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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지식인의 분열] '친노·반문'의 탄생···조국 그후, 정권 수호자들이 돌아섰다

중앙일보 2020.03.04 05:00 종합 20면 지면보기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뉴스1]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뉴스1]

구독자수 11만 명이 넘는 정치 평론 유튜버인 유재일(45)씨는 자신의 정치 성향을 ‘친노(親盧)ㆍ반문(反文)’으로 규정했다. 한때 문재인 대통령의 수호자를 자처했던 그의 유튜브 채널엔 이젠 현 정부를 비판하는 콘텐트로 가득하다. 지난달 26일 동영상에서 유씨는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온 문재인 대통령 탄핵 청원을 소개하고, 문 대통령 지지자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을 신천지 탓으로만 돌린다고 비판했다.   
 

진중권 “문 정권, 노무현 정신 배반”
유튜버 유재일 “파시즘적 정부 돼”
선거개입 등 거치며 반정부 굳어져

“80년대 단일대오 민주진보 세력
40년 뒤 다양한 스펙트럼 불가피”
서민 “가짜 진보 걸러지는 과정”

한때 진보 지식인의 대표 인사였던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왼쪽)과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잔 전 교수는 지난 22일 ‘보수 정당에서 세종대왕이 나와도 안 찍어’라고 발언한 유 이사장 관련 기사를 공유하면서 ’철이 없다“고 비판했다. 이처럼 한때 팟캐스트인 ‘노유진의 정치카페(노회찬-유시민-진중권)’에서 출연했던 두 사람은 요즘 공개설전을 벌이고 있다.[중앙포토]

한때 진보 지식인의 대표 인사였던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왼쪽)과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잔 전 교수는 지난 22일 ‘보수 정당에서 세종대왕이 나와도 안 찍어’라고 발언한 유 이사장 관련 기사를 공유하면서 ’철이 없다“고 비판했다. 이처럼 한때 팟캐스트인 ‘노유진의 정치카페(노회찬-유시민-진중권)’에서 출연했던 두 사람은 요즘 공개설전을 벌이고 있다.[중앙포토]

 
이처럼 문재인 정부에 대한 진보 지식인 그룹의 균열이 가속화하고 있다. 단연 선두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다. 김경률 전 참여연대 집행위원장, 권경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 변호사, 임미리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 등도 대표적인 이탈자로 꼽힌다.
 
이들의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했지만, 지난해 조국(曺國) 정국을 거치면서 현 정부와 멀어지더니 최근엔 완연히 비판자로 돌아섰다는 공통점이 있다. 진 전 교수는 지난달 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문재인은 노무현이 아니다. 문재인 정권은 노무현 정신을 배반했다. 철저히, 아주 철저히”라고 적었다.
 
왜 돌아섰을까. 유씨는 “문재인 정부가 대단히 파시즘적”이라며 “이를 막기 위해 반문이 됐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결정적 계기로 ‘조국 사태’를 짚었다.
 

왜 ‘조국 사태’인가

김경률 전 참여연대 집행위원장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로 진보의 민낯이 드러났다”고 했다. 그는 “조 전 장관을 옹호하는 세력은 위선이란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며 “권력과 이권을 매개로 현 정부와 동료의식을 가졌다”고 꼬집었다.
 
지난해 8월 23일 당시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딸의 대학 입학 과정에 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시위가 고려대 중앙광장에서 대학별로 열렸다. [뉴스1]

지난해 8월 23일 당시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딸의 대학 입학 과정에 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시위가 고려대 중앙광장에서 대학별로 열렸다. [뉴스1]

 
유씨는 “조 전 장관을 옹호하는 논리는 한마디로 ‘우리끼리 왜 이래’”라며 “전형적인 조폭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유씨와 함께 유튜브 활동을 하는 김봉수 성신여대 법학과 교수는 “진보로 자처한 이들은 그간 보수의 문제를 맹렬히 비난했다. 그들의 원래 기준대로라면 조 전 장관이 사퇴해야 하며, 문재인 대통령도 사과해야 한다”며 “그럼에도 조 전 장관을 옹호하는 것은 ‘내 편’이란 논리말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조국 사태’가 한창이던 지난해 8~10월, 조 전 장관 비판에 가세했던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는 “이들(진보 진영)이 원하는 건 정의가 아니라 ‘우리 편이 정권을 잡는 것’ 아니었나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후 유재수 무마 의혹, 울산 선거 개입 의혹, 추미애 검찰 인사, 김미리 고발 사태 등이 이어지며 일부 진보 인사와 친문 지지층 사이의 간극은 더 벌어졌다.
 
