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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00억 쏟아붓고 101일만에 끝났다···블룸버그 눈물의 사퇴

중앙일보 2020.03.05 07:15
 마이크 블룸버그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가 4일(현지시간) 대선 경선 중단을 선언했다. 전날 슈퍼 화요일 경선에서 참패한 뒤 조 바이든 후보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며 사퇴했다.[로이터=연합뉴스]

마이크 블룸버그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가 4일(현지시간) 대선 경선 중단을 선언했다. 전날 슈퍼 화요일 경선에서 참패한 뒤 조 바이든 후보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며 사퇴했다.[로이터=연합뉴스]

 
대통령 후보 데뷔 무대가 은퇴 무대가 되고 말았다. 억만장자 미국 대선 후보 마이클 블룸버그(78) 이야기다. 세계 8위 부자인 블룸버그의 대통령 도전기는 그의 최악의 투자 포트폴리오로 남게 됐다. 개인 돈 5억 달러(약 5915억원)를 선거자금으로 쓰고 100일 만에 후보에서 사퇴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가장 늦게 대선 출마 선언
첫 4개 주 건너뛰고 '슈퍼 화요일' 승부
1승도 못 챙긴 참패에 101일만에 사퇴
5900억 TV·유튜브·구글 광고 쏟아부어
흑인·여성차별 논란, 첫 TV토론 혹평
부티지지·클로버샤 바이든 지지가 결정타

 
블룸버그는 4일(현지시간)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중도 하차한다고 밝혔다. 전날 14개 주에서 동시에 실시된 '슈퍼 화요일' 경선에서 참패하자 이튿날 아침 결단을 내렸다. 경선 출마를 선언한 지 101일 만이다.
 
블룸버그는 이날 "내가 대선에 출마한 이유와 똑같은 이유로 경선에서 하차한다"면서 "바로 도널드 트럼프를 이기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사퇴 연설을 하는 그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그는 슈퍼 화요일에 대승을 거둔 조 바이든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를 이기는 방법은 그걸 해낼 가능성이 가장 큰 후보 뒤에서 연대하는 것이라고 믿어왔다. 어제 투표 이후 그 후보는 내 친구이자 위대한 미국인인 조 바이든이라는 게 명확해졌다."
 
 마이크 블룸버그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가 4일(현지시간) 대선 경선 중단을 선언한 뒤 지지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전날 슈퍼 화요일 경선에서 참패한 뒤 조 바이든 후보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며 사퇴했다.[AFP=연합뉴스]

마이크 블룸버그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가 4일(현지시간) 대선 경선 중단을 선언한 뒤 지지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전날 슈퍼 화요일 경선에서 참패한 뒤 조 바이든 후보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며 사퇴했다.[AFP=연합뉴스]

 
블룸버그는 지난해 11월 말, 후보 가운데 가장 늦게 경선 출마를 선언했다. 당시 대부분 후보는 상반기에 출마를 선언하고 이미 반년 이상 선거 운동을 했을 때였다. 경선 첫 4개 주(아이오와, 뉴햄프셔, 네바다, 사우스캐롤라이나)는 후보 등록이 마감돼 아예 참여할 수 없는 시점이었다. 
 
블룸버그 캠프의 선거 전략은 초기 4개 주를 아예 포기하고 전체 대의원의 3분의 1 이상이 걸린 '슈퍼 화요일'에 승부를 거는 것이었다. 증권·금융 정보 서비스업과 경제 전문 미디어로 일가를 이룬 블룸버그는 소문난 '데이터 신봉자'다. 
 
당시 민주당 후보가 20명 넘게 난립했다. 압도적인 인물이 없다고 판단한 블룸버그는 출발은 늦었지만 해볼 만한 승부라고 생각해 출마를 결심했다. 2016년 대선 때 출마를 저울질하다가 내려놓았는데, 이번엔 기회라고 본 것이다. 투입할 자금, 남은 기간, 타 후보의 경쟁력을 고려해 슈퍼 화요일을 기점으로 돌풍을 일으켜보겠다는 계산이었다.
 
지난 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 전광판에 걸린 마이클 블룸버그 민주당 대선 후보 광고. 블룸버그는 101일간 선거 운동을 하면서 5억 달러를 썼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 전광판에 걸린 마이클 블룸버그 민주당 대선 후보 광고. 블룸버그는 101일간 선거 운동을 하면서 5억 달러를 썼다. [로이터=연합뉴스]

 
그의 선거 전략 핵심은 막대한 자금을 동원해 짧은 시간에 유권자에게 신뢰할만한 대선 주자 이미지를 심는 것이었다. 그는 후원금을 모금하지 않고 순수하게 자신의 재산으로 선거를 치르겠다고 밝혔다. 100일 동안 재산 5억 달러(약 5915억원)를 선거에 썼다.
 
TV 광고와 구글 검색, 페이스북 광고, 유튜브 등 디지털·미디어 플랫폼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최근 구글이나 유튜브에 접속할 때마다 블룸버그 캠페인 광고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다른 후보들을 압도했다. 한 예로 슈퍼 화요일 경선 주였던 텍사스주에서 집행된 대선 후보 TV 광고 총액이 2600만 달러(약 307억원)였는데, 블룸버그가 80%인 2000만 달러(약 236억원)어치를 집행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마이클 블룸버그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가 2일(현지시간) 버지니아주에서 선거 유세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마이클 블룸버그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가 2일(현지시간) 버지니아주에서 선거 유세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자금력을 활용해 미국 전역에 선거 사무소를 차렸다. 테네시·앨라배마와 같이 인구가 적은 농촌 지역에도 선거 사무소를 내서 주민들 환심을 샀다. 이 지역에 대선 후보가 선거 사무소를 차린 것은 수십 년 만에 처음이었다. 다른 후보들은 비용 문제로 엄두도 못 내는 일이었다. 
 
