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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 또 한배를 탔다

중앙일보 2020.03.10 00:17 종합 28면 지면보기
서승욱 도쿄총국장

서승욱 도쿄총국장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왜 5일 한국과 중국으로부터의 입국 제한을 발표했을까. “1월 말부터 중국 전역을 입국제한 대상에 넣고 싶어했다. 지지기반인 보수파의 주장을 계속 신경 썼다. 4월로 예정됐던 시진핑(習近平) 주석 국빈 방문의 연기 발표(5일 오후 4시) 일정이 잡히자 측근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보수파와 중국 모두를 배려하기 위해 5일로 택일한 것이다. 시 주석 방일 연기 발표 직후에 발표하면 중국도 체면이 선다.”(아사히 신문, 마이니치 신문)
 
“시 주석의 방일이 연기되면서 중국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졌고, ‘한국과는 어차피 관계가 안 좋은 만큼 이런 상황에서 배려할 필요가 없다’는 쪽으로 관저 내 의견이 빠르게 정리됐다.” (일본 소식통)
 
일본에선 이처럼 아베 총리의 조치를 주로 중국과 연계시킨다. 아베 총리가 한국에 대해 깊이 고민한 흔적은 찾기 어렵다.
 
글로벌 아이 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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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반발하자 일본은 “5일까지 인구 1만 명 당 감염자 수는 한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1.12명, 다음으로 중국이 0.58명”(모테기 도시미쓰 외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어디까지나 신종 코로나의 일본 국내 확산을 막기 위한 방역 상의 조치”라고 했다. 중국엔 고도의 정치적 배려를 하면서, 한국엔 통계만 내밀었다.
 
한국은 어김없이 ‘상응 조치’를 발동했다. 귀에 익숙지 않은 ‘멕시코 연방보건부 성명문’까지 인용하며 “여행제한 조치는 질병 통제를 위한 과학적인 대응방안이 아니다. 일본의 조치는 비과학적”이라고 했다. 한국에 대해 입국 제한 조치를 취한 100여 개국 중 맞대응을 한 곳은 일본뿐이다. 외교부는 ‘호주와 싱가포르엔 왜 대응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한·일관계와 한·호주관계가 같을 수가 없다”고 했다. 일본은 입국 제한의 이유로 감염자 수를 내밀었지만 한국은 “일본의 감염 상황이 불투명하다. 검사 수가 적다”고 했다. 국내 방역이 목적이라면 그냥 발표하면 되는데, 굳이 ‘상응 조치’란 표현을 썼다.
 
일본은 감염자가 폭증한 이웃 나라를 배려하지 않았고, 한국 정부는 울고 싶은데 뺨을 두들겨 맞았다는 듯한 태도였다. 이처럼 코로나는 잠시 겨울잠에 들어갔던 양국 갈등을 다시 깨웠다. 추락한 국정 장악력 회복(아베 총리), 총선 승리(문재인 대통령)가 걸려있는 코로나 정국에서 두 정상에게 양보의 여지는 별로 없다.
 
한국이 ‘상응 조치’를 발표한 다음 날 일본 유력지 논설위원에게서 온 문자메시지는 딱 한줄이었다. “일·한관계, 끝장의 시작이네요.” 두 정상이 또 한배를 탄 것 같다.
 
서승욱 도쿄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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