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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이참에 시장을 좀 배웠으면

중앙일보 2020.03.11 00:29 종합 28면 지면보기
장정훈 산업2팀장

장정훈 산업2팀장

코로나19 초기부터 헛발질만 하던 정부가 급기야 ‘마스크 요일제’까지 내놨다. 하지만 마스크 대란이 수그러들기는커녕, 수급은 더 꼬였고 국민 불만도 더 커지고 있다. 우리는 어쩌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전염병 예방지침 어디에도 없는 마스크에 집착하게 됐는가.
 
사실 마스크 바람잡이에 처음 나선 건 정부다. 식약처가 1월 29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예방을 위해서는 ‘KF94’ ‘KF99’ 등급의 마스크를 사용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한 게 시작이다. WHO나 대한의사협회 등은 손 씻기 같은 개인위생과 사회적 거리 두기를 강조했지만, 식약처는 0.4㎛ 입자를 94%까지 걸러낸다는 KF94 필터의 마스크 착용을 권고했다.
 
마스크 부족이 계속되자 식약처는 2월 12일 의협과 다시 공동 성명서를 낸다. “KF94의 필터 기준을 KF80으로 낮추”긴 했지만, “마스크를 못 구하면 방한용이라도 쓰라”고 마스크 지침을 고수했다. 식약처는 동시에 대통령 결재를 거쳐 보건용 마스크와 손 소독제에 대한 긴급수급조정 조치를 발동하고 매점매석 같은 시장교란 행위를 처벌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노트북을 열며 3/11

노트북을 열며 3/11

하지만 시장에서는 이미 2월 초부터 마스크 생산업체의 70%가 쓰는 중국산 필터 공급이 끊긴 뒤였다. 또 KF80이나 KF94의 마스크 필터 재료인 MB(Melt Blown) 가격이 ㎏당 1만6000원에서 갑절이 넘는 4만 원대로 치솟은 후였다. 조달청은 그러나 생산업체마다 제각각인 생산원가를 무시하고 900~1000원에 일괄 구매를 밀어붙였다. 생산업체 중 원가 보전도 안 된다며 아예 문을 닫거나 당국 눈을 피해 뒷문으로 유통에 나선 이유다.
 
정부는 2월 26일부터는 공적 판매를 선언하고 판매 창구를 우체국과 하나로마트로 제한했다. 그렇지만 시장에서 수급이 헝클어진 마스크 구매는 더 힘들어졌다. 60~70대 고령자까지 마스크 2매를 사기 위해 새벽 5시에 집을 나섰다. 추운 날 어린애를 둘러 세운 엄마는 온동네  약국을 헤맸다. 그러자 여당 대표는 “마스크 한 개로 사흘씩 써도 큰 지장이 없더라”라고 했다. 청와대는 “면 마스크만 써도 된다”고 말을 바꿨다.
 
청와대나 여당은 이참에 시장에 대해 좀 배웠으면 싶다. 의욕만 갖고 옥죌수록 시장은 왜곡된다. 증권이든 부동산이든 모든 시장이 그렇다. 이번에도 마스크 시장에 끼어든 순간, 수급 불안은 커졌고, 오히려 버스·택배 기사처럼 꼭 필요한 사람도 구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코로나19에 대한 정부 대응은 실망 그 자체다. 그나마 현장의 방역 주역과 그들이 내놓는 투명한 정보에 국민은 의지할 뿐이다.
 
장정훈 산업2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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