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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생물을 알면 사람 몸이 보인다

중앙선데이 2020.03.07 00:20 676호 21면 지면보기
선택된 자연

선택된 자연

선택된 자연
김우재 지음

신기한 모델생물 이야기

김영사
 
바야흐로 생물학의 전성시대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생물학의 의학적 적용이 중요해지면서 생명과학 혹은 의생명과학의 붐이 일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전통적인 생물학의 영역은 오히려 위축되지나 않을까 우려하는 생물학자도 있다.
 
『선택된 자연』은 생물학의 다양한 분야에서 선택된 ‘모델생물’의 세계를 전공자는 물론 일반 독자도 알기 쉽게 소개한다. 행동유전학을 연구한 저자 김우재 박사의 정통과학자로서의 통찰과 혜안을 따라 눈길을 옮기다 보면 어느새 생물학의 깊은 보물창고에 다다르게 된다.
 
모델생물은 생물학자들이 자연을 탐구하는 플랫폼이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모든 종을 연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연구 주제에 맞게 특정 생물을 잘 골라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생물학의 가장 위대하고 유명한 모델생물은 단연 초파리다. 저자는『플라이룸』(2018, 김영사)에서 이미 초파리에 관한 이야기를 펴낸 바 있어 『선택된 자연』에선 초파리를 제외한 다른 모델생물들을 다뤘다.
 
박테리오파지는 원핵생물인 박테리아에 기생한다. 박테리아에 감염해서 자가복제를 수행하는 이 작은 생물은 ‘파지 그룹’이라는 학파를 탄생시켰다. 박테리아파지는 분자생물학의 여명기를 이끌었으며 초파리 행동유전학의 단초가 되기도 했다.
 
모델생물의 하나인 효모. 유전학 연구에 톡톡히 기여해 왔다. [사진 김영사]

모델생물의 하나인 효모. 유전학 연구에 톡톡히 기여해 왔다. [사진 김영사]

역시 원핵생물이지만 인간의 세포와 비슷한 방식으로 유전자를 복제하는 대장균은 20세기 중반 생명현상의 원인을 밝혀내는 모델로 이용됐다. 페니실린으로 쉽게 정복된 대장균은 한때 잊혔지만 지금은 인간유전체계획으로 시스템생물학과 생물정보학이 생겨나면서 다시 전성기를 맞고 있다.
 
편형동물인 플라나리아는 처음엔 유전현상을 연구하기 위해 사용되었다가 나중엔 재생 연구의 모델생물이 됐다. 광합성 연구를 위해 처음 선택된 생물은 클라미도모나스였다. 연체동물 군소는 신경생물학 연구를 위해 선택됐다. 비둘기는 가슴 부위의 근육조직에서 일어나는 산소 대사 과정 연구를 위해서, 개는 생리학적 연구 중에서도 간의 생합성 과정 연구를 위해서 광범위하게 쓰였다.
 
생쥐는 면역학과 종양학, 집쥐는 영양학, 신경학, 행동심리학의 모델생물로 각광받았다. 신경에서 일어나는 전기적 작용에 대한 연구에 많이 쓰였던 개구리는 오늘날엔 발생학 연구에 큰 공헌을 했다. 냉이와 닮은 배추과 식물인 애기장대는 가장 먼저 유전체 해독이 이뤄진 식물로 식물학계의 초파리로 불린다. 고양이는 신경생물학자와 실험심리학자에게 중요한 실험도구였다. 복제양 돌리의 탄생은 윤리적 논쟁으로 번졌다.
 
생물학이 점점 의학의 하위 분야로 이행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현재 모델생물의 가장 중요한 선택 기준은 ‘인간과의 유사성’이 되고 있다. 생명체의 본질적인 신비를 찾아서 떠나는 호기심의 여행은 뒷방으로 밀려날 위기다. 하지만 한편으론 크리스퍼(유전자가위)와 함께 시작되는 유전체편집의 시대를 맞아 모델생물의 한계는 사라지고 다양성은 더욱 풍부해질 수도 있다. 이 책에는 ‘돈이 되지 않는 생물학’을 연구하는 기초과학자들이 자연선택에서 멸종하지 않기를 바라는 저자의 간절한 바람이 곳곳에 묻어 있다.
 
한경환 기자 han.ky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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