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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중국에 길들여지는 한국

중앙일보 2020.03.05 00:41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중국인 입국 금지가 정쟁의 대상이 된 것은 전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책임이다. 방역의 실효성을 따지자는 게 아니다. 한국의 운명을 놓고 무모한 베팅을 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한국과 중국이 “운명 공동체”라고 했다. 함부로 입 밖에 낼 말이 아니다. “중국인의 아픔은 우리의 아픔”까지는 외교적 수사일 수 있다. 그러나 운명 공동체는 그럴 수 없다. 운명 공동체가 뭔가. ‘중국이 망하면 한국도 망하고, 중국이 흥하면 한국도 흥한다’는 의미라고 나는 이해했다. 그러려면 추구하는 가치와 시스템도 같아야 한다. 전체주의 독재국가 중국과 자유 대한민국이 어째서 가치를 공유하고 운명을 함께해야 한다는 말인가. 국민 누가 동의했나. 국민에게 물어보기라도 했나. 나는 그 말이 대통령 입에서 나왔을 때 섬뜩했다. 그는 이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가려는 것일까. 중국에 스스로 길들여지려는 것인가.
 

중국인 입국 금지 논란 본질은
대통령의 도 넘은 친중 사대(事大)
국민 자존심은 안중에도 없나

복기해 보면 이 정부 시작부터 조짐이 보였다. 중국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에 침묵했다. 2017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 준비를 다 해놓고도 결국 안 했다. 당시 실무진은 “승산이 90% 이상”이라고 했다. 왜 포기했는지 설명도 제대로 안 했다. 그러면서 이듬해 미국이 세이프가드를 발동하자 즉각 WTO에 제소했다. 문 대통령이 직접 “당당하게 대응하라”고 주문했다. “통상 따로, 안보 따로”라며 미국과 굳이 각을 세웠다. 반미봉중(反美奉中) 논란이 일었지만, 대통령은 개의치 않았다. 중국에 3불(不)을 약속해 안보 주권을 포기하고 혼밥 논란도 기꺼이 감수했다. 중국몽을 떠받들고 소중화(小中華)를 자처했다.
 
대통령이 그러니 다른 이들은 말해 뭣하랴. 노영민 당시 중국 대사는 2017년 10월 방명록에 ‘만절필동(萬折必東)’ 글귀를 적어 “중국에 충성을 다짐했다”는 비난을 들었다. 불과 6개월 전인 그해 4월 트럼프 미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고 했다”고 했지만, 이 정부의 초대 주중 대사가 항의는커녕 입에 발린 말만 한 것이다. 한국민은 졸지에 ‘배알도 없는 사람들’이 됐다. 일본의 아베 총리가 그랬다면 난리가 났을 것이다.
 
대통령을 좇아 대한민국엔 이미 굴신(屈身)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졌다. 탈원전 수혜는 중국 태양광 업체가 독식했다. 한국의 태양광 업체는 줄폐업 중이다. 급기야 한국전력은 국내 전선 사업에 자격도 못 갖춘 중국 업체의 입찰을 고려 중이다. 중국 기업에 에너지 주권을 뺏긴 필리핀의 사례는 반면교사감도 못 된다. 탈원전 공약은 국민 반대를 아랑곳하지 않고 밀어붙이면서 "중국발 미세먼지 해결” 공약은 부지하세월, 중국에 변변히 항의조차 못 한다. 국민은 중국 날씨와 공장 가동에 맞춰 마스크를 준비하는 신세가 됐다.  
 
중국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문재인 정부 탓에 지난 3년 국민의 자존감은 상할 대로 상했다. 거기에 기름을 부은 게 중국인 입국 금지 논란의 본질이다. 중국에 거꾸로 "외교보다 방역”이란 면박을 받고 우리 국민의 집이 각목으로 봉쇄됐는데 복지장관은 "중국에서 온 한국인이 원인”이라고 말하는 나라, 제 국민이 92개국에서 입국 제한돼 수모를 당하는데 외교장관이 "국민 안전이 우선이지만 다른 사안도 고려할 점이 있다”고 말하는 나라, 그런 나라 국민에게 무슨 자존감이 남아 있겠나.
 
한국민의 자존감이 상한 만큼 반사 이득을 본 쪽도 있다. 시진핑이다. 시진핑은 한국이 코로나19에 쑥대밭이 되면서 정치적 책임을 벗어날 가능성이 커졌다. 벌써 "한국보다 중국이 잘했다”며 자화자찬 중이다. "중국 대신 한국을 입국 금지하라”는 주장도 나왔다. 거기에 신천지라는 좋은 먹잇감도 생겼다. 시진핑은 중국 내 신천지 교도의 일제 조사를 지시했다. 바이러스의 진원지로 한국을 희생양 삼을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굴신의 대가치곤 참혹하다. 이런 게 문재인 대통령이 말한 운명 공동체라면 나는, 단호히 거부하겠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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