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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저질환·고령 강조하는 정부, 그들 죽음도 억울한 죽음이다

중앙일보 2020.03.05 05:01
국내 14번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망자 이모(70)씨의 빈소.연합뉴스

국내 14번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망자 이모(70)씨의 빈소.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망자가 35명으로 늘었다. 대부분 70세 전후의 고령자이다. 평소 이런저런 병을 앓아온 사람들이다. 정부는 사망자를 공개할 때 연령과 소위 기저질환(지병)을 명시한다. 
 고혈압, 고지혈증, 전립선비대증, 심근경색 스텐트시술, 당뇨병, 만성폐쇄성 폐질환, 폐렴, 암…. 정부가 공개하는 병도 다양하다. 34번째 사망자(87·여·대구 남구)는 심장비대·고혈압·치매·불안장애를 앓았다. 사망자 중 기저질환이 없는 사람이 거의 없다. 

[현장에서]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나 권준욱 부본부장은 매일 오후 정례브리핑에서 사망자를 공개할 때 연령과 기저질환을 설명한다. 정 본부장은 4일 브리핑에서 "연령 변수가 가장 중요하고 그 다음에 기저질환 유무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물론 "명복을 빈다"는 말도 빼지 않는다. 다만 기저질환을 강조하는 말이 더 크게 들린다. 중국의 코로나 사망자도 기저질환자가 상당히 많다. 한국도 예외일 수 없다. 고령과 기저질환을 강조하는 이면에는 '병이 없는 건강한 젊은 사람은 겁 먹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가 있는 듯하다. 정도 이상의 두려움을 주지 않으려는 뜻으로 읽힌다. 
전국 코로나19 사망자 추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전국 코로나19 사망자 추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70세 전후의 고령자들이 지병이 있다고 해서 갑자기 숨지는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다. 병을 오래 앓아온 탓에 저마다 어느 정도 대처법을 갖고 있다. 한국의 의술이 세계적 수준이기 때문에 웬만한 만성병은 적절히 관리하면 평균수명까지 살 수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공격을 받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급사할 리가 없다. 사망자 중 본인이 잘못해서 코로나에 감염된 경우는 별로 없다. 보건 당국은 4일 브리핑에서 "대구 사망자 23명 중 신천지 신도는 4명"이라고 밝혔다. 나머지는 자신도 모르게 어딘가에서 감염됐다. 
 2015년 메르스 때 36명이 희생됐다. 기저질환을 앓던 노인들이 많았다. 보건 당국은 그 때도 지금처럼 사망자에게 일련번호를 부여했고 기저질환을 깨알같이 명시했다. 당시 한림대 동탄성심병원 김현아 간호사는 첫 사망자(25번 환자)가 숨을 거둔 뒤 그를 한참 바라보며 “낫게 해 드리지 못해 한없이 사죄했다”고 고백해 국민의 심금을 울렸다.
 코로나 사망과 관련, 보건 당국이 책임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대구에서 집에 있다가 치료도 못 받고 숨지는 노인이 잇따르고 있다. 초기 증세를 잘 인지하지 못해 뒤늦게 검사를 받고 숨지는 노인도 늘고 있다. 자택 확진자가 일주일 이상 쌓이다 보니 이런 일이 벌어진다. 
 메르스 때도 그랬듯이 이번 신종 코로나 사망자도 가족과 이별할 기회조차 없다. 같이 사는 가족은 밀접접촉자가 돼 자가격리되거나 확진자가 돼 병원이나 연수원에 격리된다. 함께 같이 살지 않는 가족도 망자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없다. 염습이나 입관 같은 절차가 없기 때문이다. 특수처리가 돼 특수 화장로에서 24시간 내에 한 줌의 재가 된다.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술 한잔 받지도 못하고 쓸쓸히 떠난다. 
 보건 당국이 사망자를 신속히 공개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연령과 기저질환도 공개하는 게 낫다. 다만 모든 생명은 소중하고, 누군가에게 사랑스러운 가족이며, 억울해도 억울하다고 한 마디도 못하고 있다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고령의 기저질환 확진자의 죽음도 무척 억울한 죽음이라는 사실도.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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