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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110년 전 ‘세계 여성의 날’을 만든 까닭은?

중앙일보 2020.03.08 06:00
3월 8일은 110번째 ‘세계 여성의 날(International Women’s Day)’이다. 여성의 권리를 생각하는 국제 기념일이다. 세계 각국에서 연례적으로 여성의 사회적 권리 향상을 요구하는 행사와 거리 행진이 벌어진다. 일부 국가에선 미리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옛 소련을 승계한 러시아를 비롯한 일부 국가에서는 여성에게 장미를 선물하는 전통이 있다.  

미·독·소 영향으로 3월8일 제정
유엔은 1977년 기념일로 권고
여성 참정권·평등·권리향상 요구
아직도 분쟁지역 여성 인권유린
탈레반·IS, 여성학대로 악명 높아
아프간 평화합의로 탈레반 복귀
국제사회 방관 속 유엔 우려 표명
ICRC, 분쟁지역 여성 역할 주목
피해자 넘어 적극적인 해결자로

세계 여성의 날을 앞둔 지난 6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한 여성이 노란 튤립 꽃다발을 들고 거리를 걸어가고 있다. 옛 소련 시절의 영향으로 러시아에선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여성에게 꽃다발을 선물하는 풍습이 있다. 원래 장미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타스=연합뉴스]

세계 여성의 날을 앞둔 지난 6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한 여성이 노란 튤립 꽃다발을 들고 거리를 걸어가고 있다. 옛 소련 시절의 영향으로 러시아에선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여성에게 꽃다발을 선물하는 풍습이 있다. 원래 장미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타스=연합뉴스]

 

산재로 희생된 미국 여성노동자 추모로 시작

세계 여성의 날이 생긴 것은 1908년 미국에서 작업장 화재로 숨진 여성 노동자를 추모하기 위해 미국사회당이 이듬해 2월 28일 개최한 ‘전국 여성의 날’ 시위가 계기다. 1910년 8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개최된 ‘국제 사회주의 여성노동자 회의’에서 독일의 마르크스 이론가이자 노동운동가인 클라라 제트킨과 캐테 둔커가 매년 여성의 날 행사를 열자고 제안했다. 이를 계기로 1911년 3월 19일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덴마크·스위스 등에서 수많은 여성이 모여 시위를 참정권과 공직참여권, 그리고 남녀평등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첫 세계 여성의 날 행사다. 3월 19일은 1848년 프로이센 국왕이 여성 참정권 보장을 처음으로 약속(나중에 철회했다)한 날이어서 이날을 행사일로 정했다.  
세계 여성의 날을 앞둔 6일 브라질의수도 브라질리아에서 열린 기념 행사에서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장미 꽃다발을 들어보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세계 여성의 날을 앞둔 6일 브라질의수도 브라질리아에서 열린 기념 행사에서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장미 꽃다발을 들어보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3월 8일 여성노동자 시위로 러시아혁명 촉발

세계여성의 날이 3월 8일로 바뀐 것은 러시아혁명과 관련이 있다. 1917년 3월 8일(당시 러시아 달력으론 2월23일) 당시 수도였던 페트로그라드(현재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최대 공장인 푸틸로프 플랜트의 여성 노동자들이 ‘빵과 평화’를 요구하며 파업을 시작한 것이 계기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식량 부족에 시달리던 러시아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가장 먼저 봉기한 셈이다. 이 파업은 러시아 차르 체제를 무너뜨린 2월혁명의 도화선이 됐고, 이는 그해 11월 볼셰비키가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하는 10월혁명으로 이어졌다. 볼셰비키가 권력을 장악하자 여성 볼세비키 알렉산드라 콜론타이가 혁명 지도자 블라디미르 레닌과 함께 이듬해부터 3월 8일을 여성의 날로 삼았으며, 소련은 1865년 이날을 공휴일로 지정했다. 냉전 시기 대부분의 사회주의 국가가 이날을 여성의 날로 삼았으며 북한에서도 국제부녀절이라는 이름의 기념일로 쇤다.  
호주의 시드니에서 7일 열린 세계 여성의 날 행사에서 소녀들이 '소녀들이 통치한다' '여성을 과소평가하지 말라'는 문구가 적힌 종이를 들고 있다. [EPA=연합뉴스]

