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코로나 경증환자 입소 앞두고···경산 주민들 밤새 입구 봉쇄

중앙일보 2020.03.04 13:17
4일 오후 4시쯤 찾은 경북 경산시 경북학숙 정문은 인근 주민들이 설치한 텐트와 "우리 아이들을 지켜주세요" "코로나 생활치료센터 지정 반대"라는 문구가 쓰인 현수막으로 가로막혔다. 이날 오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경증 환자들을 실은 구급차가 이곳 정문을 통과할 예정이었다.
4일 경북 경산시 경북학숙 인근 주민들이 코로나 19 생활치료센터 지정에 반대하며 경북학숙 출입문을 막고 있다. 진창일 기자

4일 경북 경산시 경북학숙 인근 주민들이 코로나 19 생활치료센터 지정에 반대하며 경북학숙 출입문을 막고 있다. 진창일 기자

 

경북 경산의 경북학숙
3일 생활치료센터 지정
인근 주민들 "결사반대"
입구서 차량 진입 저지

한 주민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물어본 적 없이 경북학숙을 코로나 19 환자 격리 시설로 지정해 버렸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주민들이 내건 현수막에는 '초등학교 100m, 500m 이내 65세 이상 4000명'이란 글도 함께 쓰여 있었다.
 
주민들은 "경북학숙 인근에 사는 65세 이상 어르신이 4000명, 초등학생 등 미성년자가 2000명인데 여기에 코로나 19 환자 격리 시설을 만든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고 입을 모았다. 이날 모인 주민만 100~200여 명, 퇴근 시간이 되면 더 많은 주민이 올 것이라고 했다.
4일 경북 경산시 경북 학숙 인근 주민들이 생활치료센터 지정에 반대하며 경북 학숙 출입문을 막고 있다. 진창일 기자

4일 경북 경산시 경북 학숙 인근 주민들이 생활치료센터 지정에 반대하며 경북 학숙 출입문을 막고 있다. 진창일 기자

 
주민들은 지난 3일 오후 4시쯤부터 경북학숙 정문 앞에 자리를 잡았다. 뉴스를 통해 경북학숙이 코로나 19 경증환자를 격리하기 위한 '생활치료센터'로 지정됐다는 말을 듣고 주민이 스스로 모여들었다고 한다.
 
경북학숙 인근 주민들은 밤새 정문을 지켰다. 농성장에는 추위를 피할 이불과 난로, 생수, 컵라면, 끓인 물을 담은 온수통도 있었다. 한 주민은 "여기 있는 물건들은 무슨 단체가 가져다준 것이 아니라 이곳을 지키다 출근 때문에 더는 못 지키는 사람들이 고생한다며 놓고 간 것들이다"고 했다.
4일 오후 4시쯤 경북 경산시 경북 학숙 맞은편 버스정류장에 햇볕에 몸을 녹이려는 주민들이 모여 있다. 진창일 기자

4일 오후 4시쯤 경북 경산시 경북 학숙 맞은편 버스정류장에 햇볕에 몸을 녹이려는 주민들이 모여 있다. 진창일 기자

 
농성장 맞은편 버스정류장에는 그늘진 텐트에서 떨다 몸을 녹이러 자리를 옮긴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날 오후 2시쯤 경북도에서 코로나 19 확진자를 실은 응급차가 온다는 소문을 듣고 수십명의 주민이 더 몰려와 정문을 지키다 몇 시간이 흐른 뒤 자리를 비웠다.
 
경북학숙 인근 주민들은 경북도와 경산시가 경북학숙의 생활치료센터 지정 의지를 굽힐 때까지 "텐트를 치우지 않겠다"고 했다.
 
배선영(40.여) 봉황초등학교 학부모회장은 “주민들은 생활권을 고려 않고 아파트 5000세대와 초등학교 바로 옆에 코로나 19 격리시설을 지정하고 통보한 것에 화가 나 있다”며 “격리 시설 바로 옆 초등학교 정문은 유치원 차량이 아이들을 싣고 가는 곳인 데다 상가와 학원도 많아 통행이 잦다”고 했다.
 
주민들은 자신들을 향한 부정적인 여론도 알고 있었다. 배선영 회장은 “우리들의 행동을 ‘님비 현상’이라고 하는 것도 알고 있다”며 “개인적으로 환자들에게 송구하고 저 또한 환자가 될 수 있지만, 학교와 주거지 옆 격리시설은 문제다”고 했다.
 
4일 경북 경산시 진량읍 경북학숙 .주민들은 학숙에서 100m가 안 되는 곳에 초등학교가 있고 주변이 아파트 밀집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당국에서 아무런 사전논의나 공지 없이 생활치료센터 지정을 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연합뉴스.

4일 경북 경산시 진량읍 경북학숙 .주민들은 학숙에서 100m가 안 되는 곳에 초등학교가 있고 주변이 아파트 밀집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당국에서 아무런 사전논의나 공지 없이 생활치료센터 지정을 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북학숙은 지난 3일 경북 지역의 생활치료센터로 지정됐다. 생활치료센터는 병상 부족으로 중증 환자가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 증상이 적은 경증 환자들을 수용해 모니터링하고 치료할 수 있도록 보건당국에서 지정한 시설이다. 경북도내 30곳이 있다. 
 
경북학숙은 경북 내 30곳(767실) 생활치료센터 중에서도 151실로 가장 수용 가능 인원이 많은 곳이다. 경산 지역 코로나 19 환자는 4일 오전 0시 기준 288명으로 전국에서 대구 다음으로 많다. 증가세도 가팔라 하루 동안에만 59명이 증가했다. 같은 기준 경북 전체 확진자는 725명이다. 
 
주민들이 농성하며 경북학숙 입구를 봉쇄하면서 경증 환자 치료를 위해 필요한 의료물품, 생필품 등도 생활치료센터 내부로 들여보내지 못했다. 현재 경산시는 코로나 19가 급격히 확산한 뒤로 주민들의 집회 등을 금지하고 있다. 
 
최영조 경산시장이 지난 밤 내내 경북학숙 앞에서 농성하는 주민들을 설득했으나 실패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산시청 관계자는 “시장님이 ‘같은 경산 주민들이 입소할 예정이다’며 밤을 새우고 설득했다”며 “그래도 안 돼서 지금 부시장님이 현장으로 가셨다”고 전했다.
 
4일 경북 경산시 진량읍 경북학숙 입구에서 주민들이 생활치료센터 지정을 반대하며 출입구를 막고 있다. 연합뉴스.

4일 경북 경산시 진량읍 경북학숙 입구에서 주민들이 생활치료센터 지정을 반대하며 출입구를 막고 있다. 연합뉴스.

경북도는 “최대한 주민들을 설득한 뒤 경북학숙에 경증 환자들을 입소시키겠다”는 입장이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이날 오전 11시 브리핑에서 “생활치료센터에 대해 많은 주민이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며 “그런데 현재 코로나 19 환자들을 치료 중인 포항·안동 등 의료원도 모두 도시 중심에 있으며 주변에 전염시킨 사례가 없다”고 했다.
 
생활치료센터는 의학적으로도 주변에 감염을 시킬 가능성이 거의 없다. 이관 경북도 감염병관리단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과학적으로 볼 때 코로나 19 바이러스는 비말(침방울)로 감염되기에 공기 감염은 제한적이고, 아주 밀도 있는 실내에서만 공기 감염을 일으켜 주위 환경 오염이나 전염을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 도민들이 시민들이 우리 지역에 있지 않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이런 점을 생각해 달라. 과도한 불안은 필요 없다”고 호소했다.
 
경산=백경서·진창일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