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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호의 시시각각] 지금의 코로나 대책으론 안 된다

중앙일보 2020.03.03 00:39 종합 30면 지면보기
남정호 논설위원

남정호 논설위원

2014년 초 서아프리카에선 치명적인 에볼라 출혈열이 돌아 1년 만에 1만700여 명이 숨졌다. 마땅한 치료약이 없어 걸리면 40% 이상이 피를 쏟으며 죽는 괴질이었다. 하지만 이 병의 진짜 무서움은 다른 데 있었다. 에볼라로 숨진 환자보다 의료 시스템 붕괴로 희생된 사망자가 더 많았던 것이다.
 

무조건적인 확진자 색출은 과잉
의료체계 무너지면 희생 더 커져
100m 아닌 마라톤 뛸 각오 필요

당시 의사·간호사, 그리고 병상 등 거의 모든 의료 자산이 에볼라에 몰리는 바람에 다른 환자들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이 때문에 전년에 비해 말라리아 사망자만 1만900여 명이나 늘었다. 아프리카에선 말라리아뿐 아니라 홍역·폐렴·설사병·영양실조 및 출산 등으로 숨지는 경우가 많다. 이를 고려하면 의료체계 붕괴에 따른 희생자는 에볼라 사망자의 몇 배에 달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굳이 5~6년 전 아프리카 사례를 소개한 까닭은 지금 우리 사회가 비슷한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믿고 싶지 않겠지만 현재 한국은 코로나19에 걸려도 어디서 옮았는지 모르는 ‘지역사회 감염’ 단계에 접어들었다. 무증상자가 많은 데다 발병 초기에도 전염성이 강한 특성 탓에 조만간 전국적으로 괴질이 창궐할 공산이 크다.
 
대구·경북에서 환자가 쏟아져 여기만 막으면 괜찮을 것으로 믿으면 큰 오산이다. 그간 이 지역 신천지 교도들을 집중적으로 검사한 탓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뿐이다. 딴 곳에서 이렇게 조사했다면 확진자 분포는 달라졌을 거다.
 
예로부터 전염병이 돌면 대책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봉쇄·격리다. 오염 지역은 외부로부터 고립시키고 환자 역시 의료진 외에는 누구와도 접촉하지 못하게 하거나 아예 가둬버리는 방법이다. 이번에 중국 정부가 쓴 게 강력한 봉쇄·격리 조치였다. 둘째는 전염병 유행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뒤 중증 환자만 치료하는 방식이다. 증상이 대체로 치명적이지 않은 감기 등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일본이 이 길을 택한 듯하다.
 
한국은 어떤가. 우리는 중국의 무시무시한 감염 상황과 혼란에 기가 질린 탓인지 처음부터 증세의 경중과 상관없이 무조건 확진자를 찾아내 격리했다. 전체적 병상 규모와 의료인력 상황 등을 면밀히 고려하지도 않고 말이다. 그 결과 별 증상 없는 경증 확진자가 병원 밥만 축내며 중환자용 음압병실에 누워 있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정작 중환자는 병상이 없어 자가격리 중 죽어나가는데 말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선 칭송이 높다지만 중국식 봉쇄·격리 모델은 한국에선 도저히 쓸 수 없는 방식이다. ‘대구 봉쇄’ 운운만 해도 여당 대변인이 쫓겨나는 판이다. 자가격리 중인 확진자나 감염 의심자가 나돌아 다녀도 완벽히 막을 방법이 없다.
 
그러니 이제는 우리 처지에 맞게 무조건적인 확진자 색출 및 격리가 아닌,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 병상 부족도 부족이지만 지금처럼 의사·간호사가 쪽잠을 자며 일한다면 얼마나 더 버티겠는가. 마라톤 경주를 100m 단거리 하듯 달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에서는 상당 기간 고열과 마른 기침 및 인후통 등에 시달려야 코로나 검사를 해 준다. 이를 두고 “미국 대선과 일본 올림픽 개최를 의식한 소극적 대응”이란 음모론도 나오지만 나름대로 뚜렷한 논리가 서 있다. “마구잡이로 경증 코로나 환자까지 입원 치료해 주면 의료 시스템이 붕괴해 정작 촌각을 다투는 응급환자를 돌볼 수 없게 된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는 매일같이 응급환자들이 쏟아진다. 교통사고만 해도 지난해 21만여 건이 발생해 32만여 명이 다치고 3700여 명이 숨졌다. 산업현장에서도 10만여 명의 부상자가 나왔으며 이 중 2100여 명이 희생됐다. 지금처럼 코로나19에만 올인하면 이런 부상자들은 물론 심장마비 등 응급환자들조차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채 희생당하게 된다. 이제부터라도 큰 그림을 보며 코로나19와 맞서는 게 전 사회적 희생을 줄일 수 있는 올바른 길이다.
 
남정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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