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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탁명단 '동그라미'로 합격…이광구 전 우리은행장 유죄 확정

중앙일보 2020.03.03 06:00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 [중앙포토]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 [중앙포토]

금융권 채용 비리 수사의 시작이 된 ‘우리은행 채용비리’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광구(63)전 우리은행장이 징역 8월을 확정받았다. 이 전 행장과 함께 기소된 인사팀 실무자들은 500만~2000만원의 벌금형이 확정됐다.

 

‘필터링’무력화 한 ‘동그라미’

지난해 1월 이 전 행장에게 징역 1년 6월을 선고한 1심 판결문에는 우리은행 채용과정이 상세히 담겼다. 2015~2017년 공개채용으로만 이뤄진 신입 행원 선발의 최종결정권자는 이 전 행장이었다.
 
판결문에 따르면 서류전형과 1ㆍ2차 면접으로만 이뤄진 채용절차에서 우리은행은 이른바 ‘필터링’을 통해 서류전형 지원자들을 일차적으로 걸렀다. 필터링의 항목은 ▶학점 ▶나이 ▶자기소개서 글자 수였다.  
 
그런데 이 필터링을 거치면서 떨어져야 했을 지원자 중 다음 전형으로 올라간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청탁 명부’에 담긴 지원자들이었다. 이 전 행장이나 임원들은 금융감독원이나 국가정보원의 고위 간부, 우리은행 고액 거래처 또는 내부 유력자 등으로부터 입사 청탁을 받으면 이를 인사팀에 전달해뒀다. 인사팀에는 채용팀을 통해 명단을 작성하고 지원자 배경이나 추천 임직원 이름, 기관별 구분 코드와 서열 코드까지 적은 명단을 뒀다. 
 
채용 과정에서 서류나 1차 면접 전형 때마다 합격자 초안이 만들어지면 인사팀에서 은행장에게 결재를 받았다. 결재 때 청탁명부 지원자들의 합격 여부를 한눈에 알 수 있는 ‘추천인 현황표’를 함께 갖고 갔는데, 합격권과 불합격권이 점선으로 나뉘어 있었다. 이 전 행장이 이를 보고 합격으로 결정하는 지원자에 펜으로 ‘동그라미’를 쳤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이런 방식으로 최종 합격한 지원자가 3년간 30명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 "공정성 심각 훼손…지원자에 좌절감"

 서울북부지방검찰청은 2017년 서울 중구 회현동에 있는 우리은행 본점의 이 전 행장 사무실과 인사부를 압수수색했다. [연합뉴스]

서울북부지방검찰청은 2017년 서울 중구 회현동에 있는 우리은행 본점의 이 전 행장 사무실과 인사부를 압수수색했다. [연합뉴스]

1심 법원은 "은행장은 직원 채용 절차와 평가에 상당한 재량권을 가지지만, 그 재량도 법률을 위반하거나 사회 통념상 공정성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고 판단했다. 이어 "불합격권에 있던 지원자들이 행장이 동그라미를 치는 의사결정만으로 합격권에 위치하는 것만으로도 공개채용의 공정성은 심각하게 훼손됐다"고 판결했다. 1심은 이 전 행장에게 징역 1년 6월을, 다른 직원들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와 벌금형을 각각 명했다. 당시 법원은 “지원자들과 취업준비생들에게 큰 배신감과 좌절감을 주고, 우리 사회 전반의 신뢰를 훼손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2심도 이 전 행장의 죄를 인정해 징역 8월을 선고했다. 항소심은 "최종결정권자이자 실질적으로 유일한 결정권자인 은행장은 책임에 상응해 실형을 택한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이어 가담 정도가 이에 미치지 못하는 다른 직원들은 벌금형에 처했다. 1심서 집행유예를 받은 남모 부행장은 직접 채용 보고 라인에 있지 않았고 범죄사실이 증명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죄를 받았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원심 판결이 옳다고 보고 이 전 행장 등의 상고를 기각했다고 3일 밝혔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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