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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의뢰인은 지구” 여성 듀오에 첫 건축계 노벨상

중앙일보 2020.03.05 00:03 종합 18면 지면보기
올해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아일랜드 건축가 이본 파렐(왼쪽)과 셰릴 맥나마라. 여성 듀오 건축가가 이 상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사진 하얏트재단]

올해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아일랜드 건축가 이본 파렐(왼쪽)과 셰릴 맥나마라. 여성 듀오 건축가가 이 상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사진 하얏트재단]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의 올해 수상자는 아일랜드의 여성 듀오 건축가로 선정됐다.
 

올 ‘프리츠커상’에 파렐·맥나마라
‘현대식 마추픽추’ 페루 리마공대 등
“40년간 힘과 섬세함의 균형 빚어
도시·역사 존중하는 새 공간 창조”

프리츠커상을 주관하는 하얏트 재단의 톰 프리츠커 회장은 3일(현지시간) 이본 파렐(68)과 셸리 맥나마라(67)를 올해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아일랜드 건축가가 이 상을 받은 것도, 여성 듀오 건축가가 받은 것도 처음이다.
 
프랑스 툴루즈 대학. [사진 하얏트재단]

프랑스 툴루즈 대학. [사진 하얏트재단]

세계적으로 저명한 건축가 대부분이 남성이고, 역사적으로 건축계가 남성 위주였던 점을 고려하면 여성 듀오 건축가의 이번 수상 의미는 크다. 여성 건축가로는 2004년 이라크 출신의 자하 하디드가 처음 받았고, 이후 남성 건축가들과 함께 설계사무소를 운영하는 일본 건축가 세지마 가즈요(2010년), 스페인 건축가 카르메 피엠(2017년) 등이 받은 바 있다.
 
프리츠커 회장은 파렐과 맥나마라에 대해 “지난 40여년간 건축가와 교육자로서 첨단 기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도시환경과 역사를 존중하며 새로운 공간을 창조해왔다”고 찬사를 보냈다. 이어 “건축물과 지역의 맥락을 살리고 힘과 섬세함의 균형을 조율하며 자신의 건축적 목소리를 내는 영향력 있는 작품을 빚어왔다”고 덧붙였다.
 
두 사람은 1974년 더블린 UCD 건축대학원에서 만났다. 1976년 졸업과 함께 각각 모교에서 강의를 시작, 2015년 부교수로 임용됐다. 1978년 파렐과 맥나마라는 다른 3명과 사무실이 있던 거리의 이름을 따 설계사무소 ‘그래프턴 아키텍츠(Grafton Architects)’를 설립했다. 나중엔 파렐과 맥나마라만 남았다.
 
영국 런던의 킹스턴대 타운하우스홀. [사진 하얏트재단]

영국 런던의 킹스턴대 타운하우스홀. [사진 하얏트재단]

이들은 노스 킹 스트리트 하우징(2000, 아일랜드)등 주택도 설계했지만, 후에 아일랜드 도시 연구소, 로레토 커뮤니티 스쿨(2006, 아일랜드), 리머릭 대학교 의과대학(2012, 아일랜드) 등 교육기관을 많이 설계했다.
 
국제무대에서 주목받은 것은 2008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 건축 축제에서였다. 여기서 두 사람은 밀라노의 유니버시타 루이지 보코니(Milan, 2008) 프로젝트로 ‘올해의 세계 건축상’을 수상했다. 그 후 세계 각지에서 대형 프로젝트가 그들을 찾아왔다. 그 중 이들이 작업한 페루 리마 공과대학 캠퍼스(2015)는 “현대식 마추픽추”(뉴욕타임스)라 불린다. 특이한 지형 조건을 섬세하게 수용한 이 작업으로 두 사람은 2016년 영국 왕립건축가협회(RIBA)의 제1회 국제상을 받았다. 두 사람이 총감독을 맡은 2018년 제16회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에서는 “우리는 지구를 의뢰인으로 본다. 이는 오래 이어지는 책임을 수반한다”는 말로 건축 철학을 설명했다.
 
’현대식 마추픽추“라 불리는 페루 리마대 공과대학. [사진 하얏트재단]

’현대식 마추픽추“라 불리는 페루 리마대 공과대학. [사진 하얏트재단]

이번 심사위원들은 특히 두 사람의 ‘장소에 대한 깊은 이해’를 평가했다. “예리한 관찰력으로 건축물이 지어질 장소, 그것이 수용할 기능, 특히 그곳에 거주할 사람들을 위해 최고의 건축 품질을 일관되게 추구해왔다”고 말했다. 이어 “문화와 문맥을 존중하며 현대적이면서도 환경과 도시에 조화를 이루는 건축물을 선보여왔다”고 했다.
 
영국일간지 가디언도 “맥나마라는 건축을 ‘인간의 삶을 위한 틀’이라고 말해온 건축가”라며 “그들이 설계한 건물엔 환기가 잘 되는 아트리움, 널찍한 계단, 어슬렁거릴 수 있는 장소 등이 많다. 건축이 줄 수 있는 ‘무료 선물’을 풍부하게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이번 수상을 두고는 “그 간 프리츠커상에 존재한 커다란 성 불균형을 바로 잡는 작은 발걸음”이라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두 사람은 페루 리마의 캠퍼스를 설계할 때 바람과 비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깊이 고민했다”면서 “두 사람의 프리츠커상 수상은 자연적 요소에 대한 감수성과 협업 강조 등 자질 때문”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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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나마라는 수상 소식에 “우리에게 설계를 의뢰해 우리가 꿈꾼 건축물이 실현될 수 있게 해준 사람들의 야망과 비전이 인정받아 기쁘다”며 “건축은 일상을 매만지는 것이며, 시각적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프리츠커상은 생존 건축가를 대상으로 매년 수여된다. 상금은 10만 달러(약 1억2000만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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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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