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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천재들의 향연은 끝났다, 지금은 춘추전국시대

중앙일보 2020.03.11 00:03 경제 7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김회룡

일러스트=김회룡

중국 팔로군에 천이(陳毅)라는 군단 사령관이 있었다. 1948년 공산정부 수립 후 부총리가 된 그는 “바둑이 흥하면 국운도 흥하고 바둑이 쇠하면 국운도 쇠한다”고 주창하며 바둑 육성에 앞장섰다. 베이징의 중국기원에 가면 그의 동상이 우뚝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오늘날 중국바둑은 세계최강이 됐다. ‘바둑 종주국’의 위상을 되찾아야 한다는 천이의 간절한 염원이 실현된 것이다. 과정은 험난했다. 문화혁명 때 막 싹을 틔우던 중국바둑은 쑥대밭이 됐다. 천이는 모든 관직을 잃고 숙청당했고 소년 강자 녜웨이핑은 만주의 돼지우리 농장으로 쫓겨났다.
 
일본은 한 수 지도하는 입장이었다. 자신들이 한국이나 중국에 진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신흥부자 일본은 유럽과 미국, 남미까지 바둑을 보급하며 “가부키, 스모, 바둑은 일본 3대 전통문화”라고 선전했다. 한국의 유망주들을 교육했고 중국과는 일 중 슈퍼대항전을 열었다. 바로 이 대회서 녜웨이핑이 일본고수들에 11연승을 거둔 것은 놀라웠다. 대륙이 환호했다. 최고 권력자 덩샤오핑은 녜웨이핑에 기성 칭호를 주며 바둑을 만든 원조 중국의 자존심을 되찾아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한 대사건이 일어났다. 무시당하던 변방의 한국이 세계바둑의 절대강자로 떠오른 것이다.
 
녜웨이핑은 조훈현에게 꺾였다. 마샤오춘과 창하오는 이창호에게 꺾였다. 이창호가 잠시 숨을 돌리면 서봉수와 유창혁이 대신했다. 일본은 전멸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연속해서 등장한 천재들의 힘이었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다. 약소국 한국에서 일본이나 중국을 꺾고 세계챔프가 된다는 것은 온 나라가 행복한 일이었다. 선수와 팬들이 함께 울고 웃었다. 신문은 1면을 할애했고 사설과 네 컷 만화에도 승리 소식이 전해졌다. 그만큼 승리가 간절했다.
 
내가 천이의 동상을 본 것은 30년 전이다. 그로부터 20년간 중국은 한국에 졌다. 그러나 어느 순간 중국바둑과 중국은 함께 굴기했다. 베이징이나 상하이에서 상전벽해의 실상을 목격하면서 한때는 웃고 말았던 국운과 바둑에 대한 천이의 발언을 문득 되돌아본다. 일본바둑이 소위 ‘잃어버린 20년’ 동안 밑바닥을 헤맨 것, 한국바둑이 한강의 기적을 만드는 동안 세계를 휩쓴 것도 그럴싸하게 다가온다.
 
이세돌을 마지막으로 천재들의 향연은 끝났다. 중국 1위 커제와 한국의 박정환이 절대강자의 계보를 다툴 듯 보였으나 예상은 빗나갔다. 지금 세계바둑은 약 30명이 지배하는 춘추전국시대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30명 중 20명은 중국, 한국은 8명, 일본은 2명 정도의 구도다. 그중에도 상위권이 존재하지만 하위권도 만만찮아서 예측불허의 승부가 이어지고 있다.
 
중국의 제패는 강력한 자본을 앞세운 ‘중국바둑리그’에 힘입어 더욱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야구에 캐나다 팀이 참여하듯 중국리그에 한국과 일본이 참여하는 시대가 도래할지도 모른다. 최강의 바둑 인공지능인 절예(絶藝)가 중국산이라는 점도 이런 예상에 힘을 실어준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중요한 게 하나 있다. 바로 승리에 대한 절실함이다. 지난 50년의 바둑사는 절실한 만큼 승리가 따라갔음을 보여준다. 이창호에 가로막힌 대륙의 한숨이 지금도 생생하게 들려오는 듯하다. 패배를 애써 외면하던 일본이 바닥에서 조금씩 상승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한국과 중국은 너무 이긴 탓인지 승부에 대한 설렘이 사라졌다. 승패는 프로기사의 일상일 뿐 팬들을 흔들지 못한다.
 
최근 LG배 세계대회서 우승한 2000년생 신진서가 팬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고 있다. 참으로 오랜만이다. 신진서라는 잠룡이 하늘로 비상하며 중국 대륙을 질주한다면 함께 울고 웃는 팬들이 더욱 늘어날 것이다. 한중일 바둑 삼국지는 그래서 어디로 흘러갈지 모른다.
 
박치문 바둑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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