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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시, 그것은 새로운 이름을 붙이는 일

중앙일보 2020.03.06 15:00

[더,오래] 전새벽의 시집읽기(55·끝)

나는 시 읽기를 왜 시작했을까. 중학교 때 배웠던 김영랑의 시가 좋아서였을까? 아니면 혹시, 당시 김영랑을 낭송해주던 국어 선생님을 남몰래 흠모하기라도 했었나? 잘 모르겠다. 시를 왜 좋아하기 시작했는지, 어느 새부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요새는 시를 읽어야 하는 당위도 잘 설명할 수 없게 되었다. 또렷한 철학도 없는 주제에 ‘시집읽기’라는 코너를 2년이나 연재한 탓일 것이다. 이제 와서 고백하건대 가슴에 박히는 시구를 만났기 때문에 글을 쓴 날보다 글을 쓰기 위해 가슴에 박힐 만한 시구를 억지로 찾아다닌 날이 더 많았다. 부끄럽다. 시를 향유하고자 시작한 일인데 언젠가부터 시를 숙제로 여기고 있었다는 사실이 그렇다. 결론적으로 많은 날에 시를 사랑하지 않는 마음으로 시에 대해 썼다. 불한당 같은 놈, 하고 비난하셔도 딱히 드릴 말씀이 없겠다.
 
연재를 중단하고 다시 삶과 예술에 대한 공부를 하러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진 pixabay]

연재를 중단하고 다시 삶과 예술에 대한 공부를 하러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진 pixabay]

 
발설의 시기에서 공부의 시기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오래 했다. 연재 중단을 선언하고, 숱한 문학작품을 오독하게 한 것에 대해 독자들에게 사과문을 띄우고, 다시 삶과 예술에 대한 공부를 하러 가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러나 발걸음은 쉬이 옮겨지지 않았다.
 
‘유명매체에 연재 중’이라는 간판은 왜 이렇게 무거운가. 그것은 어지간히 큰 결심이 아니면 다시 들어 올리지 못할 만큼 무거웠다. 슬쩍슬쩍 건드려보는 것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중에 글 실을 곳이 없으면 어떡하지, 연재를 멈추면 시 읽기에 더 소홀하게 되는 건 아닐까, 여러 고민이 사고를 방해하기도 했다.
 
와중에 책을 한 권 만났다. 한양대 정재찬 교수의 신간이었다. 읽어보는 정 교수는 문학을 사랑하며 시를 소개하는 글을 꾸준히 써 온, 나와 무척 닮은 사람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글을 잘 쓴다는 사실뿐이었다.) 아무튼 정 교수의 신간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인플루엔셜, 2020)』을 읽으며 요 며칠 시 공부를 무척 많이 했다.
 
읽은 소감이라면, 참 오랜만에 시를 읽었다는 느낌이다. 그렇다면 지난 2년간 내가 해온 행위는 무엇인가. 모르겠다. 그 행위에는 새로운 이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여기서 과감히 연재를 중단하고, 더 많은 공부를 하러 떠나는 일이리라. 그런 결심을 하게 만든 책에는 이러한 시가 실려 있다.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사람, 그 아름다움을 파괴하는 존재하고는 한바탕 전투를 치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정양은 천상 시인이다. [사진 pexels]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사람, 그 아름다움을 파괴하는 존재하고는 한바탕 전투를 치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정양은 천상 시인이다. [사진 pexels]



토막말   

              - 정양


가을 바닷가에
누가 써놓고 간 말
썰물 진 모래밭에 한 줄로 쓴 말
글자가 모두 대문짝만씩해서
하늘에서 읽기가 더 수월할 것 같다
 
정순아보고자파서죽껐다씨펄
 
씨펄 근처에 도장 찍힌 발자국이 어지럽다
하늘더러 읽어달라고 이렇게 크게 썼는가
무슨 막말이 이렇게 대책도 없이 아름다운가
손등에 얼음 조각을 녹이며 견디던
시리디시린 통증이 문득 몸에 감긴다
 
둘러보아도 아무도 없는 가을 바다
저만치서 무식한 밀물이 번득이며 온다
바다는 춥고 토막말이 몸에 저리다
얼음 조각처럼 사라질 토막말을
저녁놀이 진저리치며 새겨 읽는다
- 『살아 있는 것들의 무게』 (창비, 1997)



아무도 없는 가을 바다, 어떤 사람이 모래사장에 글귀를 남기고 갔다. 편의상 그를 '해변남'이라고 하자. 해변남이 남긴 그 말, 막말이어서 우습다가도 무척 짠하게 만든다. 시인의 말마따나 “대책도 없이 아름다운” 말이다. 그런데 그 말이 밀물에 씻겨나갈 것이란 생각에, 시인은 밀물을 비난하기에 이른다.
 
어떻게 비난했나 보니 이건 거의 전투태세다.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사람, 그 아름다움을 파괴하는 존재하고는 한바탕 전투를 치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정양은 천생 시인이다.

 
“무식한 밀물이 번득이며 온다”
 
다음 이어지는 말도 범상치 않다. 바다는 춥고, 토막말이 몸에 저리단다. 말이 몸에 저리다는 건 비문인데, 시적허용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시적허용은 조심해서 써야 한다. 그것이 산문에는 없는 특권이라서, 시이기 때문에 간신히 허용된 예외법칙이라서, 가장 시 다운 순간에 써야 한다. 그리고 이런 시를 만날 때, 나는 시적허용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예외법칙인가, 늘 감탄하고야 만다. 한편 정재찬 교수는 말한다.
 