호주의 시드니에서 7일 열린 세계 여성의 날 행사에서 소녀들이 '소녀들이 통치한다' '여성을 과소평가하지 말라'는 문구가 적힌 종이를 들고 있다. [EPA=연합뉴스]

 

유엔 1977년부터 기념일로…매년 모토 정해

유엔은 1975년을 ‘세계 여성의 해’로 지정하고 그해 3월 8일을 ‘세계 여성의 날’로 기념했다. 1977년 12월 유엔총회에선 각국이 자국의 역사와 전통에 따라 1년 중 하루를 ‘여성의 권리와 세계 평화를 위한 유엔의 날’로 준수하도록 결의했다.  
중요한 것은 유엔이 매년 여성의 날에 맞춰 특별한 모토를 정한다는 사실이다. 올해는 ‘나는 평등 세대다: 여성권리 실현하기(I am Generation Equality: Realizing Women’s Rights)‘가 모토다. 지난해에는 ’평등을 생각하고, 현명해지며, 변화를 위해 혁신하라(Think Equal, Build Smart, Innovate for Change)‘였다.  
 
유엔 본뷰에서 6일 세계 여성의 날 기념 행사가 열리고 있다. 참석자들은 평등 세대로 가기 위한 여성들의 권리 신장을 강조했다. [신화=연합뉴스]

유엔 본뷰에서 6일 세계 여성의 날 기념 행사가 열리고 있다. 참석자들은 평등 세대로 가기 위한 여성들의 권리 신장을 강조했다. [신화=연합뉴스]

현실 반영…여성과 폭력·분쟁 관련 모토 많아  

유엔의 모토는 동등 권리나 기회 제공에 관한 것도 많지만 여성과 폭력·분쟁과 관련한 것도 적지 않다. 1997년 ‘여성과 평화 협상(Women and the Peace Table)’, 1999년 ‘여성에 대한 폭력 없는 세계(World Free of Violence Against Women)’, 2000년 ‘평화를 위해 단결하는 여성(Women Uniting for Peace)’, 2001년 ‘여성과 평화: 여성이 분쟁을 관리한다(Women and Peace: Women Managing Conflicts)’ 등이 그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여성을 상대로 하는 폭력이 여전하고, 분쟁 지역에서 여성의 주된 희생자가 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특이한 모토 중 하나는 2002년에 정한 ‘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 여성: 현실과 기회(Afghan Women Today: Realities and Opportunities)’였다. 특정 국가가 세계 여성의 날 모토에서 언급된 유일한 사례다.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의 남부 카라치에서 7일 세계 여성의 날을 앞두고 기념 행사를 열고 있다. '강한 엿겅, 강한 나라'라는 문구가 눈에 띤다. [AP=연합뉴스]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의 남부 카라치에서 7일 세계 여성의 날을 앞두고 기념 행사를 열고 있다. '강한 엿겅, 강한 나라'라는 문구가 눈에 띤다. [AP=연합뉴스]

 

