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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왜 전염을 막지 못했을까

중앙일보 2020.03.05 00:43 종합 31면 지면보기
이종화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이종화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지난 반세기 한국 경제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1997년 발생한 외환위기였다. 우리 경제, 사회 시스템이 붕괴하고 모든 국민이 큰 고통을 겪었다. 2020년 한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또다시 위기를 겪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외국에서 들어오는 전염원을 차단하고 내부의 취약한 부분을 개선하여 병의 확산을 막지 못한 대가가 너무 크다.
 

외국발 위기의 전염 막지 못해
외환위기 같은 고통을 또 겪어
합심으로 국난 다시 극복하고
더 건강한 나라 만들어 가야

외환위기는 이미 23년 전의 일이라 지금 젊은 세대의 기억에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접하는 역사로만 남아 있다. 그러나 당시 세대가 겪은 충격은 말할 수 없이 컸다. 위기를 막지 못해 결국 국제통화기금(IMF)에 긴급 자금지원을 신청하고 IMF와 합의한 대로 경제정책을 시행할 수밖에 없던 상황을 당시에는 1910년 일본에 주권을 뺏긴 만큼이나 수치스러운 일로 국민은 느꼈다.
 
97년 외환위기는 태국에서 처음 발생해 한국으로 파급됐다. 태국은 수출보다 수입이 많아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되고 외국자본 의존도가 매우 높았다. 외화 차입이 점점 힘들어지면서 그해 7월 화폐가치가 급락하는 외환위기를 겪었고 IMF에 긴급 자금지원을 요청했다. 외국 투자자 사이에는 한국도 위험할 수 있다는 공포 심리가 번져 나갔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설마 한국이 위기를 겪을 것인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필요한 대책을 꼼꼼히 세우기보다는 모두를 안심시키기에 바빴다. 그러는 동안 외국 투자자들은 빠르게 자금을 회수했고 단기 외화부채가 많은 금융기관부터 압박을 받기 시작했다. 한국은행이 보유한 외환이 바닥이 나면서 원화 가치가 폭락해 11월엔 IMF에 긴급 자금지원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국가가 밀접히 연결된 세계화 시대에 한 국가에서 발생한 위기는 투자자의 공포 심리를 통해 인접 국가의 금융,외환 시장에 바이러스처럼 빠르게 전파됐다. 위험관리에 취약했던 한국은 결국 전염병을 피할 수 없었고 심각한 피해를 겪었다. 정부의 안일한 대응으로 사상 초유의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많은 기업과 금융기관이 도산했다. 정부가 괜찮다고 하는 말만 믿고 있다가 서민들은 일자리를 잃고 고통을 당했다.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바이러스가 한국에 전파되며 너무나 큰 피해를 주고 있다. 환자가 되거나 일상생활에서 격리되어 많은 국민이 고통을 당하고 심지어 마스크조차도 제대로 사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해외에서는 계속 입국 금지를 당하고 있다. 최일선에서 밤낮으로 방역에 힘쓰고 환자를 치료하는 공무원과 의료진의 노고는 너무나 애처롭다. 소비가 급감해 상인들은 97년 외환위기 때보다 어렵다고 한다. 얼마가 지나야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외환위기의 경험은 우리에게 뼈아픈 교훈을 주었다. 변화하는 세계 경제 환경을 예의 주시하면서 위기 예방에 힘써야 했다. 외환보유고를 늘리고, 단기 외채를 줄이고, 해외자금 유출입을 적절히 통제했으면 위기를 예방할 수 있었다. 사회안전망을 미리 준비하고 재정과 통화정책을 적절히 사용했으면 그렇게 큰 고통 없이 위기를 넘길 수도 있었다. 지금 코로나 전염병도 감염 가능성이 있는 입국자를 더 철저히 통제하고 다중이용시설의 검역을 강화하고 미리 방역 체계와 물품을 준비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미국은 1월 31일(미국 현지 시각)에 중국을 방문한 외국인의 입국을 금지하고 미국 시민의 검역을 강화하는 조치를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월 26일의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입국 통제가 옳은 조치였다고 했다. 국민의 안전이 우선이라고 했다. 앞으로도 보건 전문가의 의견에 따라 철저히 대응하겠다고 했다. 한국도 그렇게 했어야 했다.
 
어떤 위기이든 철저한 예방이 최선이다. 그러나 외국에서 오는 충격을 모두 막을 수는 없다. 사태 수습에 최선을 다하고 다시 같은 위기를 겪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한국은 97년 외환위기에서 교훈을 배워 이후 외환보유고를 늘리고 금융 건전성을 높이는 조치를 했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가 왔을 때 미국, 일본과 양자 통화스와프를 체결하고 금리 인하와 재정확대로 경제 위기를 막았다. 이번 전염병 위기의 대응도 모두 기록에 남겨 다음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외환위기 때 성난 민심은 정권을 용서하지 않았다. 그해 선거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고 정권이 바뀌었다. 김영삼 정부는 많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국가 부도 사태를 초래한 허물만이 크게 남았다. 당시처럼 지금도 방역 실패로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많이 떨어졌다. 총선을 앞둔 정치권은 서로 헐뜯기에 바쁘다. 그러나, 위기 극복은 정권이 아니라 국가의 명운이 걸린 일이다. 국민 안전이 최우선이다. 우리 국민은 세계를 놀라게 한 금 모으기 운동으로 고통을 분담하고 97년 외환위기를 빠르게 극복했다. 이번에도 수많은 국민이 자발적으로 위기 극복에 동참하고 있다. 모두 힘을 합쳐 전염병을 이기고 더 건강한 나라를 만들 수 있기를 기원한다.
 
이종화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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