전국 선거 사무소에 직원 2400명을 고용했다. 초임 사무원 월 급여가 6000달러(약 709만원)로, 버니 샌더스 후보나 엘리자베스 워런 후보 캠프 직원 급여의 두 배를 줬다. 블룸버그를 홍보하는 글을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홍보 요원은 별도로 유료로 고용했다.
 
하지만 이런 태도가 반감을 불러오기도 했다. 그가 가는 곳에는 '민주주의는 판매용 상품이 아니다' '당신의 가격은 얼만입니까' 같은 플래카드가 내걸리기도 했다.
 
한때 희망이 비췄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10% 넘는 지지율이 나왔다. 경쟁자로 여기던 중도 노선의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을 이기는 여론조사 결과도 종종 나왔다. 특히, 바이든이 아이오와, 뉴햄프셔주에서 4위, 5위에 오르며 대세론이 무너지자 슈퍼 화요일에 블룸버그가 중도의 대안으로 떠오를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기대가 어긋나기 시작한 것은 그가 '사이버 세계'에서 현실 세계로 나왔을 때였다. 지난달 19일 첫 TV토론에 나섰을 때 카리스마도, 재치도, 현명하다는 인상 그 어느 것도 보여주지 못하면서 졸전을 펼쳤다. 뉴욕시장 재직 시절 흑인 등 유색인종을 차별적으로 대한 불심검문(stop-and-frisk), 회사 내 여성 차별 등이 드러나면서 자질 논란이 불거졌다.
 
'백인 오바마'로 불리며 초반 돌풍을 일으킨 피트 부티지지 전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과 미네소타주 출신의 중도 성향 에이미 클로버샤 상원의원이 중도 하차하면서 각각 바이든 지지를 선언한 것이 결정타였다. '강성 진보' 성향의 버니 샌더스 후보에 맞서기 위한 중도 성향의 '반(反) 샌더스 연대'가 바이든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블룸버그는 출마 초기부터 자신의 재산을 트럼프를 이기는 데 기꺼이 쓰겠다고 밝혔다. 자신이 아니라면 다른 후보를 지지해서라도 정권을 교체하겠다는 뜻을 거듭 강조했다. 돈으로 대통령직을 사려 한다는 비판을 방어하기 위한 발언이었지만, 그의 권력에의 의지를 약해 보이게 만드는 부작용도 나았다. 
 
100일간 레이스 끝에 3일 슈퍼 화요일 성적표가 나왔다. 결과는 참패. 이날 경선이 열린 14개 주 가운데 단 한 곳에서도 1위에 오르지 못했다. 2위에 오른 곳은 현재 개표율 74%의 유타주 한 곳. 나머지는 모두 3위, 4위권이었다. 미국 본토가 아닌 미국령 사모아에서 1위를 했다. 이곳에도 사무소를 열고 풀타임 직원 7명을 고용한 덕분이다. 하지만 경선 판도에는 영향을 주지 못하는 곳이다.
 
이날까지 바이든은 대의원 566명, 샌더스 501명을 확보했지만, 블룸버그는 53명 확보에 그쳤다. (폭스뉴스 집계) 30여개 주 경선이 남았지만, 블룸버그가 따라잡기에는 갈 길이 너무 멀다. 
 
사퇴하지 않고 계속 도전할 경우 블룸버그는 바이든 표를 분산시키면서 샌더스에게 기회를 주는 '엑스맨' 신세가 돼 버릴 가능성이 크다. 슈퍼 화요일 경선에서만 바이든과 블룸버그의 득표수를 단순히 더하면 샌더스가 이긴 4개 주 가운데 지역구인 버몬트를 제외한 나머지 3개 주에서 중도 진영의 표가 더 많다는 계산이 나온다. 가장 많은 대의원 415명을 배정하는 캘리포니아(개표율 93%)와 콜로라도(개표율 79%), 유타(개표율 74%)주다.
 
 
트럼프 대통령은 블룸버그를 조롱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트위터에서 "'미니 마이크'가 대통령 경선을 그만뒀다. 나는 오래전에 그가 대통령이 되는 데 필요한 것을 갖고 있지 않다는 걸 말해줄 수 있었다"고 적었다. 이어 "그랬으면 그는 10억 달러를 아낄 수 있었을 것"이라면서 "이제 그는 체면 때문에 '졸린 조'의 선거운동에 돈을 쏟아부을 텐데, 효과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니 마이크'는 키가 작다는 점에 착안해 트럼프가 블룸버그에게 붙여준 별명이다. '졸린(sleepy) 조'는 졸리고 지루하다는 의미로 바이든에게 붙인 별명이다. 트럼프는 블룸버그가 지금까지 선거에 쓴 돈과 앞으로 쓸 돈까지 더해 10억 달러가 실제 비용이라고 주장했다.
 
블룸버그는 포브스 억만장자 순위에 따르면 자산 584억(약 69조원)으로 세계 8위 부자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하고 증권회사 살로몬에서 15년간 일했다. 1981년 해고되자 전용 단말기를 통해 금융 정보와 뉴스 서비스를 제공하는 블룸버그사(社)를 창업했다.
 
2001년 공화당 소속으로 뉴욕시장에 당선됐다. 재선에 성공한 뒤인 2007년 공화당을 탈당해 2009년 무소속으로 뉴욕시장 3선에 성공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뉴욕 재건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2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재선을 지지했고, 2018년 민주당에 복당했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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