대표적인 진보학자인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지난해 12월 9일 학술회의 기조강연에서 “민주화를 주도했던 운동세력들의 다수가 ‘운동론적 민주주의관’의 경향을 보인다”면서 “군부 독재라는 ‘절대악’이 분명했던 과거 경험에 따라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선과 악 등의 대립 항을 통해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표적 사례로는 조 전 장관의 대담집 『진보 집권플랜』을 언급하면서 “진보 대 보수, 개혁 대 수구 등 확실한 구분과 치열한 투쟁, 권력 쟁취를 지향하는 경향이 독일 정치철학자 칼 슈미트의 정치이론과 깊숙이 접맥된다”고 지적했다. 칼 슈미트는 나치에 중요한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 학자로 평가된다.
 
지난해 11월 27일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이 금융위원회 재직 당시 업체들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를 받의로 법원의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그는 이날 구속됐다. [뉴스1]

지난해 11월 27일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이 금융위원회 재직 당시 업체들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를 받의로 법원의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그는 이날 구속됐다. [뉴스1]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로 유명한 원로 진보 지식인 홍세화씨도 최근 기고문에서 “자유한국당 세력이 오랜 동안 ‘자유’라는 말을 능멸해왔다면, 민주당은 ‘민주’라는 말을 능멸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찐’ 진보 vs. ‘짭’ 진보

일각에선 진보의 분화는 불가피하다는 진단도 나온다. 1980년대 군사정부에 대항하며 하나의 단일대오를 형성했던 ‘민주진보’ 세력이 이후 40여년이 흐르면서 다양한 스펙트럼을 형성하게 됐다는 거다. ‘찐(진짜를 뜻하는 속어)’ 진보와 ‘짭(가짜)’ 진보로 부르기도 한다.

 
지난해 8월 27일 서울 강남구의 한 빌딩에서 검찰 관계자들이 당시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가족이 투자한 사모펀드 운용사 코링크프라이빗에쿼티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일부 진보 지식인은 조 전 장관 부부의 사모 펀드 의혹에 대해 '강남 좌파'의 전형적인 이중 행태라고 비판하고 있다.  [연합]

지난해 8월 27일 서울 강남구의 한 빌딩에서 검찰 관계자들이 당시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가족이 투자한 사모펀드 운용사 코링크프라이빗에쿼티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일부 진보 지식인은 조 전 장관 부부의 사모 펀드 의혹에 대해 '강남 좌파'의 전형적인 이중 행태라고 비판하고 있다. [연합]

 
‘아웃사이더’ 등의 매체를 발행하며 90년대 후반부터 진보적 목소리를 냈던 김규항 작가는 “한국에선 시장 경제를 인정하면서도 자유주의 개혁을 추구하는 개혁그룹과 자본주의의 대안을 모색하는 좌파진영을 뭉뚱그려 ‘진보’라고 통칭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개혁그룹은 좌파진영과 연대를 주장했는데, 나중에 대중성을 잃은 좌파진영을 흡수하다시피 한 뒤 진보의 대표로 나섰다”며 그 대표적 이를 조국 전 장관으로 꼽았다. 조 전 장관 등이 현실 정치에 깊숙하게 개입하는 등 진보의 간판으로 자리매김하면서 기존 진보·좌파 세력이 뒤전으로 밀려났다는 의미다.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는 “민주당을 중간값으로 하면 그보다 왼쪽에 위치한 사람들은 사실 조국 전 장관에 대해 비판적이었다”고 말했다.
 
