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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 칼럼니스트의 눈] 데이터 홍수시대에 투명성도, 개방성도 없는 정당 공천

중앙일보 2020.03.10 00:25 종합 20면 지면보기

빅데이터·플랫폼 시대의 정당 공천

인터넷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오성운동’ 지지자들이 지난해 8월 콘테 총리가 연설하는 의회 밖에서 시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인터넷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오성운동’ 지지자들이 지난해 8월 콘테 총리가 연설하는 의회 밖에서 시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코로나바이러스가 덮치기 전까지, 우리는 하루 평균 200~300번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요즘 그 횟수는 급격히 늘어났으리라. 온 세계가 연결된 스마트폰 화면 속에는 코로나19라는 새 위협의 움직임을 시시각각 알려주는 빅데이터가 가득하다. 전세계 신규 확진자·완치자·사망자 수의 추이와 분포에서부터 우리 동네 확진자들의 세밀한 동선까지 시간대별로 담겨 있다. (예컨대, 서울 확진자 A씨. 3월 5일 오전 8시 집에서 광화문 소재 회사로 출근. 0000번 버스 이용. 17시 회사에서 퇴근 0000번 버스 이용. 17시50분 집 앞 00슈퍼마켓에서 20분간 머뭄). 마스크와 손 씻기가 바이러스와 싸우는 개인 무기라면, 손바닥 안의 플랫폼으로 연결된 방대한 빅데이터는 인류의 집단 방역막인 셈이다.
 

빅데이터 흐름 비켜선 정당, 총선 공천은 30년 전과 다르지 않아
선거법 장벽과 국고보조금 독식으로 경쟁자 신규 진입 막아
빅데이터 기반한 정책과 후보선출을 논의하지 않는다면
‘디지털 시민’들이 기성 정당들을 외면하는 날이 닥칠 수도

그런데 상상을 넘어서는 빅데이터를 우리 스스로 만들어내고 이용하는 거대 흐름에서 비켜선 채, 홀로 고색창연하게 존재하는 조직이 있다. 바로 대한민국의 정당들이다. 다음 달 4·15 총선을 앞두고 여야 정당들은 연일 후보 공천 결과를 발표하고 있지만, 공천 방식은 30년 전과 다를 바가 없다.
 
여당과 제1야당 공천관리위가 왜 서울의 어떤 지역구는 전략 공천을 했는지, 광주·부산의 어떤 지역구들은 단수 후보 공천을 했는지를 유권자는 알 수 없다. 정당 홈페이지를 찾아봐도 유권자들은 정보를 구할 수 없다. 이른바 전략공천(이라 쓰고 깜깜이 공천이라 읽어야 하는)을 통해서 4월 15일 투표용지에 이름을 올리게 된 후보들이 어떤 경로를 거쳤는지를 유권자들은 알 수 없다. 프라이버시 침해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확진자들의 동선은 시간·분 단위로 온 국민이 알 수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결국 전략공천이니, 단수후보 공천이니 하는 과정에서 유권자들은 배제돼 버렸다. 아마도 우리는 4월 15일 투표하는 날 하루만 주권자인지도 모른다.
 
세 가지 질문을 생각해보자. ①디지털 격차의 원인: 빅데이터·디지털 플랫폼 시대에 한국 정당들이 여전히 20세기 하향식 동원모델에 안주할 수 있는 배경은 무엇인가? ②유럽의 디지털 플랫폼 정당정치의 양상: 스페인의 포데모스, 이탈리아의 오성운동(Five Star movement)과 같은 유럽의 디지털 정당들은 어떻게 수백만 지지자들의 스마트폰 속으로 들어갔는가? 지지자들은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연결을 통해서 어떻게 정당의 후보 공천을 주도하는가? ③한국정당의 개혁: 한국의 정당들이 20세기적인 동원 방식과 21세기 테크놀로지를 결합한 듯 시늉만 내는 지금의 현실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기성 정당, 그들만의 리그 구축
 
첫 번째 질문.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보여주는 빅데이터의 투명성과 디지털 플랫폼의 개방성이 왜 우리 정당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가?
 
제도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기성 정당들은 자신들만의 리그를 운영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벽을 단단히 구축해놓고 있다. 우선 국민의 세금으로 지급하는 엄청난 국고보조금이 있다. 2019년 여당과 제1야당이 수령한 국고보조금은 270억 원이 넘는다. 또한 주요 정당 후보들은 이번 4월 선거 비용의 상당부분을 국고에서 보전받는다. (유효득표 15%를 넘지 못하는 군소·신생정당 후보들에게는 그런 기회조차 없다.) 게다가 혁신을 시도하는 신규 경쟁자들의 진입을 효과적으로 막는 정당법·정치자금법의 보호막은 철통과도 같다. 이런 정당법·정치자금법하에서는 프랑스의 마크롱 현상과 같은 일이 절대 일어날 수 없다.
 
