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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사우디 공급과잉에도 원유 증산, 美셰일가스 겨냥했다

중앙일보 2020.03.11 00:09 종합 6면 지면보기
유가 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먼저 전쟁의 방아쇠를 당긴 것은 사우디아라비아다. 겉으론 원유 생산을 함께 줄이자는 요구를 거부한 러시아를 겨눴다. 그런데 최대 피해가 예상되는 나라는 미국이다. 석유를 둘러싼 미국·사우디·러시아의 패권 경쟁이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에 ‘역(逆) 오일쇼크’까지 겹치면서 글로벌 시장은 혼란에 빠졌다.
 

저유가 지속 땐 셰일업체 못 버텨
석유패권 유지하려 ‘친구’에 결정타
“2년 내 에너지기업 절반 부도낼 것”
경쟁국 이란에 타격 주는 효과도

협상의 고비는 지난 주말이었다. 사우디는 코로나19로 인한 원유 수요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원유 생산량을 추가로 줄이자고 제안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은 하루 100만 배럴, OPEC 비회원국은 합쳐서 50만 배럴을 줄이자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러시아의 거부로 협상은 결렬됐다. 그러자 사우디는 오히려 시장에 원유 공급을 늘리는 것으로 맞섰다. 사우디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는 “4월이 시작되자마자 산유량을 하루 1230만 배럴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감소세로 돌아선 글로벌 원유 수요

감소세로 돌아선 글로벌 원유 수요

사우디와 러시아는 공급 과잉으로 유가가 급락하더라도 당분간 버틸 만하다는 계산이다. 사우디의 권력 실세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속내는 좀 더 복잡하다. 그동안 ‘눈엣가시’였던 미국 셰일가스 업체들에 결정타를 날리자는 의도가 엿보인다. 사우디로선 석유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어제의 친구’였던 미국에 등을 돌리는 양상이다. 경쟁국인 이란에 타격을 안기는 ‘일석이조’의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브라질·베네수엘라·나이지리아·앙골라 등도 유가 전쟁으로 충격을 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셰일가스 업체들은 생존을 위한 싸움에 내몰리게 됐다”며 “저유가가 지속하면 감산과 감원으로도 부도를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9일(현지시간) 다우지수가 7.8%, 나스닥지수는 7.3% 급락한 배경이다. 이날 뉴욕 증시에선 1997년 이후 23년 만에 ‘서킷 브레이커’(거래 일시 중단)가 발동되기도 했다.
 
미국의 셰일가스 업체들은 배럴당 40달러 안팎을 손익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유가가 더 떨어지면 대규모 적자가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월가의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유가전쟁이 이어지면 배럴당 20달러까지 내려갈 수 있다고 봤다. 텍사스와 뉴멕시코에서 셰일가스를 생산하는 파이오니어 내추럴 리소스의 최고경영자(CEO) 스콧 셰필드는 WSJ와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2년에 걸쳐 증시에 상장된 에너지·석유 기업 중 절반 정도가 부도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트럼프는 9일 자신의 트위터에서 “(유가 하락은) 소비자에게 좋은 일이다. 휘발유 가격은 내려가고 있다”고 언급했다.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으로 유리한 측면만 부각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주정완 경제에디터 jw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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