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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 없는 원숭이들, 아직 멀었어” 전염병은 자연의 경고

중앙선데이 2020.03.07 00:02 676호 24면 지면보기

‘미래 Big Questions’ 〈11〉 팬데믹

아놀드 뵈클린, ‘페스트’(1898). [바젤 미술관]

아놀드 뵈클린, ‘페스트’(1898). [바젤 미술관]

‘당시 인류가 전염병으로 전멸할 수도 있었다.’ (프로코피우스, 6세기 동로마 역사학자)
 

매일 5000명 죽은 6세기 때 팬데믹
동로마 수도 시민들 “왜” 물었지만
교회선 유대인 탓 ‘신의 벌’ 주장

버튼 하나로 모든 걸 제어는 착각
과학·기술·이성 힘으로 이겨내야

‘감염병이 도착하자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이 죽기 시작했다. 관도, 무덤도 부족해 10명 또는 더 많은 시체를 한곳에 묻어야 했다. 일요일엔 성 바오로 성당 앞에서만 300구의 시체를 볼 수 있었다.’(성 그레고리우스, 6세기 프랑스 투르(Tours) 주교)
 
‘유스티니아누스의 전염병’이라 불리는 6세기 팬데믹. 인류 첫 팬데믹은 아니었겠지만, 잘 기록된 첫 전염병 중 하나였다. 쥐와 벼룩을 숙주로 삼는 박테리아는 벼룩을 통해 사람에게 전달되고, 감염자는 며칠 만에 사망했다. 중앙아시아 또는 중국에서 시작해 실크로드를 건너 중동과 이집트로 번졌고, 곡식을 이집트에서 수입하던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엔 541년 도착했다. 항생제도, 소독약도 없던 시대의 팬데믹. 결과는 처참하고 절망적이었다. 매일 5000명 이상이 죽어 결국 콘스탄티노폴리스 주민 40%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시체를 묻을 수 있는 건강한 사람보다 묻혀야 하는 이들이 더 많아지자, 죽은 사람들은 길거리에 방치되기 시작한다. ‘세상의 주인’이었던 로마제국의 후손이라는 자부심으로 가득했던 동로마인은 이제 개와 새들의 먹잇감이 됐다.   
 
코로나 번지자 한국인 ‘제2 유대인’ 신세
 
피터 브뤼겔, ‘장님을 이끄는 장님’(1568). [나폴리 카포디몬테 박물관]

피터 브뤼겔, ‘장님을 이끄는 장님’(1568). [나폴리 카포디몬테 박물관]

동로마 정교회는 화장을 금지하기에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명령한다. 오늘날 갈라타라 불리는 금각만(Goldn Horn) 건너편 지역을 둘러싼 성곽을 허물어 시체로 채우라는 것이었다. 썩고 부패한 역겨운 냄새로 가득한, 아놀드 뵈클린의 그림처럼 지상의 지옥으로 변한 도시에서 먹을거리를 찾아 헤매던 콘스탄티노폴리스 시민들은 질문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도대체 왜, 무슨 이유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걸까?
 
인간은 언제나 원인과 이유를 묻는다. 생각과 행동을 좌우하는 뇌가 처음부터 원인과 인과관계를 이해하도록 만들어졌으니 말이다. 창을 던지면 먹잇감에 맞고, 큰 소리와 불로 위협하면 맹수들이 도망간다. 썩은 냄새 나는 음식을 먹으면 배가 아프고, 벌레에 물리면 가려워 잠을 잘 수 없다. 과거 경험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게 해주는 ‘원인’이라는 막강한 도구.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하나 생긴다. 원인은 처음부터 직접 보고, 만지고 확인할 수 있는 현상들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뇌는 원인이라는 확신이 주는 심적 안심과 존재적 위로를 포기할 수 없었던 걸까? 도시와 문명과 인터넷을 만든 우리는 여전히 원인과 인과관계에 집착하고 있으니 말이다.
 
콘스탄티노스폴리스에서 벌어진 대재앙. 누군가의 잘못 때문 아닐까? 프로코피우스는 황제 유스티니아누스의 악마 같은 본성 때문이라 믿었고, 교회는 죄 많은 인류에게 내린 신의 벌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유대인들이 가장 수상했다. 구원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이들 아니었던가? 교부이자 수사학의 대가였던 성 크리소스토모 역시 설교하지 않았던가? 인류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유대인들이 사라져야 한다고! 그렇다, 너무나도 복잡해진 세상에서 여전히 단순한 원인을 기대하는 인간에게 재앙은 언제나 누군가의 ‘죄’에 대한 ‘벌’이며, 죄를 씻어내고 뿌리 뽑아야만 세상은 다시 안전하고 행복해질 수 있어 보였다. 중세기 흑사병 역시 유대인들의 죄 때문이라는 주장 아래 대학살이 있었다.
 
