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소문 포럼] 사회적 약자들의 죽음

중앙일보 2020.03.04 00:25 종합 24면 지면보기
김창규 경제 디렉터

김창규 경제 디렉터

‘63세. 남성. 몸무게 42kg. 20년 넘게 폐쇄병동 생활. 가족 등 연고(緣故)가 없음.’
 

‘약자의 편’에 선다는 정부서
바이러스 방역, 마스크 수급 등
코로나19 정책의 잇단 실패로
소외계층이 가장 큰 타격 받아

지난달 19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세상을 떠난 첫 번째 사망자에 대한 정보다. 청도대남병원 정신과 폐쇄병동에서 20여년 넘게 생활한 그는 자신이 어떤 병에 걸렸는지도 모르고(사후 확진), 슬퍼하는 가족도 없이 쓸쓸히 세상과 작별했다.
 
이 병원에 입원 중이던 55세 여성은 폐렴 증세가 급격히 나빠져 음압 병상이 있는 더 큰 병원으로 이동해야 했다. 절체절명의 순간이었지만 그는 병원을 나서며 “바깥나들이를 하니 기분이 너무 좋다”고 말했다고 한다. 폐쇄병동에 오래 생활하다 보니 앰뷸런스에 누워서라도 바깥나들이를 해보는 게 짧은 순간이나마 행복이었던 듯하다. 하지만 그 나들이가 마지막이 됐다. 음압 병상이 있는 병원을 찾아 오랜 시간 이동한 끝에 병원에 도착했지만 호흡곤란으로 숨을 거두었다. 그는 이렇게 코로나19의 두 번째 희생자가 됐다. 슬픈 죽음이다.
 
3일 현재 이 병원 폐쇄병동에 입원했다가 코로나19로 목숨을 잃은 환자는 7명이다. 코로나19 사망자 31명의 23%에 달한다. 이 병원 환자 대부분은 가족이 없거나 가족이 있어도 관계가 단절된 무연고자다. 돌보는 사람이 사실상 병원 관계자뿐인 이들은 한국 사회에서 약자 중의 약자다.
 
세상과 단절된 채 경상북도 청도에 살던 이들에게 저 머나먼 곳, 중국 우한(武漢)에서 발생한 바이러스가 어떻게 스며들었을까.
 
서소문포럼 3/4

서소문포럼 3/4

방역의 실패다. 지난해 말 중국 우한 지역에서 발병하기 시작한 코로나19는 올해 1월부터 중국 주요 지역으로 확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달 초에야 후베이·우한 지역만 입국을 금지했다. 중국 정부가 이 지역을 봉쇄하기 전 이미 500여만명이 이 지역을 떠난 뒤였다. 바이러스를 품은 중국인 등이 중국뿐 아니라 한국을 오가며 곳곳에 바이러스를 퍼트릴 수밖에 없다. 한국은 그래도 중국 전역에 대한 입국을 금지하지 않았다. 뒷북 정책이다.
 
이들이 입원했던 폐쇄병동은 여러 명이 함께 생활하는 온돌방 형태다. 폐쇄병동 특성상 바이러스가 침입하기 어렵다. 하지만 일단 침입했다 하면 바이러스가 환자 대부분을 집어삼킬 수 있는 구조다. 오랜 병원 생활로 면역력이 약해진 환자에겐 코로나바이러스가 치명타가 됐을 것이라고 전문가는 진단한다. 결국 이 병원 입원환자 100여명 대부분이 코로나19 환자가 됐다.
 
정부 대책은 ‘뒷북’의 연속이었다. 한국 정부는 발병 초기 중국인에게 출입국 빗장만 열어놓지 않았다. 곳곳에서 마스크가 부족하다고 지적했지만 중국으로의 마스크 수출문은 활짝 열어놨다. 정부는 초기에 환자 수가 많이 늘지 않아서인지 중국으로의 마스크 수출이 수백 배 늘어도 뒷짐만 지고 있었다. 심지어 지방자치단체가 너도나도 중국에 마스크를 지원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대구·경북지역에서 갑자기 확진자 수가 급증하고 마스크가 부족하다며 아우성치자 정부는 허둥지둥하기 시작했다. 마스크 수급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던 정부는 사재기를 엄벌하겠다고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일회용 마스크 국내 하루 생산량(약 1000만장)의 절반가량을 정부가 우체국 등을 통해 공급하겠다고 하니 혼란은 가중됐다. 유통업체를 통해 풀린 물량은 절반으로 줄었고 마스크 5장이라도 사려고 오랜 시간 줄 서고도 허탕을 치는 경우가 많았다. 오히려 구하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불만도 터져 나온다.
 
거동이 불편하고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은 독거노인 등은 마스크를 사려 줄을 설 수도, 생필품을 온라인으로 주문할 수도 없다. 바이러스에 무방비 상태인 셈이다. 이젠 코로나19 확진자가 병원 문턱을 넘어서지도 못하고 숨지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대부분이 소외된 계층이다.
 
둑은 무너질 때 가장 약한 곳부터 무너진다. 코로나19라는 태풍 속에서 정책 실패의 대가는 고스란히 사회적 약자에 가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약자의 편에 서겠다고 공언했다. 약자의 죽음은 누가 보상할 것인가. 위기관리의 본질은 신뢰에서 시작한다. 정부는 이들에게 신뢰를 주는가.
 
김창규 경제 디렉터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