기술정치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 정당들은 홈페이지·앱 등을 통해 디지털 플랫폼으로 치장은 하고 있지만, 실제 기능은 여전히 하향식 파이프라인에 불과하다. 21세기 플랫폼이란 참여자들 누구에게나 개방돼 있고(개방형 경선제), 이들이 쌍방향으로 소통하면서 빅데이터가 만들어지고 그 기반으로 행동이 이뤄지는 공유 기반이다. 하지만 우리 정당들은 웹 페이지와 앱을 통해 시늉만 낼 뿐, 후보 선출과정은 기존과 같은 전략공천, 하향식 공천, 여론조사 공천이 뒤섞여있을 뿐이다.
  
유럽의 디지털 플랫폼 정당
 
디지털 시민들이 낡은 정당정치를 밀어내고 디지털 플랫폼 정당을 구축하는 실험은 경제와 정치가 지극히 불안정한 남부 유럽에서 시작되었다. 청년 실업의 원성이 하늘을 찌르고 연금생활자들의 자살이 속출하는데도, 기성정치는 그들만의 권력다툼에 몰두하던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 젊은 디지털 시민들이 먼저 나섰다.
 
2009년 反기성정치, 反세계화 운동을 거세게 몰아붙이던 이탈리아의 시민들은 유명 블로거 벳페 그릴로를 중심으로 ‘오성 운동’이라는 개방형 플랫폼 정당을 출범시킨다. 오성운동은 2013년 선거에서 단숨에 860만 표를 얻어 최다 득표 정당으로 떠올랐다. 이어 2018년 선거에서는 227석을 차지하며 원내 제1당으로 부상한다. (이탈리아 코로나 사태에서도 드러나듯이, 짧은 기간의 눈부신 성공과는 대조적으로 오성운동이 안팎으로 혼란에 휩싸여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오성운동이나 포데모스는 하향식 관료제 조직 대신에 지지자·유권자들이 온라인 플랫폼으로 연결된 네트워크 정당이다. 오성운동의 당원·지자자들이 중앙당과 접속하는 온라인 OS의 이름은 직접민주주의의 이론적 지주인 철학자 루소의 이름을 따서 ‘루소(Rousseau)’라고 지었다. 개방형 플랫폼 정당답게 정당 지도부의 선출, 의원 후보 선출에서부터 법안의 제안과 토론, 재정 기부에 이르기까지 모든 주요 결정을 스마트폰 앱과 인터넷으로 연결된 루소를 통해 이뤄진다.
  
디지털 시민들, 아웃사이더로 남을까
 
세번째 질문은 한국 정당들이 어떻게 21세기 따라잡기를 할 것인가다. 표준화된 상품의 대량생산, 대량소비를 핵심으로 하던 20세기는 관료제 대중정당의 시대였다. 반면 21세기를 지배하는 빅데이터와 플랫폼은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 데 이어 정치 양식도 바꾸게 될 것이다. 포드 자동차, 엑손 모빌이 구글과 페이스북으로 순식간에 대체되듯이, 하향식 위계조직은 개방형 플랫폼 정당으로 대체될 수밖에 없다. 한국의 정당들이 디지털 시민들에게 문을 열고, 이들과 함께 빅데이터 기반의 정책, 공직 후보 선출을 논의하지 않는다면, 디지털 시민들이 정당들을 외면하는 날이 불현듯 닥칠 것이다. 인터넷 평균 속도 세계 1위, 스마트폰 보급률 세계 1위에 시민 저항운동의 전통이 면면히 이어져 온 한국사회에서, 디지털 시민들이 언제까지 수동적인 아웃사이더로 남아 있을까? 
 
이탈리아 오성운동의 디지털 플랫폼
이탈리아 오성 운동의 OS인 루소(Rousseau) 화면.

이탈리아 오성 운동의 OS인 루소(Rousseau) 화면.

4차산업 혁명에 명과 암이 있듯이, 디지털 플랫폼 정당 역시 민주주의의 유토피아를 단숨에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선구적인 온라인 플랫폼 정당인 이탈리아 오성 운동의 OS인 루소(Rousseau)도 2017년 여름 당원 명부가 해킹당한 경험도 있다. 또한 개방형 플랫폼을 통한 온라인 정책토론은 대개 열성 당원들 중심으로 치우치는 한계를 드러내고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소 플랫폼의 기본 구조 두 가지는 기성정당들과 혁명적으로 구분된다. 첫째, 지지자들이 온라인으로 정당의 모든 주요 결정에 직접 참여하는 투표 기능이다. 정당 지도부뿐만 아니라 의원 후보들을 지지자들이 온라인 투표로 선출한다. 전략공천이니 단수 공천이니 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두 번째 기능은 정책토론, 입법 제안, 입법 공동발의와 같은 정책 숙의 기능이다. 특히 주목할 것은 법률 제안(Lex Iscritti)이다. 온라인 회원이라면 누구든지, 입법에 필요한 ▶데이터 ▶관련 법률의 현황과 한계 ▶소요 예산 등을 담아서 입법안을 제안하고 의원들과 더불어 법안을 만들어 갈 수 있다. 최근 재출범한 국민의 당의 ‘이슈크라시’가 유사한 기능을 설정해놓고 있긴 하지만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지켜봐야 한다.
 
장훈 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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