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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땐 소송 갔다, 코로나 사망 무조건 화장에 유족 피눈물

중앙일보 2020.03.03 11:40
국내 14번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망자 이모(70)씨의 빈소가 29일 대구가톨릭대학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연합뉴스]

국내 14번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망자 이모(70)씨의 빈소가 29일 대구가톨릭대학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에 감염돼 사망한 29명의 사망자(3일 기준)의 시신 처분 권한은 누구에게 있을까. 사망한 환자의 유가족은 이들의 시신에 관한 장례와 장사(葬事)의 권한을 갖고 있을까. 
 
2015년 12월 개정된 '감염병예방및관리에관한법률(감염병예방법)'에 따르면 코로나19 사망자 시신의 장사 권한은 유족이 아닌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있다. 개정된 감염병예방법엔 코로나19나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등으로 사망한 감염병 환자의 시신은 '화장(火葬)이 현저하게 곤란한 경우'가 아니면 추가 감염을 막기 위해 화장으로만 처리하게 돼있다. 이 조항으로 코로나19 유가족들은 부모와 가족의 제대로 된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화장 절차를 지켜만 봐야 한다. 
 
전국 코로나19 사망자 추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전국 코로나19 사망자 추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시신 화장, 메르스 소송 있었다 

2015년 메르스로 남편을 잃었던 한 아내는 이런 정부의 조치가 부당하다며 소송을 걸었다. 당시엔 감염병 사망자 시신 처분에 관한 구체적 법률 조항도 없었지만 정부는 '감염병 차단'을 강조하며 메르스 사망자들의 시신을 모두 화장 처분했다. 
 
메르스 80번 환자 A씨의 유가족들은 "정부가 법률적 근거 없이 메르스 환자 시체의 부검을 금지하고 시체를 화장 처리한 것은 망인과 유족의 시체에 관한 자기 결정권을 침해한 것으로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A씨 사망에 대한 정부와 의료기관의 과실을 물어 총 3억원을 청구한 손해배상 소송의 쟁점 중 하나였다.  
 
지잔달 18일 80번 메르스 환자의 유가족 법률대리인인 이정일 변호사가 서울중앙지법에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80번 환자의 유족들이 국가, 삼성서울병원, 서울대학교병원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재판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잔달 18일 80번 메르스 환자의 유가족 법률대리인인 이정일 변호사가 서울중앙지법에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80번 환자의 유족들이 국가, 삼성서울병원, 서울대학교병원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재판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法 '시신화장 감염병 차단 조치'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8부(심재남 부장판사)는 지난달 18일 판결에서 정부가 구체적 법률 근거 없이 A씨의 시신을 화장 처분한 사실은 인정했다. 감염병예방법의 관련 조항이 A씨 사망 한달 뒤에 신설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원은 "정부가 망인의 시체를 화장으로 처분한 것은 감염병의 차단과 확산을 방지해 유족과 일반 시민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유가족의 동의를 받았을 가능성도 높다고 봤다. 
 
시신에 대한 망인과 유가족의 자기결정권이란 개념은 판사들 사이에서도 다소 생소한 법적 개념이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이 문제에 관해 각각 2008년과 2015년에 판결과 결정을 내놨는데 결이 다소 다르다. 대법원은 시신에 대한 망인의 자기결정권을 좁게 해석했고, 헌법재판소는 상대적으로 넓게 봤다. 
 

시신 처분에 관한 대법과 헌재의 판단  

대법원은 2008년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장례 절차에 관한 망인의 생전 유언은 도의적으로 존중돼야 하지만 자녀가 이에 따라야 할 법적 의무는 없다고 판단했다. 자신의 시신에 대한 망인의 결정권을 제한해 본 것이다. 이에 따라 소송에서 승소한 최모씨는 이복형제들로부터 아버지의 시신을 돌려받게 됐다.  
 
3일 오전 대전시 서구 둔산동 한 약국에서 시민들이 코로나19 예방용 마스크 구입을 위해 약국이 열자마자 몰려들고 있다. 약국에서 판매하는 수량은 20매로 한정돼 문을 열자마자 동났다. [연합뉴스]

3일 오전 대전시 서구 둔산동 한 약국에서 시민들이 코로나19 예방용 마스크 구입을 위해 약국이 열자마자 몰려들고 있다. 약국에서 판매하는 수량은 20매로 한정돼 문을 열자마자 동났다. [연합뉴스]

반면 헌법재판소는 2015년 무연고자 시신을 의과대학에 해부용으로 제공하는 '시체해부법 조항'을 위헌이라 결정했다. 헌재는 "생전 의사와 무관하게 해부용으로 시신을 제공하는 것은 자기결정권 침해"라며 자신의 시신에 대한 망인의 자기결정권을 넓게 해석했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이동진 교수는 "시신의 자기결정권에 관한 문제는 아직 학계와 법조계에서도 명확한 결론이 나오지 않고 의견도 엇갈리는 상황"이라 말했다. 이 교수는 "메르스 80번 환자의 경우 당시 시신 처분에 관한 구체적 법률이 없었기에 망인과 유가족의 자기결정권 침해 여부에 대해 더 깊게 논의해봐야 할 문제로 보인다"고 말했다. 
 
80번 환자 유가족의 법률 대리인인 이정일 변호사(법무법인 동화)도 "국가와 병원의 과실 문제에 대한 1심 결론을 납득할 수 없는 만큼 항소할 방침"이라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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