탈레반 붕괴하자 아프가니스탄 여성 격려 모토

이 모토가 나온 2002년은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 정권이 무너진 다음 해다. 1994년 조직된 이슬람주의 정치·무장 단체인 탈레반은 1996년 아프가니스탄의 4분의 3을 실효 지배했으며 수도 카불에서 ‘아프가니스탄 에미리트(이슬람 군주국)’라는 이름의 국가를 운영했다. 집권 기간 탈레반은 폭정·여성학대·반인권·극단주의, 그리고 소수민족과 소수종파(시아파) 탄압으로 악명이 높았다.  
정권을 잡은 탈레반은 반대파를 숙청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서방 문화를 전파한다며 방송국을 비롯한 언론을 폐쇄하고 음악을 비롯한 문화 활동을 금지했다. 이슬람을 제외한 다른 종교를 금지한 것은 물론 이슬람의 다른 종파(시아파)도 탄압했다. 2001년 3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바미얀 석불을 이교도의 유적이라고 폭탄으로 파괴한 반달리즘 사건은 전 세계에 충격을 줬다.  
2월 29일 카타르수도 도하에서 미국을 대표하는 잘마이 칼릴자드 미국 아프가니스탄 특사(왼족)이 탈레반 공동창설자인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와 아프가니스탄 평화 합의문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2월 29일 카타르수도 도하에서 미국을 대표하는 잘마이 칼릴자드 미국 아프가니스탄 특사(왼족)이 탈레반 공동창설자인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와 아프가니스탄 평화 합의문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국제사회를 가장 경악시킨 것은 탈레반의 여성에 대한 무지막지한 억압이었다. 탈레반은 여성의 사회활동을 전면 금지했으며 여학생에 대한 학교 교육도 막았다. 심지어 여성이 혼자서, 또는 여성들끼리 외출하는 것도 금지했다. 여성들이 외출할 때는 반드시 남편이나 집안 남성을 함께 대동하도록 했으며, 온몸과 얼굴까지 가리는 부르카라는 전통의상을 입도록 강요했다. 간통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여성은 공개적으로 투석형으로 처형하기도 했다. 여성의 코를 베거나 염산을 얼굴에 뿌리는 학대 행위도 발견됐다.  
탈레반의 여성에 대한 이런 잔학행위는 2001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정당화시켜주는 명문의 하나가 됐다. 2002년 유엔의 세계 여성의 날 모토는 그런 탈레반 정권이 무너지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새로운 질서가 구축되면서 여성의 권리에 대한 새로운 기회가 생겼음을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얼굴을 포함한 온몸을 가린 부르카를 입은 아프간 여인들. [중앙포토]

얼굴을 포함한 온몸을 가린 부르카를 입은 아프간 여인들. [중앙포토]

 

아프가니스탄 평화합의, 탈레반 복귀 길 터  

그런데 미국과 탈레반은 지난 2월 29일(현지시간) 페르시아 만(아라비아 만) 지역의 이슬람 군주국가인 카타르의 수도 도하에서 만나 평화합의서에 서명했다. 미국을 대표하는 잘마이 칼릴자드 미국 아프가니스탄 특사와 탈레반 공동창설자인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가 이날 만나 합의서에 서명했다. 미국은 직접 전비만 약 7600억 달러(약 920조원)를 투입하고 180개월간 전쟁을 벌이면서도 탈레반을 제압하지 못한 아프가니스탄에서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정치 복귀를 준비 중이다.  
평화 합의에는 탈레반이 알카에다 같은 테터 조직과 멀리한다는 조항만 있을 뿐 탈레반의 여성학대·반인권·극단주의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이 없다. 미국이 이런 반인륜적인 문제를 그대로 내버려주고 아프가니스탄에서 떠난다면 가치전쟁에서 실질적인 패배한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탈레반 통치 시절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거리에서 종교 경찰에 여성듫을 매질하는 모습. [위키피디아]

탈레반 통치 시절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거리에서 종교 경찰에 여성듫을 매질하는 모습. [위키피디아]

유엔은 평화 합의가 이뤄진 날 성명을 내고 합의를 환영하면서도 아프가니스탄이 주도하는 여성·소수민족·젊은층을 아우르는 평화적 절차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누가 봐도 탈레반의 과거 만행을 지적하는 내용이다. 평화는 환영하지만 여성과 소수민족 등에 반인륜적인 탄압을 가했던 탈레반의 복귀에는 우려를 표시한 것이다.  
 

IS, 여성 인신매매하고 노예화  

탈레반뿐 아니라 지금은 거의 무너진 이슬람국가(IS)도 여성차별과 학대에선 탈레반과 별만 다를 바가 없었다. IS는 인터넷을 통해 서방에 거주하는 여성들을 모집했으며 여기에 넘어가  시리아 등으로 들어온 여성들을 ‘이슬람 전사의 좋은 아내’가 되라며 무장대원들과 강제 결혼시켰다.  
2014년에는 이라크 북부에 사는 소수민족인 야지디족 거주 지역을 점령한 뒤 여성을 납치해 강간하거나 ‘전리품’의 하나로 대원들에게 분배했다. 말을 듣지 않는 여성은 살해하기도 했다. IS는 2014년 10월 15일 노예제 부활을 선언하고 여성에 대한 인신매매와 노예화를 공인했다. 여성 살해, 성폭력, 인신매매는 IS의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I남수단의 난민촌에서 모성보호 활동을 펼치는 ICRC 소속 의사와 의료요원들이 어린이를 치료하고 있다. [사진 ICRC].

