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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호의 시선] 옥중 박근혜, 돌아가는 상황 다 꿰고 있었다

중앙일보 2020.03.05 00:39 종합 28면 지면보기
강찬호논설위원

강찬호논설위원

2017년 3월 31일 구속돼 3년간 옥중생활을 해온 박근혜 전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에서 벌어진 각종 현안을 빈틈없이 꿰고 있었다. 불안한 정정, 추락하는 경제, 위축된 민생을 연일 걱정했다고 한다. 특히 가장 가슴 아파한 것이 지난해 11월 절정에 달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위기였다.
 

메시지 한방으로 보수 분열 해결
박근혜 팔이 TK 세력 갈 곳 잃어
통합당, 공천 개혁으로 화답해야

“박 전 대통령이 탄핵당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국정 행위를 한 것이 지소미아 연장 재가였다. 나라에 가장 중요한 게 한·미동맹인데 그걸 뒷받침하는 것이 지소미아이니, 정권이 바뀌어도 잘 유지되도록 하려는 마음에서 대통령으로서 마지막 권한을 행사했다는 거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이 그 지소미아를 마구잡이로 흔들며 파기도 불사하려 한다는 보도를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러면 한·미동맹이 깨질 수도 있다’고 옥중에서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박근혜를 유일하게 직접 면회하는 유영하 변호사의 전언이다.
 
박근혜는 보수 통합에서 최고의 변수였다. 태극기부대와 대구·경북(TK) 의원들은 미래통합당이 유승민 세력과 합칠 때나, 공천 개혁에 나설 때나 ‘박근혜’를 팔며 ‘친박당’을 만들어 통합당을 괴롭힐 것이라고 몽니를 부려왔다. 보수의 개혁과 외연 확장을 추구하는 통합당은 속앓이만 할 수밖에 없었다.
 
총선을 두 달 앞둔 지난달 중순 통합당 공천관리위원회가 TK 현역 의원 70~80%를 물갈이 대상으로 정하고, 김형오 위원장이 해당 의원들에게 전화로 컷오프 결정을 통보했을 때도 TK 의원들은 ‘배 째라’ 식으로 버텼다. 서청원·조원진·김문수가 합쳐 만든 자유통일당, 홍문종이 만든 친박신당, 한국경제당 등 TK 지역에 난립한 떴다방식 친박정당들이 TK 의원들의 ‘백’이 돼줬다. “우리 자르면 친박당 간다”며 김형오를 협박한 탓에 TK 공천은 총선이 코앞에 다가온 지금까지 진도를 나가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가 투옥 3년 만에 처음 문서로 메시지를 냈다. “나라가 매우 어렵다. 서로 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고 메우기 힘든 간극도 있겠지만, 더 나은 대한민국을 위해 기존 거대 야당을 중심으로 태극기를 들었던 여러분 모두가 하나로 힘을 합쳐 주실 것을 호소드린다.”
 
박근혜가 전례없이 친필을 통해 ‘정본’임을 인증한 이 메시지는 단일대오로 문재인 정권 심판을 꿈꿔온 통합당과 중도 보수에게 천군만마가 아닐 수 없다. 반면 눈만 뜨면 박근혜를 팔며 딴 살림 차리겠다고 통합당을 협박해온 TK 의원들은 이 메시지 하나로 설 자리를 잃게 됐다. 그들이 그렇게 섬겨온 박근혜 본인이 “딴생각 말고 통합당과 합쳐 반문연대에 나서라”고 엄명한 것 아닌가. 이제 TK 의원들은 당의 개혁 공천에 승복해 백의종군하면서 총선 승리를 위해 뛸 수밖에 없게 됐다. 자나 깨나 ‘박근혜’로 살아온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박근혜의 메시지를 통해 드러난 중요한 사실이 있다. 박근혜와 긴밀한 관계인양 하며 떴다방식 친박신당을 만든 정치인들이 실은 박근혜랑 말 한마디 섞지 못하는 ‘허당’임이 드러난 것이다. 서청원·조원진·김문수는 박근혜의 메시지 발표 과정에서 어떤 관여도 하지 못한 채 일반 국민들과 다름없이 뉴스로만 메시지를 접해야 했다.
 
모친상을 당한 문재인 대통령을 찾아가 박근혜 사면을 건의하고, 지난달 ‘친박신당’ 창당을 선언하며 바람을 잡았던 홍문종도 마찬가지다. 그는 지난달 25일 “내가 당을 창당하면 박 대통령이 메시지를 주실 것이라고 생각했다”면서 박근혜를 판 사실을 인정했다. 여의도 정가에선 “홍문종이 박근혜가 배후에 있는 양 큰소리치며 당을 만들려다 박근혜에게 단단히 혼난 끝에 공개 반성문을 쓴 것”이란 말이 돌았다.
 
통합당 창당을 주도한 혁신통합추진위원회의 박형준 위원장은 “창당 과정에서 박근혜가 찬물을 끼얹을 것이라고 우려한 이들이 있었지만 난 그렇게 보지 않았다”고 했다. “박근혜는 국가를 경영해본 사람이다. 박근혜 이름자를 팔아 금배지 달아보려는 이들의 손을 들어줬다간 문 정권만 좋은 이적 행위를 했다는 비난 속에 자신의 정치적 자산을 전부 날리게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으리라고 봤다. 그 생각이 적중했다.”
 
박근혜의 메시지는 통합당 공천의 하이라이트인 TK 공천의 분수령을 만들었다. 4년 전 박근혜 탄핵을 놓고 갈가리 찢긴 보수를 삽시간에 뭉치게 하는 파워도 발휘했다. 박근혜의 용단에 통합당은 자기혁신으로 화답해야 한다. 화끈한 물갈이와 참신한 인재 영입으로 유권자를 감동시켜 달라.
 
강찬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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