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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보름 대구 “우울하고 불안” 심리상담 2만건

중앙일보 2020.03.05 05:00 종합 1면 지면보기
4일 오후 대구 중구 대현프리몰 대구점(중앙로 지하상가)의 전체 점포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위험 탓에 휴점해 한산한 풍경이다. 김정석기자

4일 오후 대구 중구 대현프리몰 대구점(중앙로 지하상가)의 전체 점포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위험 탓에 휴점해 한산한 풍경이다. 김정석기자

4일 오후 대구 중구 대현프리몰 대구점. 대구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과 연결돼 있어 대구시민들이 ‘중앙로 지하상가’로 부르는 곳이다. 예전엔 쇼핑객들로 북적이는 곳이었지만 인적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길게 이어진 통로 양옆 점포들은 불이 꺼진 채 적막했다.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잦아든 중앙로 지하상가 안의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코로나19 지역 발생 보름째인 대구시 풍경
문닫은 가게 속출하고 길거리도 텅텅 비어
가족과 생이별·사회관계 단절에 극도 예민
“대구시민들 힘으로 이 어려움 극복해내자”

대구 중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대구를 덮친 후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중앙로 지하상가 전체 점포를 휴점하기로 했다. 입점 점포 231곳은 지난달 26일부터 휴점에 들어갔다. 애초 나흘만 휴점하려던 계획은 오는 8일까지로 늘어났다. 이 사실을 모르고 지하상가로 들어선 일부 시민들은 깜짝 놀라기도 했다. 활기가 넘쳤던 중앙로 지하상가가 한 순간 폐허처럼 변한 건 비단 이곳만의 일은 아니다. 코로나19의 그늘이 대구 전역을 뒤덮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다). 만물이 겨울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을 하루 앞둔 4일, 대구의 상황이 딱 춘래불사춘이다. 코로나19가 대구를 덮친 지 정확히 보름. 인구 250만 도시 대구는 아직도 꽁꽁 얼어붙어 있다.
 
4일 오전 대구 지역 코로나19 확진 환자 수는 4006명으로 늘었다. 국내 전체 코로나19 확진 환자 수 5328명의 75.1% 수준. 대구는 말 그대로 전시 상황이다. 지역 경제는 멈춰섰고, 사람들 사이에선 불신이 팽배하다. 중앙일보가 대구 한가운데 들어갔다.
지난달 27일 오후 대구 수성우체국 앞에서 시민들이 정부가 공급하는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7일 오후 대구 수성우체국 앞에서 시민들이 정부가 공급하는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연합뉴스]

①휴업 속출…“영업하나 전화해보고 간다”

대구에서 직장을 다니는 이은서(33·여)씨는 점심 때마다 식당에 가기 전 미리 전화를 건다. 예약을 잡기 위한 게 아니다. 임시휴업을 한 식당이 많아 영업하는지 확인하기 위한 전화다.
 
이씨는 “대구에 첫 확진자가 나온 후 가게들이 하나둘씩 문을 닫더니 이젠 임시휴업한 식당이 적지 않다. 확진자가 다녀가 폐쇄됐거나 당분간 쉬기로 한 식당들이 많다. 배달만 하는 곳도 있다”고 전했다.
 
식당뿐 아니라 개인병원, 학원 등도 임시휴업 행렬에 서고 있다. 2주째 학원 문을 열지 못하고 있는 최모(39·여) 원장은 통장 잔고를 들여다볼 때마다 한숨부터 나온다. 최씨는 “강사들 월급과 각종 관리비 등 한 달에 학원에 들어가는 비용만 1300만원이다. 아이 둘을 키우고 있어 생활비도 만만치 않다. 지난달 말 돈이 다 나가고 나니 통장에 남은 돈이 없다. 급한 대로 친정에서 1000만원을 빌렸지만 앞으로가 막막하다”고 말했다.
4일 대구 중구 한 식당 입구에 '임시휴업'이라는 안내가 붙어 있다. 김정석기자

4일 대구 중구 한 식당 입구에 '임시휴업'이라는 안내가 붙어 있다. 김정석기자

 
대구시에 따르면 2월 일반음식점 중 폐업 신고를 한 곳은 210곳이다. 전년 같은 기간 폐업한 144곳보다 45.8% 증가한 수치다. 휴게음식점 폐업도 전년 동기 48곳에서 올해 65곳으로 35.6% 늘었다. 
 
대구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김모(45) 대표는 “단골이 많아 그나마 다른 가게들보다는 손님이 있는 편인데도 매출이 60~70% 줄어 매일 수십만원씩 적자를 보고 있다. 인력을 최소로 운영하면서 버티고 있지만 언제 이 상황이 끝날지 모르겠다”고 답답해했다.
 

②주말마다 북적이던 동성로에 사람이 없다 

주말인 지난달 29일과 이달 1일 대구 최대 번화가인 동성로는 텅텅 비었다. 인파가 가장 많을 오후 9~10시 풍경이 흡사 새벽 3~4시 풍경이 됐다. 주말 상황이 이렇다 보니 평일엔 지나다니는 사람이 더 없다. 
3일 오후 대구 중구 동성로가 텅텅 비어 있다. 대구 최대 번화가인 동성로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이전엔 평소 많은 인파로 가득차 있는 곳이다. 김정석기자

3일 오후 대구 중구 동성로가 텅텅 비어 있다. 대구 최대 번화가인 동성로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이전엔 평소 많은 인파로 가득차 있는 곳이다. 김정석기자

 
이 때문에 대구 시내에서 장사하는 이들도 개점휴업 상태다. 대구 중구 반월당 지하상가에서 구두점을 운영하는 이모(35·여)씨는 “대구에 첫 확진 환자가 나오고 손님이 뚝 끊겼다. 며칠 영업을 해봤지만, 손님이 한 명도 오지 않아 문을 닫는 게 오히려 낫다고 생각해 휴업한 지 열흘째”라고 했다.
 
