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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30% 폭락 ‘역 오일쇼크’ 글로벌 복합불황 위기

중앙일보 2020.03.10 00:04 종합 3면 지면보기
국제유가가 하루 사이 30% 넘게 폭락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촉발한 ‘역(逆) 오일쇼크’ 상황이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경제 멈칫, 원유 수요 줄어
러시아와 감산 갈등 겪던 사우디
되레 증산…유가 20달러대 전망도
에너지 이어 금융 연쇄 충격 우려

블룸버그에 따르면 8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ICE 선물거래소 개장과 동시에 브렌트유 가격은 배럴당 31.02달러로 추락했다. 하루 전 45.27달러와 비교해 14.25달러(31.5%) 급락했다. 장중 한때이긴 하지만 낙폭으로는 전쟁 국면에 따라 폭등·폭락을 거듭했던 1991년 걸프전 이후 최대다. 코로나19 사태가 확산하기 전인 지난 1월 6일 기록했던 올해 최고 가격(배럴당 68.91달러)과 비교하면 50% 이상 떨어진 셈이다.
 
코로나19와 사우디아라비아가 불러온 역 오일쇼크.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코로나19와 사우디아라비아가 불러온 역 오일쇼크.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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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유(WTI)도 한국시간으로 9일 오후 3시 기준 전 거래일보다 28.51% 하락한 배럴당 29.51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유가 폭락의 배경에는 코로나19가 있다. 바이러스 확산이 경제에 타격을 주면서 원유 수요가 크게 줄었다. 특히 세계 2위 석유제품 소비국인 중국의 수요가 줄어든 영향이 컸다. 이에 지난 6일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 14개국과 러시아 등 10개 주요 산유국의 연합체인 ‘OPEC플러스(OPEC+)’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추가 감산안을 논의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OPEC 회원국은 하루 100만 배럴, 비OPEC 국가는 50만 배럴을 더 줄이자고 주장했지만 러시아는 원유를 감산해 봐야 미국 셰일가스 기업만 이득이라며 반대했다.
 
가뜩이나 불안하게 움직이던 석유시장에 사우디가 이날 결정적 한 방을 날렸다. 국제 석유거래시장이 열리기 직전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는 미국과 아시아로 향하는 원유 공급가를 낮추기로 결정했다. 이와 함께 다음달부터 원유 생산량을 기존 하루평균 970만 배럴에서 1000만 배럴 이상으로 늘린다는 계획을 밝혔다. 사우디의 일평균 생산량이 1000만 배럴을 넘기는 것은 지난해 5월 이후 처음이다. 사우디는 당초 감산을 주장했으나 러시아가 이에 동의하지 않자 ‘몽니’를 부리기 시작한 것이다. 사우디 정부가 러시아를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기 위해 ‘충격과 공포’ 전략을 쓰고 있다고 캐나다 RBC캐피털마케츠 등은 분석했다.
 
러시아가 협상 테이블로 돌아오지 않을 경우 사우디는 공격 수위를 높일 수도 있다. 또 3월까지는 산유국들이 기존에 합의했던 대로 하루 210만 배럴을 줄이지만, 증산한 물량이 4월부터는 시장에 나온다. 가격이 더 떨어질 수도 있다. 미국 골드만삭스는 “OPEC와 러시아의 석유 가격 전쟁이 명백히 시작됐다”며 국제유가가 20달러 선으로 내려갈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코로나19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 간 협력이 중요한데, 산유국들이 이처럼 ‘엇박자’를 내면서 국제사회의 정책 공조를 더욱 어렵게 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미국 셰일오일·가스 업체들과 신흥국을 중심으로 한 원자재 생산국들의 타격이 불가피해진 상황이다. 이들이 피해를 입으면 금융 쪽에 파장을 미치고, 순차적으로 글로벌 경제에 충격을 준다는 점에서 세계적인 복합불황이 시작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몇 년 동안 수십 개 미국 석유회사는 파산했고, 직원들을 내보는 등 사정이 어려운 회사가 많다”며 “이번 사태로 부채비율이 높은 중소 규모 석유회사들의 어려움이 더욱 가중될 것”이라고 짚었다.
 
조현숙·배정원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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