I남수단의 난민촌에서 모성보호 활동을 펼치는 ICRC 소속 의사와 의료요원들이 어린이를 치료하고 있다. [사진 ICRC].

 

국제인도주의 ICRC, ‘여성과 전쟁’ 프로그램  

그럼 분쟁 지역 여성을 위해 국제사회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을까. 국제인도주의조직인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서울사무소의 박지해 공보관은 “ICRC는 분쟁 지역 여성의 역할을 지원하는 ‘여성과 전쟁’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ICRC는 ‘피해자로서의 여성’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분쟁지역 여성이 전투원, 인도주의 활동가, 어머니, 딸, 노동자, 지역사회 지도자, 그리고 생존자로서 여러 가지 복잡하고 때로는 상충하는 역할을 능동적으로 하는 데 주목해왔다. ICRC 홈페이지를 바탕으로 분쟁지역에 사는 이러한 여성들의 상황과 활동을 소개한다.  
남미국가 페루의 남부에 위치한 아야쿠초의 모루추코스 마을에 사는 54세의 디오니시아 칼데론은 분쟁 중 성학대를 당한 여성들의 대표를 맡고 있다. 페루는 1980년부터 페루 공산당 무장조직인 인민유격대가 정부군을 상대로 무장투쟁을 벌인 ‘페루 분쟁’으로 7만 명 이상의 희생자를 냈다. 분쟁 와중에 디오니시아의 첫 남편은 행방불명됐으며, 두 번째 남편은 분쟁 중 당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숨졌다. 디오니시아는 이처럼 분쟁의 희생자였지만, 지금은 성 학대 피해자를 위해 목소리를 내면서 정의와 진실을 위한 투쟁자로 일하고 있다.  
 
내전 중인 예멘의 포로수용소에서 여성 수용자가 아이를 안고 재봉 일을 배우고 있다.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의 분쟁 지역 여성 지원 프로그램의 하나다. [사진 ICRC]

내전 중인 예멘의 포로수용소에서 여성 수용자가 아이를 안고 재봉 일을 배우고 있다.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의 분쟁 지역 여성 지원 프로그램의 하나다. [사진 ICRC]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해결자로서 여성 

중동국가 이라크의 북부 쿠르드족 지역인 에르빌에 있는 ‘서부 에르빌 응급병원’에서 근무하는 호잔 반디 신디는 25살의 의사다. 이 병원은 ICRC가 지원하는 분쟁지역 외상전문 의료기관의 하나다. 그녀는 대부분의 삶을 분쟁 속에서 지냈다. 2003년 미국의 침공 이후 이라크는 전쟁 아니면 내전, 또는 극단주의 세력의 공격으로 바람 잘 날이 없었기 때문이다. 신디는 분쟁으로 응급실에 실려와 생사의 갈림길에서 고통 받는 수많은 여성 외상환자들을 보며 여성으로 분쟁 지역에서 살아가는 문제를 고민해왔다. 당장은 병원에 근무하면서 의사로서 할 일에 몰두하지만, 조만간 다음 세대에 이런 비극을 대물림하지 않도록 하는 활동을 구상 중이다. 분쟁의 수동적인 피해자가 아닌,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해결자를 꿈꾼다.
서아프리카 나이지리아의 마이두구리 난민촌에 사는 17세의 파티마는 극단주의자들의 공격으로 남자들이 모두 도망친 마을에서 공포에 떨다 혼자 피신했다. 숨어있던 숲에서 헤어진 어머니와는 18개월 동안 만나지 못했다. 파티마는 다행히 ICRC가 난민들을 대상으로 벌이고 있는 이산가족 찾기 프로그램을 통해 어머니와 재회할 수 있었다. 분쟁의 생존자인 파티마는 고향으로 돌아가 분쟁 없는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기를 꿈꾸며 난민촌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다.
이들은 분쟁 피해자를 넘어 세상을 새롭게 만들어 나가는 활동가로 거듭나고 있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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