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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최고 30인 리스트에 6명이나…잘 나가는 한국 공예

중앙일보 2020.03.09 13:26
'2020 로에베 크래프트 프라이즈' 응모자 2920명 중 최종 후보자 30인을 선정한 1차 심사위원들. 앞줄 한가운데 동양인이 이번에 심사위원으로 활약한 한국공예 디자인문화진흥원 전 사무처장 조혜영씨다.

'2020 로에베 크래프트 프라이즈' 응모자 2920명 중 최종 후보자 30인을 선정한 1차 심사위원들. 앞줄 한가운데 동양인이 이번에 심사위원으로 활약한 한국공예 디자인문화진흥원 전 사무처장 조혜영씨다.

지난달 27일 ‘2020 로에베 크래프트 프라이즈(LOEWE Craft Prize)’ 최종 후보자 30인이 발표됐다. 올해로 4회째를 맞는 이 행사는 ‘공예’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현대 장인 정신의 독창성과 예술적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해 2016년 로에베 재단에 의해 시작됐으며, 글로벌한 주요 공예 행사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2020 로에베 크래프트 프라이즈' 최종 후보자 30인 발표

 
170여 년의 역사를 가진 로에베는 2013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국의 젊은 디자이너 조나단 앤더슨을 영입하고 새로운 패션 비전을 창출하고 있다. 한국 도자기의 광팬이기도 한 앤더슨은 "브랜드의 전통 계승과 현대 라이프 스타일의 자연스러운 조합을 고민한 끝에 아트, 디자인, 장인 정신이 조화를 이루는 ‘공예’를 키워드로 삼고 ‘크래프트 프라이즈’를 출범시켰다"고 밝힌 바 있다. 
 
만 18세 이상의 전 세계 모든 공예가들이 참여할 수 있으며, 1차 심사를 거쳐 30인의 최종 후보를 선정하고, 2차 심사에서 선정된 마지막 우승자 한 명에겐 상금 5만 유로(약 6700만원)를 수여한다. 올해는 총 107개 국에서 2920여 명의 작가가 응모했는데 30인의 최종 후보 리스트에 강석근, 김계옥, 김혜정, 박성열, 이지용, 조성호 등 한국 작가가 6명이나 포함됐다.  
 
영국의 빅토리아 앨버트 뮤지엄 컬렉션 디렉터를 포함해 유리·장신구·세라믹 등 다양한 공예 전문가 10명이 참석하는 1차 심사에 심사위원으로 참가했던 한국공예 디자인문화진흥원 전 사무처장 조혜영씨는 “올해는 전체적으로 공예 기법과 소재 등에 집중해서 심사가 이루어졌다”고 전했다. 그는 또한 “한국 디자이너가 6명이나 최종 후보 리스트에 올랐다는 건 그만큼 한국 공예 작가들의 뿌리가 튼튼하고 독창적인 수준에 올랐다는 증거”라며 “이는 재료가 가진 물성에 충실하면서도 자신만의 기법을 갖고 있으며, 전통 공예를 현대인의 일상으로 밀착시키는 끊임없는 노력 또한 꾸준히 해왔음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2020 로에베 크래프트 프라이즈’ 최종 후보 30인에 오른 한국 작가 6명의 작품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2020 로에베 크래프트 프라이즈, 강석근 작가의 작품

2020 로에베 크래프트 프라이즈, 강석근 작가의 작품

강석근 작가의 ‘당신을 위하여’는 옻칠 공예 작품이다. 나이테의 무늬와 결이 아름다운 느티나무로 3mm 두께의 그릇 형태를 만들고 7번 이상 옻칠을 했다. 특히 금속이나 도자기에 사용하는 ‘열경화 기법’을 사용했다. 나무에 적용하면 타거나 갈라지기 때문에 쉽지 않은 공정이지만 일단 성공하면 전자레인지에 사용해도 될 만큼 내구성과 방수력이 좋아지며 옻 냄새도 사라진다. 3mm 두께도 강 작가가 여러 번의 실험을 거쳐 나이테가 가장 아름답게 표현되면서도 실용성까지 갖춘 두께를 찾아낸 것이다. 박 작가는 “실용성과 작가의 예술적 감성이 잘 조화를 이룬 것이 진정한 공예품”이라며 “화려함 보다는 동양적인 단정하고 우하한 조형성과 기법을 살렸다”고 설명했다.
 
