 기사. '듀폰 최악의 악몽이 된 변호사'란 제목이다. [웹캡처]

 
어릴 적 추억이 서린 할머니댁 이웃이었기에 현장을 검토하러 나갔지만, 빌럿은 기업가들을 신뢰했고 문제가 있더라도 작은 실수일 거라 믿었다. 그러나 결과는 상상 밖이었다. “절대 버려져선 안 되는, 규제조차 안 된 물질이 검출됐죠.” 실제 롭 빌럿이 영화사에 전한 얘기다.  
 

유독성? 사람이 타이어 마시는 것 같아

PFOA의 독성은 영화 속 화학전문가와 빌럿의 대화에 이렇게 드러난다.  
 

“만약 이걸 마신다면요?”(빌럿)  

“마치 타이어를 삼키면 어떠냐고 묻는 셈인데, 그러고 싶어요?”(화학전문가)

 
테넌트의 젖소들은 골짜기 물을 마시고 피부가 부풀고 눈이 멀고 미치고 암이 생기고 장기가 비대해진 채 죽었다. 자그마치 190마리였다. 다음 비극은 사람들에게 닥쳤다.  
 
차라리 이 땅을 떠나라는 빌럿의 조언에 테넌트는 말한다. “이미 늦었어 산드라(아내)와 나도 이미 암이거든.”
 
한때 가족의 소중한 보금자리였던 테넌트의 농가에서 오가는 이 대화는 드넓은 대륙을 계속해서 개척해나가면 된다는 식으로 이어져 온 미국식 개발사를 꼬집는 듯하다. 테넌트는 2009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세계적 규모 환경오염 미국서 시작된 이유 

왼쪽부터 빌럿의 로펌 대표 역 배우 팀 로빈스와 빌럿의 아내 역 앤 헤서웨이 그리고 빌럿 역의 마크 러팔로. [사진 이수 C&E]

왼쪽부터 빌럿의 로펌 대표 역 배우 팀 로빈스와 빌럿의 아내 역 앤 헤서웨이 그리고 빌럿 역의 마크 러팔로. [사진 이수 C&E]

빌럿은 “이렇게 규제에 어긋난 화학물질이 어떻게 미국이란 나라에서 50, 60년 동안 모든 검사를 피해가며 배출될 수 있었는지, 전 세계적인 규모로 확대된 이 환경오염이 어떻게 교양있다고 여겨지는 나라인 미국에서 시작될 수 있었는지” 자문했다. 그리고 PFOA가 1970년 미국 환경보건국이 화학물질 규정을 만들기 전부터 존재했다는 데 주목했다. 
 
그에 따르면 “이 100% 인공화합물은 2차 세계대전 직후 만들어졌고, 안타깝게도 미국 정부의 원칙과 법령은 환경보호국 설립 이전에 존재해온 것들에 대한 검토가 미진”했다. 그 결과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오염과 그것에 대한 은폐”(마크 러팔로)였다.
 
이후 듀폰의 화학물질 무단 유출 폭로 및 집단 소송 제기, 피해 사실 조사 등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보도됐다. 영화엔 MBC 뉴스데스크 엄기영 앵커의 방송화면도 잠깐 나온다. 2017년엔 화학물질 노출 피해자 3535건에 대해 듀폰사와 8000억원 규모 보상금 합의에 이르렀다. 
 

기업 보상까지 고통의 20년 

듀폰사 사건의 첫 의뢰자 윌버 테넌트 역 빌 캠프는 테넌트가 남긴 6시간 분량 증언 녹화 테이프와 직접 촬영한 비디오테이프 등을 들여다보며 목소리와 신체형태, 존재감을 연기했다. [사지 이수 C&E]

듀폰사 사건의 첫 의뢰자 윌버 테넌트 역 빌 캠프는 테넌트가 남긴 6시간 분량 증언 녹화 테이프와 직접 촬영한 비디오테이프 등을 들여다보며 목소리와 신체형태, 존재감을 연기했다. [사지 이수 C&E]

농부 윌버 테넌트의 첫 문제 제기 20년 만이었다. 영화는 이미 알려진 승리까지 걸린 이 기나긴 시간이 이미 화학물질로 고통받은 피해자들과 빌럿을 얼마나 지쳐가게 했는지도 집요하게 그린다. 가장 먼저 호소한 테넌트가 “불만품은 농부, 도시 최대의 고용주 고소”란 신문기사와 함께 지역에서 얼마나 눈총받았고, 기업의 반격이 얼마나 숨통을 죘는지, 변호사 빌럿이 개인적으로 감내한 희생은 어떤 것이었는지 등이다. 그 숨 막히는 심정이 스크린 너머까지 다가오도록 전해진다.
 