6·25 전쟁을 겪고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한국에서 좌파·진보는 본래 소수였다. 진보의 제도권 진출은 1958년 조봉암을 대선 후보로 내세웠던 진보당 해산 사건 이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이들이 다시 고개를 든 건 1987년 대통령 선거부터다. 당시 백기완 후보가 민중후보를 자임하며 좌파·진보의 대표로 나섰고, 대학 운동권의 주류였던 민족해방(NL) 계열이 대거 합류했다. 반면 민중민주(PD) 계열은 현실 정치에 참여보단 현실 노동운동으로 향했다.
 
이후 92년, 97년 대선은 또 하나의 분기점이 됐다. 권영길 후보와 김대중 후보에 대한 지지를 놓고 분화가 일었다. 당시 김민석·이인영·우상호 등 과거 학생 운동권 출신이 김대중 후보 진영에 합류하면서 ‘386그룹’은 제도권 정치에 빠르게 유입됐다. 이후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상당수 진보 인사들이 정부 요직에 발탁됐고, 진보 진영은 보수진영에 대항하는 또다른 거대한 권력 블록을 형성하게 됐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권력화된 진보 진영 내부에선 자신들의 고유한 가치를 지키는 것보다 권력쟁취와 기득권 방어를 더 우선시하는 풍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유재일씨는 “일부 진보 지식인은 정부가 주는 지원금에 철저히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그들이 자신을 종종 일컫는 ‘어용 지식인’이란 토로는 솔직히 농담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같은 권력화된 진보 인사들의 행태는 진보의 고유가치를 중시하는 그룹과 갈등을 야기했고, 급기야 지난해 조국 사태를 계기로 파열음이 외부로 터져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강남 좌파’의 등장은 진보 진영의 속사정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일찌기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사회의 진보적 이념, 프롤레타리아적 의식을 지닌 고학력, 고소득 계층’을 강남 좌파라고 칭했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처음엔 ‘강남 좌파’가 사회의 다양성을 충족시킨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했다”면서 “조 전 장관과 정경심 교수를 보며 강남 좌파도 결국 기존 기득권 세력처럼 철저히 자식사랑과 세습만을 지키려했다는 걸 알게됐다”고 말했다. 김규항 작가는 “강남 좌파는 물려받은 경제력은 자본가 그룹보다 상대적으로 적겠지만, 문화·상징 자본을 챙기면서 우월적 지위를 획득했다"고 말했다.
 
2012년 4월 8일 당시 총선에 나간 민주통합당 김용민 노원갑 후보가 서울광장에서 열린 팟캐스트 '나꼼수' 번개에 참석했다. 지지자들이 성원을 보내고 있다. 이처럼 2010년대 팟캐스트 등 뉴미디어가 진보 진영에서 세를 얻었다. [중앙포토]

2012년 4월 8일 당시 총선에 나간 민주통합당 김용민 노원갑 후보가 서울광장에서 열린 팟캐스트 '나꼼수' 번개에 참석했다. 지지자들이 성원을 보내고 있다. 이처럼 2010년대 팟캐스트 등 뉴미디어가 진보 진영에서 세를 얻었다. [중앙포토]

 

386에 철퇴

 

진보의 분화는 조국 반감에 의한 일시적 현상일까.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많다. 김규항 작가는 “진보 지식인 사이엔 이념이 없었고, 정념(政念)만이 남았다”고 비판했고, 우석훈 교수는 “진보 진영의 분열은 발전이 아니라 퇴행”이라고 했다. 반면 서민 교수는 “분화가 가짜 진보가 걸러지는 과정”이라고 했고, 채진원 교수는 “구진보가 생명을 다하고 신진보로 나아가는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친노반문의 공통된 지적은 386세대를 향한 날 선 비판이었다. 김경률 전 집행위원장은 “진보의 분열이 아니라 가짜 진보의 멸망”이라면서도 “386(86세대)으로 명명한 진보의 실상은 이제 끝이다. 더 이상의 생명력은 없고 발언권도 없애야 한다”고 비판했다. 유재일씨는 “대표적 386 인사의 자식들이 학비가 10만달러가 넘는 미국 명문대에 유학하면서도 교육 평등을 외치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라며 “386은 1980년대 20대에 머물렀다. 30대, 40대, 50대로 성장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이철재·유성운·김민상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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