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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부러웠다, 부부싸움 하면 쏙 들어가 숨는 집 구석 작은 쪽방

중앙일보 2020.03.04 07:00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130) 

 
코로나바이러스의 침범으로 너나없이 창살 없는 감옥 생활이다. 만나서 대화하고 차 한 잔 마시던 소소한 일상들이 참 소중한 거였구나 느껴진다. 답답하지만 작은 공간에서도 웃음을 만들던 기억을 꺼내 그려본다.
 
오래전 지인의 주택을 방문했을 때 재밌는 방을 보았다. 다용도실 같은 방인데 혼자서 누워 쉴 수 있고 명상할 수 있는 한 평쯤 되는 공간이었다. 일부러 만들었다고 한다. 어찌 보면 감옥의 독방 같기도 하고 조용히 기도할 수 있는 방 같아 신기했다. 싸우고 난 후 혼자 씩씩거리거나 때론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이란다. 하필 부부싸움 후 갈 곳이 없어 방문한 터라 그 쪽방에서 차 대접을 받았다. 딱 한명만 누울 수 있지만 사이가 좋을 땐 둘이 누워도 넉넉한 방. 가끔은 스스로를 가두고 싶은 곳.
 
시골로 이사를 내려가 구한 집은 세 칸이 일 열로 줄 선 듯 나란히 붙어 있는, 소 마구간이 부엌에 함께 있는 초가삼간이었다. 키 큰 사람은 지붕을 이고 서 있어야 할 만큼 천장이 낮았다. 그 집은 복을 부르는 집이라며 동네 사람이 자랑했다. 그 집을 손수 지은 사람이었다. 산에서 황토를 지고 날라 블록을 찍고 말려서 오랜 시간 지었으니 혼이 다 들어간 집이었다. 벽이랑 모든 것이 울퉁불퉁했지만 정감이 갔다.
 
설계도를 그려놓고 돌과 황토를 조금씩 지고 날라 만든 작은 방. 남들이 모두 혀를 차는 우스운 방이었지만 손수 만든 그 집은 아무리 봐도 흠잡을 데 없이 멋있었다.[사진 Pxhere]

설계도를 그려놓고 돌과 황토를 조금씩 지고 날라 만든 작은 방. 남들이 모두 혀를 차는 우스운 방이었지만 손수 만든 그 집은 아무리 봐도 흠잡을 데 없이 멋있었다.[사진 Pxhere]

 
그중 한 칸은 큰방에 붙은 쪽방인데 너무 작아서 그 용도가 무엇이었을까 궁금했다. 아마도 온갖 잡동사니를 넣어 두려고 만든 다용도실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전에 경험한 쪽방 생각에 내 방으로 찜해놓고 시간이 나면 고쳐봐야지 하며 눈여겨 봐두었다.

 
우리 부부는 그 집을 손수 지었다는 아랫집 부부네 방 하나를 빌려 오르락내리락하며 집을 고쳤다. 동네마다 한 사람씩 남을 위해 사는 사람이 있듯이 방 한 칸을 내어준 그 부부도 그런 사람이었다. 밥도 얻어먹고 집 고치는 일도 도와주었다. 그들은 친구가 생긴 게 더 좋다며, 품값을 계산하려면 화를 냈다. 훗날 작은 선물로 인사를 하긴 했지만 고마움에 비해 너무 약소해서 생각도 안 난다.
 
병의 완화 겸 휴양 차 내려온 거라고 했더니 오랜 산속 생활에 이력이 있는 그는 황토 바닥에 솔가지를 가득 넣어서 그 위에 가마니 같은 거적을 깔고 또 장판을 깔게 했다. 두꺼운 이불을 깔고 누워도 울퉁불퉁했지만 푹신 거리는 맛에 좋았다.
 
불을 때고 자리에 누우면 솔잎 냄새가 은은히 났다. 마치 통닭을 황토에 싸서 불가마에 넣은 듯 솔향과 함께 누룽지 같은 냄새도 났다. 자고 나면 우리가 찜닭이 되든가 통닭이 되든가 할 것 같다며 웃었다.
 
 
며칠 후 아랫집 남자가 올라오더니 군불을 때면 셋방까지 뚫려 있으니 시간 날 때 작은방도 고쳐서 써 보라고 했다. 살다 보면 사이가 좋을 때만 있는 게 아니니 가끔 서로 쳐다보기도 싫을 때, 건넌방은 꼭 필요했다. 우리는 설계도를 그려놓고 돌과 황토를 조금씩 지고 날랐다. 가을이 되니 작은 방이 또 하나 생겼다. 남들이 모두 혀를 차는 우스운 방이었지만 손수 만든 그 집은 아무리 봐도 흠잡을 데 없이 멋있었다. 건설업이 따로 있나 내가 건설을 하면 건설업자다. 이 경험으로 지금 사는 집도 손수 지었으니 경험이 재산이다.
 
가끔 토라져 갈 곳이 없을 때, 기도하고 싶을 때, 밤새도록 냉전이 오가기도 할 때, 그 방은 좋은 장소를 제공해 주었다. 평생 적군이었던 남편은 때때로 화해의 수단으로 긴 장작을 깊숙이 밀어 넣고 흠흠 기침을 하며 슬그머니 들어왔다.
 
“마님, 주무시는 방바닥이 따신가 하고요….”
그러면 나는 장희빈이 삐친 것 같은 표정으로 말하곤 했다.
“이러시면 아니 아니, 되옵니다…. (ㅎㅎ)”
 
살다 보면 때론 큰 상처를 남기는 전쟁도 치르지만 화해도 쉽게 한다. 그럴 때 그곳은 유용한 밀실이 되어주었다. 요즘 같은 시기에 오랫동안 혼자 있어 보면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놀이인지를 느낀다.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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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옥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필진

[송미옥의 살다보면] 요양보호사 일을 하다 평범한 할머니로 지낸다. 지식은 책이나 그것을 갖춘 이에게서 배우는 것이지만, 인생살이 지혜를 배우는 건 누구든 상관없다는 지론을 편다. 경험에서 터득한 인생을 함께 나누고자 가슴 가득한 사랑·한·기쁨·즐거움·슬픔의 감정을 풀어내는 이야기를 쓴다. 과거는 억만금을 줘도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다는 말처럼 이웃과 함께 남은 인생을 멋지게 꾸며 살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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