로마제국의 멸망은 이단 종교들 때문이고, 사산제국의 패배는 ‘불멸의 불’이 꺼져버려서란다. 터키의 불행은 쿠르드족 때문이고, 프랑스의 행복은 독일과 영국이 막는다. 서로서로 의심하고 증오하게 하는 원인에 대한 인류의 집착. 예측불가능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생기면 자동으로 빠지게 되는 인간의 하드웨어적 착시현상 중 하나다. 특히 모두를 두려움과 패닉에 빠지게 하는 팬데믹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중국에서 처음 시작되었으니 모두 중국인을 증오했고, 한국으로 퍼지니 갑자기 한국인은 전 세계에서 새로운 ‘유대인’이 됐다. 어제까지 한국인을 차별하던 이탈리아인은 이제 영국에서 왕따가 되었고, 영국에 바이러스가 도착하는 순간 그들은 또 다른 이들의 혐오와 증오의 대상이 될 것이다. 중세기 흑사병을 표현한 미카엘 볼케무트의 ‘죽음의 무도’는 동시에 자신의 불행과 두려움을 언제나 타인에게 아웃소싱하려는 우리 인간들의 ‘비겁의 무도’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경험하는 많은 불행과 행복은 사실 아무 이유 없이 일어난다. 우리에게 방탄소년단 공연장 최고의 좌석을 얻는 행운을 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하필 내가 탄 비행기가 추락하는 불행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인생 대부분은 우연과 확률의 꼬리물기다. 필연과 운명은 현실이 아닌 예술과 종교의 영역일 뿐이라는 말이다.
 
자연이 만들어 놓은 무지의 함정에 빠져 허우적대는 인간. 어떻게 탈출할 수 있을까? 정치와 애국심과 종교만을 통해서는 어려울 것이다. 팩트와 논리가 기본이 아닌 답은 결국 “장님을 이끄는 장님” 같은 역할을 할 뿐일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는 팬데믹의 미래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우선 바이러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아닌, 바이러스는 생명체의 영원한 동반자였다는 현실적 인정으로 시작해야 한다. 독일 주간지 ‘디 자이트’는 최근 “인류에게 질병과 전염병은 본질적 팩트이자 거울이다”라고까지 주장한 바 있다. 스스로 존재할 수 없는, 기본 생명체의 기능을 갖지 않은 바이러스의 진화적 기원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초기 생명체에서 우연히 독립된 유전자 정보라는 가설도 있고, 반대로 자유롭게 움직이던 유전자 정보들이 한곳에 갇히며 생명체로 진화했다는 주장도 있다.  
  
정치·애국심·종교만으론 팬데믹 못 이겨
 
미카엘 볼게무트, ‘죽음의 무도’(1493). [뉘른베르크 연대기 삽화]

미카엘 볼게무트, ‘죽음의 무도’(1493). [뉘른베르크 연대기 삽화]

바이러스는 숙주 생명체의 유전자 정보를 “해킹”할 수 있기에 생체 면역 조직은 외부에서 침입한 바이러스와 끝없는 전쟁을 벌여야 한다. 특히 타 종으로부터 전파되었기에 아직 면역성을 가지지 못한 동물성(zoonotic) 바이러스는 위험하다. 코로나바이러스(Sars-Cov-2) 역시 박쥐로부터 다른 숙주를 거쳐 인간에게 전파된 동물성 바이러스다. 치사율은 1% 미만이지만 사회,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이미 100%인 듯하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버튼 하나만 눌러 지구 반대편 친구의 얼굴을 볼 수 있고, 버튼 하나로 음식과 드라마 주문이 가능한 세상에 적응한 우리. 세상에 대한 모든 정보를 언제든지 알 수 있고, 세상 모든 일을 제어할 수 있다는 망각에 빠진 21세기 인류에게 자연은 말하려는 듯하다. 너희들은 아직 멀었다고. 나무 아래로 기어서 내려온 지 얼마 되지 않은 ‘털 없는 원숭이’인 인간은 여전히 자연의 뜻을 따라야 한다고.
 
감염병과 바이러스는 인류의 영원한 동반자였다. 이미 수많은 팬데믹을 극복한 우리는 이번 팬데믹도 극복할 것이다. 하지만 이데올로기와 기도를 통해서는 아니다. 인류가 극복한 수많은 다른 문제와도 같이 결국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 인류를 현실의 불행에서 해방해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과학과 기술, 논리와 이성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자 daeshik@kaist.ac.kr
독일 막스-플랑크 뇌과학연구소에서 박사학위를 땄다. 미국 MIT와 일본 이화학연구소에서 각각 박사후 과정과 연구원을 거쳤다. 미국 미네소타대 조교수, 보스턴대 부교수를 지냈다. 2013~2015년 중앙SUNDAY에 ‘김대식의 Big Questions’를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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