이내 다가올 밀물이 쓸어버리면 그가 남긴 토막말은 얼음조각 녹듯 사라질 뿐입니다. 그러니 그가 남긴 해변의 그래피티는 소통이 아니라 통곡입니다. 그녀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아니라 하늘더러, 운명더러 읽으라는 항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새는 너무 설명하면 ‘설명충’이라며 싫어한다는데 이제 연재도 끝이므로 마음껏 설명이나 해봐야겠다. 정 교수의 설명에는 곱씹을 만한 구석이 적어도 두 군데는 된다. 우선은 “해변의 그래피티”라는 말이다. ‘그래피티’는 그냥 낙서가 아니라 엄연한 예술의 영역이다. 국어사전도 이 단어를 '미술용어'로 구분하고 있는 것이다. 정재찬은 해변에 쓰인 저 막말을 가히 예술의 경지로 본다. 그것은 그가 덧붙이듯 “막말이지만, 진정성이 이에서 더할 것이 있겠는가 싶을 정도”이기 때문일 것이다. 해변의 낙서에 ‘그래피티’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일 때, 일상은 예술이 된다.
 
두 번째는 “소통이 아니라 통곡”이라는 말이다. 소통이란 뜻을 서로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그런데 밀물이 메시지를 지워버릴 것을 알고도 쓴다면 그것을 무엇이라고 부르나. 정재찬은 그것에 알맞은 이름을 부여하고, 독자들은 비로소 해변남의 심경을 헤아릴 수 있게 된다. 그는 통곡하고 있었구나. 모래사장에 남겨진 막말이 더 이상 우습지 않은 이유다.
 
레베카 솔닛은 "명명은 해방의 첫 단계"라고 했다. 시인과 훌륭한 시 해설자 덕분에 해변남의 감정이 ‘해방’되는 것을 보며, 나는 시 해설자의 의무를 다시 한번 깨닫는다. 동시에, 지난 2년간 내가 해온 행위는 시 해설이 아니라 유명매체에 연재한다며 ‘젠체하는 일’이었음을 깨닫는다. 내가 시를 사랑했던 것이 아니라, 시로 나를 포장하여 ‘날 좀 사랑해줘’라고 응석 부리는 일이었음을 깨닫는다.
 
당분간은 읽고 쓰는 일에 급급해 말고 많이 걸을 참이다. 더 많은 영화를 볼 참이다. 더 자주 멍하니 있을 참이다. 가족들의 살갗을 더 만질 참이다. [사진 pxhere]

당분간은 읽고 쓰는 일에 급급해 말고 많이 걸을 참이다. 더 많은 영화를 볼 참이다. 더 자주 멍하니 있을 참이다. 가족들의 살갗을 더 만질 참이다. [사진 pxhere]

 
그러니, 더 늦기 전에 간판을 내려놓기로 한다. 지금은 공부가 필요한 때다. 삶과 예술에 대해, 죽음과 철학에 대해 내게는 훨씬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단, 당분간은 읽고 쓰는 일에 급급해 말고 많이 걸을 참이다. 더 많은 영화를 볼 참이다. 더 자주 멍하니 있을 참이다. 가족들의 살갗을 더 만질 참이다. 내가 가진 것이 아름다운 글이기 전에, 아름다운 인생이길 바라야겠다.
 
고마운 분들이 많다. 부족한 글을 실어준 중앙일보 더오래팀, 글 쓴다고 방에 틀어박혀 있던 시간을 양해해준 아내, 가장 큰 기쁨이자 가장 큰 영감인 딸 주아, 그리고 지금껏 내가 인용했던 모든 시의 주인들께 감사와 사과의 말을 전한다. 끝으로 독자 여러분께 인사를 전한다. 그저 시를 많이 읽는 삶보다는 가히 시적인 삶이기를. 사실은 그런 말이 하고 싶었노라며, 지난 2년간의 통곡을 마친다.
 
시를 쓴 정양 시인은 1942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나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우석대학교 명예교수이며, 시집 『헛디디며 헛짚으며(모악, 2016)』를 비롯해 다수의 시집과 평론집, 산문집을 출간했다. 시를 소개한 정재찬 교수는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에서 국어교육을 공부했고 대학원에서 문학교육 박사를 마친 프로 국문학 선생님이다. 저서인 『시를 잊은 그대에게(휴머니스트, 2015)』를 통해 따뜻한 '시 선생님'으로 자리매김했고, 우리 집엔 티브이가 안 나와서 미처 몰랐는데 방송에도 종종 나온다고 한다.
 
정양 시인이나 정재찬 교수 같은 사람들의 말들을 짜깁기해서 2년 동안 가까스로 본 코너를 연재해온 전새벽은 1987년 경기도에서 태어나 서른 무렵까지 생각 없이 살다가 2018년에 결혼했다. 그리고 결혼 후 지금까지, 역시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있다. 다만 이제는 좀 진지하게 삶과 예술에 대한 고민을 해서, 다음에는 깊은 울림을 가진 글로 독자를 만나겠다는 생각을 해보는 중이다.
 
회사원·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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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새벽 전새벽 작가 필진

[전새벽의 시집 읽기] 현역 때는 틈틈이 이런저런 책을 통해 필요한 정보들을 얻었다. 인터넷 사용법부터 블록체인에 이르기까지. 은퇴 후에는 조금 다르다. 비트코인과 인공지능보다는 내 마음을 채워줄 따뜻한 말 한마디가 더 필요하다. 어쩌면 시 읽기가 그것을 도와줄지도 모른다. 중장년층에 필요할 만한, 혹은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시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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