가습기 살균제, 전북 익산 장점마을의 비료공장으로 인한 암 집단 발병 사태 등 국내 사건이 떠오르는 대목이 한둘이 아니다.  
 
곱씹게 되는 건  또 있다. 바로 롭 빌럿이란 변호사의 존재다. 이번 영화를 위해 빌럿 가족과 긴밀히 교류한 마크 러팔로는 “롭은 피고측(화학기업) 변호사 시절의 감각과 훈련을 모두 활용해서 원고측(화학물질 피해자) 변호를 맡고 있다”면서 “혁명적인 일이다. 이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큰 기업을 상대로 싸워 이기고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보건 연구를 시작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화학기업 폭로, 이제 시작이다 

영화 '다크 워터스'의 주연이자 제작자 마크 러팔로(왼쪽부터)와 토드 헤인즈 감독. [사진 이수 C&E]

영화 '다크 워터스'의 주연이자 제작자 마크 러팔로(왼쪽부터)와 토드 헤인즈 감독. [사진 이수 C&E]

“이 사건으로 깨달은 건 이것이 전체 인공 화학 약품 문제 중 하나일 뿐이란 거예요.” 롭 빌럿의 말이다. 그는 “현재 PFOS라 부르는 ‘이과불화옥테인술폰산’엔 4700가지 화학물질이 있다”면서 “우리가 지금까지 조사한 것, 이 긴 기간에 걸쳐 그 많은 일을 다 해 밝혀낸 게 이 중 하나인 PFOA다. 규제 당국과 과학계가 이제야 이들 중 하나의 화학물질을 규제할 첫발을 내디딘 것”이라 했다.  
 
그간 뒤집힌 듀폰의 주장만 봐도 밝혀질 사실이 많아 보인다. 2003년 듀폰은 테프론 프라이팬에 대해 “260도 이상 가열하면 테프론에서 해로운 물질이 나올 수 있으나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260도 이상 가열하지 않는다”고 해명했지만, 지금은 이런 불소수지 코팅 냄비·프라이팬은 빈 상태로 2분만 가열해도 380~390도의 고온에 이르고 유해한 가스·입자를 배출한다는 게 알려졌다. 
 
빌럿은 이미 이 물질이 여러 대기업과 제품을 통해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오염시켰다고 경고한다. 그는 “지구상 모든 이들의 혈관은 이 물질에 오염됐다. 국가적이고 전지구적인 오염이었음에도 자신이 이 물질에 노출됐고 오염된 물을 마셨고 혈관에 흐른다는 사실을 모른다”면서 이번 영화도 “대중에게 알릴 기회였다. 공공건강에 얼마나 치명적인지 보여주면 뭔가 일어나리라 믿었다”고 했다. 그는 여전히 듀폰 외에도 이런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3M·케무어스에 소송을 제기해 싸우고 있다.  
 

기형장애 피해자 "듀폰에 거짓말쟁이 몰려" 

영화 '다크 워터스'에는 미국 듀폰사 사건의 실제 피해자 버키 베일리가 직접 출연해 극 중 변호사 롭 빌럿(마크 러팔로)에게 사건의 위험성을 알리는 장면도 나온다. 베일리의 어머니는 당시 듀폰 공장에서 일하며 독성 물질에 노출됐고 베일리는 선천적 기형 장애를 안고 태어났다. [사진 이수C&E]

영화 '다크 워터스'에는 미국 듀폰사 사건의 실제 피해자 버키 베일리가 직접 출연해 극 중 변호사 롭 빌럿(마크 러팔로)에게 사건의 위험성을 알리는 장면도 나온다. 베일리의 어머니는 당시 듀폰 공장에서 일하며 독성 물질에 노출됐고 베일리는 선천적 기형 장애를 안고 태어났다. [사진 이수C&E]

영화엔 그를 비롯해 당시 사건의 실제 인물들이 카메오 출연한다. 그 중엔 버키 베일리도 있다. 듀폰 공장에서 일하며 독성 물질에 노출됐던 어머니에게서, 그는 선천적 기형 장애를 갖고 태어나 살아왔다. 영화에선 자신의 역할로 나와 빌럿에게 독성물질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 그는 영화사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전했다.
 

“그 긴 세월 억울함을 호소하고 기억을 되짚으며 듀폰과 싸웠는데 무시당했고 거절당했고 거짓말쟁이라는 소리까지 들었어요. 하지만 모두 진실입니다. 그 긴 싸움을 치러내신 어머니가 제 영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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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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