2020 로에베 크래프트 프라이즈, 김계옥 작가의 작품

2020 로에베 크래프트 프라이즈, 김계옥 작가의 작품

김계옥 작가의 ‘제2의 표피’는 0.2cm 굵기의 구리선을 코바늘 뜨개질로 엮어 패턴을 만들고, 이를 패치워크 방식으로 이어 붙인 3400×2000cm 규모의 공간 설치물이다. 언뜻 보면 커다란 레이스 천을 공중에 띄워 놓은 듯 보인다. 10년 넘게 ‘두 번째 피부’이라는 주제로 동일한 과정의 작업을 해온 김 작가는 “인체 피부의 표면을 재해석한 질감의 패턴들을 이어서 공간에 연결하는 반복 행위들을 통해 오래된 기억이 겹쳐지는 시간의 힘을 표현헸다”고 했다.  
 
2020 로에베 크래프트 프라이즈, 김혜정 교수의 작품

2020 로에베 크래프트 프라이즈, 김혜정 교수의 작품

이화여대 조형예술학과 김혜정 교수(도예전공)의 ‘심피: 하늘과 땅의 문제(물건)’은 물레 성형 후 손으로 흙을 집어 변형한 도자 작품이다. 김 교수가 시리즈로 제작 중인 ‘심피(心皮)’는 종자식물이 생명을 재생하는 부분으로 ‘여성성·모성’과 함께 마음의 껍질, 흔적, 기억 등을 상징한다. 그는 “물레 작업을 하면서 흙으로 만든 ‘그릇’과 ‘심피’에는 공통점이 많다는 걸 깨달았다”며 “안에 있는 것을 감싸 보호하며, 안과 밖을 나누는 경계이자 소통의 기능을 한다. 또한 종종 내용물에 관한 기억의 매개체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이번 출품 작품은 ‘천지인(天地人)’을 주제로 현대인과 지구환경문제 등을 함축하고 있다. 매끈한 유약의 세라믹과는 달리 거칠게 표현된 옥빛의 도자기는 인간의 역사와 문화를 더 근원적으로 거슬러 올라간 청동기 시대의 색조와 질감을 표현한 것이다.   
 
2020 로에베 크래프트 프라이즈, 박성열 작가의 작품

2020 로에베 크래프트 프라이즈, 박성열 작가의 작품

박성열 작가의 ‘본연’은 옻칠 자체의 물성과 재료로서의 가치를 부각한 작품이다. 점성이 있는 옻나무 원액을 길게 늘여서 여러 갈래의 조각으로 굳히는 새로운 기법으로 작업했다. 박 작가는 “옻칠은 그 자체로 장점이 많은 기법인데, 늘 나무·금속의 마감재로만 인식돼 온 것이 아쉬워 옻칠 본연의 가치와 장점을 살리고 싶어 방법을 고안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원료를 섞어 알록달록한 색을 만든 것 또한 노하우가 많이 필요한 작업이다.
 
2020 로에베 크래프트 프라이즈, 이지용 교수의 작품

2020 로에베 크래프트 프라이즈, 이지용 교수의 작품

미국 서던 일리노이 대학(Southern Illinois University)에서 활동 중인 이지용 교수의 ‘체세포 분열’은 현미경을 통해 볼 수 있는 세포분열을 비롯해 배아, 씨앗, 그리고 다양한 미생물 등의 형태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작품이다. 동명의 시리즈를 지속하고 있는 이 교수는 “이번에는 하나의 세포가 처음 둘로 갈라지는 과정을 표현했다”며 “수작업으로 유리 표면을 반투명하게 만들어 과학적으로는 완벽히 알 수없는 생명의 신비함을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유리는 인류가 오랫 동안 사용해온 소재로 반투명과 투명, 두 개의 성질이 빛과 밀접하게 어우러지는 것이 큰 매력 중 하나”라고 말했다.  
 
2020 로에베 크래프트 프라이즈, 조성호 작가의 작품

2020 로에베 크래프트 프라이즈, 조성호 작가의 작품

조성호 작가의 ‘흔적의 전의’는 0.7mm의 얇은 은을 주조한 것으로 표면의 독특한 무늬와 질감이 아름다운 작품이다. 조 작가는 “주로 한 몸으로 주조하는 주물그릇의 통념을 깨고 판형의 소프트 왁스를 롤러에 밀어 일정한 두께를 만든 다음, 롤 프린팅 또는 인두기를 사용한 드로잉 기법으로 원하는 무늬와 질감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이는 주물기는 무겁고 둔탁하다는 인식을 깨고 얇고 가벼운 그릇을 만들어낸 전혀 새로운 방식이다. 심사위원들은 “새롭게 고안된 주조법과 함께 단순한 패턴의 반복들이 빗살무늬 토기 같은 특징들을 갖고 있다”며 “꾸밈없는 섬세한 디테일이 인간 본연의 원시적인 장식성을 보여준다”고 평했다.  
 
최종 우승자 발표는 파리 장식 미술 박물관에서 30인의 작품 전시회가 시작되는 5월 19일 발표될 예정이다.        
 
글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사진 로에베 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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