대중교통 이용객도 절반 이상 줄었다. 대구 지역 3개 노선의 지하철 합계 승객 수는 지난달 11~14일 177만3917명에서 첫 환자 발생 후인 지난달 18~21일 111만1234명으로 66만여 명 급락했다. 출근하지 않는 주말은 상황이 더 심각해 지난달 15~16일과 22~23일을 비교하면 33만1897명에서 7만134명으로 4배 이상 떨어졌다.
3일 오후 퇴근시간에 대구도시철도 1호선 지하철이 텅 비어있다. 김정석기자

3일 오후 퇴근시간에 대구도시철도 1호선 지하철이 텅 비어있다. 김정석기자

 
대구로 드나드는 교통량도 확 줄었다. 지난달 15~16일 북대구나들목을 드나든 교통량은 12만 4245대였다. 일주일 뒤인 22~23일 교통량은 6만8562대로 44.8% 감소했다. 서대구나들목 교통량도 같은 기간 12만8387대에서 7만6374대로 40.5% 줄었다.
 

③“지긋지긋하다는 말밖엔…” 우울한 시민들

지인들과의 만남을 최소화하고 ‘자발적 자가격리’를 하고 있거나 회사의 재택근무 방침으로 사회와의 단절이 장기화하면서 대구시민들은 극도로 예민해진 상태다. 김상윤(62·대구 달성군)씨는 “요즘엔 길에서 마스크를 끼지 않은 사람을 보면 짜증이 치민다”고 말했다. 
 
예민함을 넘어 우울감을 호소하는 이들도 늘었다. 대구에서 확진 환자가 나온 후인 지난달 18일부터 같은 달 29일까지 대구시에 걸려 온 상담 전화가 1460건, 문자메시지 상담이 1만7390건 등 모두 1만8850건의 코로나19 관련 상담 요청이 접수됐다. 극도의 스트레스로 불안감이 높아지고 까닭 모를 공포가 닥쳐온다는 내용이었다.
4일 오전 8시께 동대구역복합환승센터의 서울 등 상행선 고속버스 승강장이 한산한 모습을 보인다. 환승센터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영향으로 사람들이 외출과 여행을 꺼리며 최근 이용객이 많이 줄었다"고 했다. [연합뉴스]

4일 오전 8시께 동대구역복합환승센터의 서울 등 상행선 고속버스 승강장이 한산한 모습을 보인다. 환승센터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영향으로 사람들이 외출과 여행을 꺼리며 최근 이용객이 많이 줄었다"고 했다. [연합뉴스]

 
대구시 관계자는 “대구에 코로나19 확진 환자가 폭증하면서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도 급증했다”며 “대구시는 지역 정신건강전문요원 106명으로 구성된 ‘통합심리지원단’을 꾸린 데 이어 최근 육군 심리상담관 13명, 행정안전부 재난심리회복지원센터 10명 등 23명의 인원을 더해 심리 상담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④난데없이 ‘이산가족’ 돼…“부모님 만나러 못가”

지난해 9월 결혼해 인천에 사는 김효진(36·여)씨는 지난달 20일 대구 친정집을 찾을 예정이었지만 갑자기 대구에 확진자가 생겨 가지 못했다. 김씨는 “사태가 조금 진정되면 대구로 가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 심지어 확진자가 4000명을 넘었다고 하니 대구에 있는 부모님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3일 대구·경북 지역 코로나19 구급대응을 위해 전국 시도 소방본부에서 지원된 구급차들이 대구 수성구 대구스타티움에서 출동 준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3일 대구·경북 지역 코로나19 구급대응을 위해 전국 시도 소방본부에서 지원된 구급차들이 대구 수성구 대구스타티움에서 출동 준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북 구미시에 사는 여자친구를 만나고 있는 최모(35·대구 북구)씨는 혹시 자신이 코로나19에 감염됐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보름째 여자친구와 ‘생이별’ 상태다. 최씨는 “다니는 회사 건물에 확진 환자가 나와서 불안하다. 괜히 만났다가 여자친구에게 바이러스를 옮길 수도 있어 사태가 수그러들고 난 뒤 만나려고 마음먹었지만 씁쓸하다”고 말했다.
 
경북 지역 대기업에 다니는 대구 출신 근로자들도 당분간 고향에 가지 못할 처지다. 기업마다 ‘대구 방문 시 사전 보고’ 지침을 내려서다. 경북 영주시 한 대기업에 다니는 김모(37)씨는 “사실상 당분간 대구에 가지 말라는 지침으로 알고 일이 없는 날에도 기숙사를 벗어나지 않는다. 회사에 확진자가 나오면 조업이 중단되고 거액의 손실이 발생할 것이 뻔한데 그 원인이 내가 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불편하더라도 당분간 외출이나 모임을 자제하고 2m 이상 거리를 두고 대화하는 ‘사회적 거리 두기’를 계속 실천해 주기 바란다”며 “다만 사회적 거리는 둘지라도 심리적 거리는 줄여나가자.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서로 전화나 문자메시지로 안부를 묻고 희망과 용기를 전해주자. 대구는 곧 이 어려움을 시민 모두의 힘으로 극복하고 당당히 일어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구=김정석·김윤호·백경서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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